본문영역

물, 자연 그리고 사람
물을 걷다
  • 푸른 바람이 부는
    그 섬에 가고 싶다

    • 글. 이용규
    • 사진. 김도형
  • 구성진 남도 가락은 비릿한 바닷바람에 실려 심금을 울린다. 산과 바다가 병풍처럼 에워싼 남도의 섬들. 그 풍광도 짜릿하지만 그 안에는 길이길이 이어질 유구한 역사와 둥지를 틀고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뭉클함을 자아낸다.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도와 청산도에서 바라본 풍경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보길도

보길도는 동서 길이 13km, 남북 8km의 섬으로 본래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모래가 퇴적된 육계도로 섬이 이어져 전체적인 모양은 가오리 형상을 하고 있다. 현재 2,700여 명의 주민이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해조류와 전복양식업으로 살아가고 있다. 관광자원으로서 보길도는 고산 윤선도의 거대한 유물관과도 같다. 윤선도는 정철, 박인로와 함께 손꼽히는 조선시대 시가 문학의 대가로, 유복한 명문가에서 태어나 일찍이 실력을 인정받아 주요 관직을 두루 거친 재원이었다. 하지만 병자호란 때 왕이 항복했다는 소식을 듣고 세상을 멀리하고자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를 발견하고 수려한 산수에 매료돼 이곳을 ‘부용동’이라 명명하고 세연정, 낙서재 등 건물 25동을 짓고 전원생활을 즐겼다고 한다. 한국 시조문학의 최고봉인 그 유명한 ‘어부사시사’도 바로 이 시기에 탄생하게 됐다.
보길도는 윤선도에게 특별한 섬이었고, 그의 뜻에 따라 꾸며졌다. 그 결과, 세상 무엇도 부럽지 않은 그만의 왕국인 ‘윤선도원림’이 완성됐다. 어쩌면 보길도는 윤선도가 꿈꿨던 유토피아였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며 한국 3대 민가 원림으로 꼽히는 세연정을 찾았다.
장방형의 정자인 세연정은 손님을 맞고 연회를 베풀며 풍류를 즐기던 곳으로, 사방으로 퇴를 달아 어느 방향에서도 주변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인공 연못인 세연지를 만들어 배를 띄우고 풍류를 즐겼던 윤선도는 물살 속도를 조절하는 S자 수로를 개발하는 등 과학에도 능통한 재주가 있었다.

고산 윤선도의 발자취를 담다

“홍수가 나도 연못이 넘치지 않도록 보를 만들어 물길을 이리저리 틀어놓았고, 연못을 파다가 나온 바위를 조형적으로 활용한 것도 기막힌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윤선도의 10대손이기도 한 윤창하 문화해설가는 윤선도를 비운의 천재라 일컫는다.
“고산은 훌륭한 문신이었을 뿐 아니라 경학, 천문, 지리, 공학, 건축, 음악과 예술에 이르기까지 통달하지 못한 학문이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재였습니다. 그런 분이 서른 살에 귀양살이를 시작해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계속됐으니 부침이 많았던 불우한 정객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청나라 황제에게 굴욕을 당한 인조가 보기 싫어 은거 생활을 선택했지만, 세연정 설계 당시 정면을 북향으로 삼은 것에서 윤선도의 임금을 향한 ‘순애보’를 엿볼 수 있다. 그쪽은 고향이 있는 곳이자 임금이 계신 곳이었기 때문이다. 세연정 앞마당에 만든 인공 연못 세연지에 소나무를 심어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그 나무가 대신 임금을 보살피게 했다’는 말을 들으니 순간 마음 한켠이 뜨거워짐을 느낀다. 어지러운 당쟁의 풍파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보길도에 유배시켰지만, 임금에 대한 마음을 놓지 않았던 노 시인의 마음이 전해져서일 것이다.
윤선도의 발자취를 돌아보자니 문득 비슷한 시기에 유배의 아픔을 경험해야 했던 또 하나의 인물이 떠올랐다. 윤선도의 정적이기도 했던 우암 송시열이다. 윤선도원림이 빽빽하게 우겨진 수풀림이 장관을 이루었다면, 우암 송시열 글씐바위는 탁 트인 바다 풍광이 절경을 이룬다. 83세 나이로 제주도로 유배 가던 중에 풍랑을 만나 이곳 보길도에 잠시 머물던 중 임금에 대한 서운함과 그리움을 그린 오언절구가 새겨져 있는데, 현재 글씨는 많이 훼손돼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푸른 바다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백도리의 풍광이 너무 아름다워 발품팔기에 충분한 숨은 명소다.

쪽빛 바다가 아름다운 청산도

아시아 최초로 세계 슬로시티로 선정된 청산도는 말 그대로 바쁠 것이 없는 땅이다. 청산도 슬로길은 주민들의 마을 간 이동로로 이용되던 길로, 아름다운 풍경에 취해 절로 발걸음이 느려진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지금은 영화 <서편제>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청산여수’라 했고, 신선이 노닐 정도로 아름답다 하여 ‘선산’, ‘선원’이라 부르기도 했다. 청산도 답사 1번지는 호랑이를 이긴 범바위다. 아주 오랜 옛날 호랑이가 이 바위를 향해 ‘어흥’하고 포효하자, 바위의 울림이 그 소리보다 더 커서 호랑이가 도망쳤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자석이 붙을 정도로 자성이 강한 암석인 범바위 주변에는 전자기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근처를 지나가는 배의 나침반이 뱅글뱅글 돌 정도로 기가 센 범바위의 웅장한 기운을 받으러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전달하면 좋겠다 싶어 스마트폰 카메라에 찰칵 담았다. 함께 동행한 김미경 문화해설가에 따르면 자세히 보면 범의 웅크린 모습을 닮았다고 하고 바람이 불 때면 범이 울부짖는 소리가 난다고도 하는데,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겨둔다.
범바위로 향하는 가파른 길에는 소원성취를 기원하며 굽이굽이 돌아가는 비탈길을 절실하게 걸었을 마음들이 켜켜이 묻어 있다. 땀에 젖은 몸과 마음으로 범바위 정상에 오르면 그간의 고생을 보답하듯 시원한 바람과 멋진 풍광이 기다리고 있다. 구태여 소원을 들어주지 않아도 충분한 보상을 받는다. 자연은 그런 힘을 가졌다.

영화 <서편제>의 고장에서 음미하는 아리랑 가락의 진수

범바위에서 내려와 항구로 가는 길에 자연석을 층층이 쌓아 만든 선 고운 돌담과 막 세수한 아기 얼굴만큼이나 말끔한 길이 조성돼 있다. 영화 <서편제>로 이름난 당리마을이다. 만약 <서편제>가 이 마을의 아름다운 모양새를 담아내지 못했다면 그처럼 성공한 영화로 자리매김하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영화 속에서 유봉 일가가 걸어 내려오던 황톳길은 포장대로로 바뀌고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송화는 없지만, 이곳에서 바라본 바다 빛은 여전히 푸르다. 송화가 눈이 멀기 전 아비와 함께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오던 돌담길은 매년 4월이 되면 청보리와 유채꽃으로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고 하는데, 여름 한복판 쪽빛 바다가 한결 가깝게 다가오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다워 그리 아쉽지만은 않다.
운치 있는 돌담과 마을에서 바다로 푸른 논밭을 따라 실타래처럼 이어진 정겨운 길, 푸른빛과 대비해 붉게 물들이는 저녁놀, 청산도에 가면 이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바쁜 일상에 좇기며 ‘지금 잘 살고 있는지’, ‘잘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호젓하고 낙낙한 섬 안에 잠시 멈춰 서 있어도 좋다. 꼭 섬이 아니어도 좋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던 일을 잠시 내려놓고 한 템포 쉬어가는 것도 좋겠다.

한 사람의 수고가 많은 사람들의 혜택으로 돌아간다는 사명감
보길정수장과 청산정수장

예전보다 적은 강수량으로 전국에 비상이 걸린 가운데 K-water는 가뭄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표적인 가뭄지역인 완도군 보길도와 노화도는 유일한 상수원인 부황저수지의 저수율이 30% 밑으로 떨어지면서 2일 급수, 4일 단수의 제한급수를 실시하는 등 물 부족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이에 K-water 감사실 강래구 상임감사위원은 지난 6월 8, 9일 이틀간 보길정수장과 청산정수장을 방문해 시설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악조건 속에서도 주민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하기 위해 애쓰는 공사 직원들의 노고를 격려했다.
K-water 완도사업소는 10개 섬에 달하는 5,000㎢의 넓은 지역을 관장하고 있다. 수도시설은 지난 2013년 총사업비 1,590억 원으로 20년간 위탁운영을 체결한 이래 현재 10년째 운영 중이다. 정수장 10개소, 배수지 69개소, 가압장 32개소와 1,130개 관로를 관리하고 있으며, 이는 공사 내에서도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음에도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 자부심을 갖는다.
완도에서 배로 30분 거리인 보길정수장은 총 취수용량 42만 5,000톤으로, 하루에 4,000톤의 물을 정수시설 표면처리 공정으로 처리하고 있다. 현재 하루 생산되는 2,000톤의 물은 173km의 관을 통해 보길도에 700톤을 공급하고, 나머지 1,300톤은 보길대교를 거쳐서 노화지역에 공급하고 있다. 현재 보길도와 노화도의 식수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지하저류지 설치공사가 진행 중이다. 지하저류지는 지하 대수층에 인공 차수벽을 설치해 지하수를 저장하고 바닷물 유입을 막아 친환경적으로 지하수자원을 확보하기 위한 시설로, 향후 이 지역의 식수난 해결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청산정수장은 현재 저수율 53%를 유지하며 하루 1,100톤의 물을 생산해 2,000명 청산도 주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보길정수장과 청산정수장은 유충이나 벌레가 고도정수처리장 활성탄지에 유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출입문을 2중으로 하고 에어커튼을 설치하고 있다.
6월 8, 9일 이틀에 걸친 정수장 방문을 마무리하며 강래구 상임감사위원은 “인원이 많지 않은 오지사업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공사 직원들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라고 말하고 “앞으로 오지사업장에 대한 더 큰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 본 취재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