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물, 자연 그리고 사람
자연 밥상
  • 고구마의 이유 있는 변신,
    빼떼기

    • 글·사진. 이시목(여행작가)
  • 빼떼기는 ‘말린 고구마’를 뜻하는 경상도 사투리다. 바짝 말려 저장성이 매우 높다. 칼륨과 식이섬유가 풍부한 고구마의 영양성분을 그대로 지녀 겨울철 건강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빼떼기의 효능과 이를 활용한 ‘현지의 맛있는 레시피’를 공개한다.
우물우물 씹으면 달달하고 고소한 빼떼기

“이게 뭐예요?” 빼떼기를 처음 본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이렇다. 하얗고 딱딱한 것이 달달하기까지 하니 정체가 몹시 궁금할 터였다. 그럴 때마다 통영 사람들은 “생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볕에 바짝 말린 것”이라고 설명한다. “빼딱하게 썰어서라는 설도 있지만, 전분이 하얗게 빠져나와 뼈다귀처럼 보인다고 해서 빼떼기라는 이름이 붙었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덧붙인다.
식재료를 건조하는 건 ‘오래 맛있게 보관’하려는 방법 중 하나다. 저장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 빼떼기는 가을에 수확한 고구마를 겨우내 맛있게 먹기 위해 생각해 낸 저장법의 하나로 탄생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고구마를 말렸다가 물을 넣고 끓여 푹 퍼진 빼데기는 생고구마일 때보다 훨씬 깊은 단맛을 낸다고 한다. 고구마의 업그레이드 버전인 셈이다.
빼떼기는 힘든 시절의 유산이기도 하다. 빼떼기의 원재료인 고구마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재해에도 강해 구황작물로 요긴했다. 과거엔 주로 통영을 비롯한 거제, 남해 등 경상도 남쪽 해안에서 추운 겨울을 지나며 많이 먹었는데, 지금은 열량이 낮고 식이섬유가 풍부한 건강식품으로 알려져 전국적 인기를 누리고 있다.
먹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냥 빼떼기로 먹거나 죽으로 끓여 먹맛탕으로 요리해 먹는다. 또 떡이나 밥에 넣어 부족한 영양소와 단맛을 보충하는 재료로 쓰이기도 한다.

면역력 향상과 배변활동에 좋은 영양소 풍부

추운 날씨엔 따뜻한 음식이 최고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음식이 아니라 따뜻한 에너지의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구마는 부추, 마늘, 생강 등과 함께 추운 겨울 체온을 높여주는 음식 중 하나다. 체내 신진대사를 높여 체온을 유지하고, 체온을 높여 혈액순환과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준다.
면역력 향상에 기여하는 또 다른 성분도 고구마엔 있다. 비타민A가 그것이다. 고구마 한 개가 함유한 비타민A 양은 하루 권장량의 3.6배. 요즘처럼 면역력이 중요한 시기엔 더없이 필요한 성분이다.
고구마는 배변 활동에 효과적인 얄라핀과 식이섬유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얄라핀은 고구마를 잘랐을 때 고구마에 난 상처를 보호하기 위해 조금씩 배어나오는 하얀 우유 같은 액체로, 장 안을 청소해 대장암을 예방하고 배변활동을 돕는다.
모든 음식엔 궁합이 있다. 예부터 고구마와 김치는 찰떡궁합이었다. 김치는 나트륨이 많은 대표적인 식품. 고구마에 풍부하게 함유된 칼륨은 나트륨 배출에 효능이 있어, 붓기를 제거하고 혈압을 정상 수치로 유지하는 데 기여한다.

통영 강구안엔 빼떼기죽집이 몇 곳 있다. 그중 ‘팜 투 테이블(Farm to Table)’을 실천하는 농가형 식당 ‘통영빼떼기죽’을 찾았다. 부부가 직접 키운 고구마와 맛 좋기로 유명한 욕지도 고구마를 빼떼기로 만들어 걸쭉하고 맛있는 죽을 뭉근하게 끓여내는 집이다. “추운데 얼릉 들어 오이소~” 은근하게 달달한 죽 맛에 그보다 더 반가운 주인장의 인사가 더해져 죽집을 찾았던 하루가 참 달달했다.

억수로 가난했다 아입니까,
이 토영이.
가을이 지나모 묵을 게 없으니
마카 죽으로도 끓이 묵고,
밥에도 넣어 묵고….
진짜 빼떼기만
묵고 살았지요.
따뜻한 죽 한 그릇의 위로

박정숙 사장님의 하루는 새벽 3시에 열렸다. 서둘러 죽 만들 채비를 하는지 자루에서 빼떼기부터 꺼냈다. 바짝 말린 빼떼기들이 서로 부딪히는지 서걱서걱 소리가 났다. “맛 한 번 볼래요?” 그녀가 건넨 빼떼기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자, 물기 하나 없는 빼떼기에서 달착지근한 고구마 맛이 은근하게 배어났다. 싱싱한 고구마를 얇게 잘라 자연광에 2~3일 말린 후, 건조기에 넣어 다시 한 번 말리는 것이 그녀의 맛있는 빼떼기 만드는 방법이다. 역시 빼떼기죽의 생명은 맛있는 빼떼기에 있다.
빼떼기죽은 빼떼기에 차조와 강낭콩을 넣어 2시간 이상 뭉근하게 끓여내는 음식이다. 저온에서 오래 가열해야 당도가 높아지는 고구마의 특성상, 불 앞에서 오래 버틸수록 빼떼기죽 맛이 좋아진다. 그녀가 말하는 빼떼기죽 맛의 핵심도 다를 바 없었다. “마지막에 죽을 약한 불로 20~30분 졸여야 하는데, 그때 고구마 전분이 눌지 않게 잘 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차조와 강낭콩 외에 고구마가 때때로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을 원한다면 죽을 졸이는 이 시간을 취향대로 조절하면 된다”라고 귀띔했다.

통영에서 ‘빼떼기죽’ 하면 빠지지 않는 박정숙 씨. 빼떼기죽이 잘 알려지지 않았던 시절부터 시작해 지금은 어엿한 통영의 맛집으로 소문난 그녀의 레시피를 지금 공개한다.

박정숙 사장님의 ‘빼떼기죽’
재료 : 빼떼기 300g, 차조 70g(⅓컵), 강낭콩 70g(⅓컵), 설탕·소금 약간씩, 물 2.5L
① 고구마 빼떼기와 차조, 강낭콩은 흐르는 물에 살짝 씻는다.
② 차조와 강낭콩을 잠길 정도의 물을 부어 삶아낸다.
③ 압력솥(바닥이 두꺼운 냄비)에 빼떼기를 넣고 물을 넉넉히 부은 다음 20~30분간 센 불로 푹 삶는다.
④ 솥의 추가 흔들리면 불을 줄이고 15분 정도 더 익힌 뒤 불을 끈다.
⑤ 어느 정도 압이 빠지면 찬물을 조금 부어 빼떼기가 퍼질 때까지 기다린다.
⑥ 푹 삶겨 부드러워진 빼떼기를 냄비에 옮겨 담은 뒤, 삶은 차조와 강낭콩을 넣는다.
⑦ 약한 불로 20~30분 졸인다. 이때 고구마 전분이 눌지 않게 주걱으로 쉴 새 없이 저어준다.
⑧ 기호에 맞게 설탕과 소금 약간을 넣어 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