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영역

물, 자연 그리고 사람
자연 밥상
  • 식탁 위의 슈퍼 푸드,

    • 글·사진. 이시목(여행작가)
  • 콩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섭취하는 식품 중 하나다. 밥에 넣어 먹기도 하고 두부, 된장, 두유 등으로도 섭취한다. 단백질과 지방 함량이 높아 겨울철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인기.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리며 수천 년 간 한국인의 밥상을 지켜온 슈퍼 푸드 콩의 역사와 효능을 알아본다. 이를 활용한 ‘현지인의 맛있는 순두부 레시피’도 소개한다.
수천 년 간 식탁에서 매일 만나는 콩

콩은 한반도가 원산지인 곡물이다. 재배 역사만도 4,000년을 훌쩍 넘는다는 것이 농·식품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생태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뛰어나 재배하기 쉬운 데다, 홍수나 가뭄에 의한 피해도 다른 작물에 비해 적어 자연재해에 대비한 구황작물로 요긴했단 설명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면 첫소리 글자 ‘ㅋ’을 사용하는 예시로 콩이 나온다. ‘콩’을 예로 들고 ‘大豆(대두)를 의미한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대두는 메주의 재료가 되는 ‘노란 콩’을 말한다. 콩을 예시로 들었다는 건 당시에도 백성들의 밥상에 콩이 일상의 음식으로 자주 올랐다는 얘기다.
오랜 세월 식탁을 지키던 식재료다 보니 콩은 그 종류만도 수천 가지에 이른다. 농촌진흥청 농업유전자센터에 보존 중인 재래종 콩만도 8,000여 점이라고 한다. 이 중 노란 콩(대두), 검정콩(서리태), 쥐눈이콩(서목태), 콩나물콩(오리알태, 수박태) 등이 활용도가 높다. 두부를 만드는 데 쓰이는 노란 콩은 레시틴·사포닌 성분이 많아 비만 체질 개선과 콜레스테롤 저감에, 검정콩은 탈모와 비만 예방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쥐눈이콩은 한방에서 해독제로 쓰여 ‘약콩’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콩. 콩나물콩은 콩나물로 재배될 때 싹이 돋는 과정에 변화가 생겨 비타민C가 풍부한 식품이 된다고 한다.
크기와 생김새, 색깔이 다른 만큼 효능도 조금씩 다른 셈.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한 콩을 골라, 그에 적합한 조리법으로 요리해먹는 것이 ‘슬기로운 콩 활용법’이다.

단백질 풍부해 골다공증 예방에 효과

예부터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로 불렸다. 육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단백질 함량(40%)과 지방(18%) 함유량이 높아 생긴 별칭이다. 노란 콩에 특히 많은 것으로 알려진 식물성 단백질은 혈압을 낮추어 고혈압 예방에 도움을 주고 기력 회복에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식물성 에스트로겐인 이소플라본이 다량 함유돼 골밀도 증강에 효과가 있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 안면 홍조, 우울감, 기억력 감퇴 등 갱년기 증상 완화에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혈당 증가를 완만하게 해 당뇨의 예방 및 관리에도 효과적인 식품. 칼국수 반죽에 콩가루를 넣거나 쌀밥에 콩을 섞어 먹으면 급격한 혈당 상승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콩은 주로 장류로 발효해 먹거나 두부로 만들어 먹는다. 날로 먹으면 소화력이 떨어지지만 익혀 먹으면 65%, 두부로 먹으면 95%, 된장으로 먹으면 80% 정도 소화·흡수가 된다. 오래전부터 콩으로 장을 담그거나 메주를 쑤는 발효기술이 발달하고 두부요리가 다양했던 건 이 때문. 특히 두부는 콩이 두부로 만들어지는 동안 모든 영양성분이 콩보다 소화되기 쉬운 형태로 바뀐다고 하니, 바람이 차가운 요즘, 국산 콩으로 만든 뜨끈한 두부로 건강과 맛을 함께 챙겨 보자.

강릉을 대표하는 음식은 초당순두부다. 경포·강문해변 사이에 있는 초당두부마을에 가면, 동해 깨끗한 바닷물로 두부를 만들어 파는 식당들을 만날 수 있다. 그 중 80여 년에 걸쳐 4대째 두부를 만들고 있는 초당고부순두부를 찾았다. 고부(姑婦)가 시작해 지금은 모자(母子)가 두부를 만들지만, 그때 그 시절과 별반 다르지 않은 두부 맛을 내는 것으로 유명한 집이다. 새벽부터 콩 내 몽글몽글 창문을 넘던 그곳에서 김영미·곽종욱 씨 모자를 만났다.

“담백하고 고소하죠. 부드럽고….
뭐, 구름 같다고 해야 하나,
야들야들한 달걀찜 같다고 해야 하나.
요즘 사람들은
푸딩 같다고 하더만요.”
눈처럼 새하얀 순두부 한 그릇

오늘도 곽종욱 씨는 해보다 먼저 일어났다. 새벽 5시. 불린 콩을 세척하는 것이 그의 첫 일과다. “벌써 8년째인데도 두부 만드는 시간은 늘 조심스럽다”라며 콩을 참 얌전히도 다뤘다. 콩을 분쇄기에 넣어 갈 때도, 뜨거운 물을 부어 콩물을 내릴 때도 그의 손길은 가만가만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중불에 1시간가량 끓인 콩물에 바닷물을 넣을 땐 거의 숨조차 쉬지 않는 듯했다. 적정 온도에 적당량의 바닷물을 넣어야 보드라운 식감의 순두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엉기는 거 보이세요? 진짜 예쁘죠?” 그가 무쇠 솥을 가리키며 처음으로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목화솜 같은 순두부가 몽글몽글 피어나고 있었다. 어쩌면 그는 이 하얀 꽃 잔치에 매일 반하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잘 나왔어?” 아들에게 무심한 인사를 건네며 김영미 사장님이 다가왔다. 그녀도 가만가만한 몸짓으로 무쇠 솥부터 살폈다. 적정 온도와 적당량의 바닷물에 대해 물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라며 “잘 모르겠을 땐, 콩물이 너무 뜨겁지 않다 싶을 때 바닷물(간수)을 조금씩 부어 엉기는 상태를 보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바닷물은 염도가 낮아 간수를 응고제로 쓸 때보다 식감이 부드럽고 맛이 달다”라며 “두부를 만들 때 응고제를 취향대로 골라 써는 것도 방법”이라고 전했다.

강릉에서 초당순두부 노포를 운영하는 김영미 씨.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예순을 넘긴 지금까지 두부를 만들어오고 있다.
친정어머니에 시어머니의 비법까지 이어받아 더 맛있다는 80년 전통의 초당순두부 레시피를 지금 공개한다.

김영미 사장님의 ‘초당순두부’
① 콩을 세척 후 8시간 이상 불린다.
② ‘불린 콩’을 다시 세척해 분쇄기에 넣은 후 물을 조금씩 부어 가며 갈아준다.
③ 올이 촘촘한 무명천에 ‘간 콩’을 붓고 뜨거운 물을 부어 콩물을 만든다. 이때 나무주걱으로 여러 차례 저어 가며 콩물을 내린다.
④ 걸러진 콩물을 솥에 부은 후, 70~80도의 은근한 불에서 천천히 저어가며 1시간가량 끓인다.
⑤ 끓인 콩물을 조금 식힌 후 바닷물을 조금씩 부어 엉기는 상태를 확인한다.
⑥ 콩물의 단백질이 몽글몽글 응어리지기 시작하면 불세기를 낮춘 후 조금 기다린다.
⑦ 응어리진 두부를 웃물(촛물)과 함께 떠 그릇에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