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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자연 그리고 사람
마을 인문학
  • 곡성을 닮은 시인
    조태일

    • 글. 최행좌
    • 일러스트. 하고고
  • 조선 후기의 문장가인 유한준은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이라고 말했다. 즉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제대로 보인다는 뜻이다. 전라남도 곡성도 그렇다. 곡성을 사랑하면 곡성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제대로 알게 된다.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조태일 시인의 시 ‘국토서시’ 중에서

문학적 감수성으로 가득한 곡성

전라남도 곡성군 태안사(泰安寺)는 죽형(竹兄) 조태일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국토 시인’으로 알려진 그의 호 ‘죽형’은 이곳이 죽곡면에 속하기 때문에 붙여졌다고도 한다. 이 지역은 예부터 대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이곳의 지형과 시인의 문학적 세계를 아우르는 말로 ‘죽형’은 안성맞춤이었다.
알려진 대로 조태일의 부친은 대처승이자 태안사의 주지였다. 대처승의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그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건 당연했다. 그러나 승복으로 상징되는 회색빛만이 그의 유년을 채운 것은 아니다. 곡성의 아름다운 절경은 그에게 문학적 감수성을 채워 주었다.이후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된 그는 시집 <식칼론>, <국토>,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 등을 출간했다. 또 1969년 <시인> 지를 창간해서 김지하, 김준태, 박남준 시인 등을 발굴하기도 했다. 1989년부터 광주대학교 교수로 지내기도 했지만, 1999년 간암으로 작고했다.

시와 삶의 출발점이자 귀착점

조태일 시인은 “나의 시는 내가 태어난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의 동리산 품에 안긴 태안사에서 출발한다. 그곳에서 겪은 체험은 원초적 생명력을 형성해 내 시의 골격을 이룬다”라고 말했다.
그가 태어난 태안사는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절로, 사계절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태안사에서 10여 분 거리에 조태일시문학관이 있다. 아마도 태안사가 시인의 ‘원초적인 고향’이라면, 문학관은 그의 삶이 집결된 ‘인생의 안식처’가 아닐까 짐작해 본다. 언뜻 보면 이 두 공간이 다른 듯 보이지만 결과적으로는 ‘동리산’이라는 장소로 귀결된다.
조태일시문학관에는 그의 출생과 성장의 역사가 고스란히 깃든 유품과 활동 과정이 연출돼 있다. 시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집무실도 재현해 놓아 그의 숨결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렇게 죽형 조태일은 우리들 곁에 여전히 살아 있다.

조태일 1941~1999년

대표 작품 <살아 있는 시와 고여 있는 시>, <식칼론>, <국토> 등
1941년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태안사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이 당선돼 등단했다. ‘국토서시’ 등의 시를 썼으며, 1974년에 고은, 백낙청, 신경림, 황석영, 박태순 등과 ‘자유실천문인협의회’를 창립했다. 편운문학상, 전라남도문학상, 만해문학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