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세 방울, 천재 시인의 탄생

웨일스의 고대 전설 속에는 한 여인이 등장한다. 이름은 케리드웬(Ceridwen). 북웨일스의 발라 호수 근처에 살던 그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는데, 두 사람의 운명은 사뭇 달랐다. 딸 크레르위(Creirwy)는 아름답고 총명했지만, 아들 모프란(Morfran)은 흉측한 외모로 늘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케리드웬은 아들을 위해 ‘지혜’를 선물하기로 했다.
그는 지혜를 만들어낼 수 있는 힘, 즉 마법의 가마솥 ‘아웬(Awen)’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가마솥에 달여 만든 물약을 마시면 지혜와 영감이 샘솟는다고 하여, ‘아웬’은 오래전부터 신성한 영감의 원천으로 여겨졌다.
케리드웬이 아들을 위해 만든 특별한 물약은 무려 1년하고도 하루를 더 끓여야 효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여 눈먼 노인 모르다(Morda)와 어린 소년 그위온 바흐(Gwion Bach)에게 가마를 지키게 하며 단 하루도 불을 꺼뜨리지 않고 물약을 휘젓게 했다. 그러나 1년간의 정성은 단 한 순간의 실수로 어그러지고 말았다. 팔팔 끓던 가마에서 물약 세 방울이 그위온의 손가락에 튀었고, 그가 반사적으로 손에 튄 물약을 핥는 순간, 물약에 담긴 모든 지혜와 힘이 그에게 흘러 들어간 것이다.
아들을 위해 바쳤던 지난 1년이 허사가 된 것을 안 케리드웬은 분노했다. 이를 예감한 그위온은 일찍이 도망쳤지만, 마법의 힘을 얻은 두 사람의 추격은 치열했다. 그위온이 토끼로 변하면 케리드웬은 사냥개로, 그위온이 물고기로 변하여 강에 뛰어들면 케리드웬은 수달이 되어 쫓았다. 그위온이 새가 되면 케리드웬은 매가 되었다. 마침내 그위온이 곡식 알갱이로 변하자, 케리드웬은 암탉이 되어 그를 삼켰다. 그러나 물약의 힘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케리드웬은 그를 품은 채 임신하게 되었고, 몇 달 뒤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시인 탈리에신(Taliesin)을 낳았다. 그는 다름 아닌, 그위온의 환생이었다.

독과 약, 지혜의 양면성

웨일스 전설 속 위대한 음유시인, 탈리에신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며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신화 속 영웅으로 자리 잡았다.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의 노래에 기뻐했으며, 그의 풍자와 예언 앞에서 두려움에 떨었다. 지금까지도 탈리에신은 웨일스 시문학에서 ‘시인들의 우두머리’라고 불린다. 『브리튼인의 역사(Historia Brittonum)』에서는 명성이 높은 다섯 명의 브리튼 시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이름은 여전히 ‘영감의 화신’으로 남아있다.
다시 앞선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케리드웬의 가마솥에 남아있던 약물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가마솥이 남긴 것은 단지 ‘천재 시인의 탄생’으로 끝나지 않았다. 지혜의 물방울이 흩어진 뒤, 그 속에 남아있던 물약은 모조리 독약으로 변해버렸다. 지혜의 물약, 그것은 축복이자 동시에 저주였다. 빛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지만, 불빛이 너무 강하면 시야를 잃는 법. 지혜도 마찬가지였다. 세상을 밝히는 동시에,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힘이었다. 그래서 케리드웬은 여신이자 마녀로, 영감의 근원이자 경계의 존재로 기억된다.오늘날 우리는 각자가 안고 있는 가마솥 속에 지식과 통찰, 욕망과 인내를 함께 끓이고 있다. 케리드웬의 이야기는 결국,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곳에서 균형을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