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채택된 ‘교토의정서’는 선진국의 온실가스 감축 의무를 규정한 국제협약이다. 그러나 2020년 협약이 만료될 때까지도 기후변화는 가속화되었고, 이에 따라 전 세계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함께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2015년 채택된 ‘파리협정’은 교토의정서를 대체한 포괄적 글로벌 협약으로, 선진국뿐만 아니라 개발도상국까지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각국이 자국의 온실가스 감축 역량과 여건을 고려해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는 자발적 참여 체제를 채택하였으며, 이를 통해 모든 국가가 기후위기를 완화를 위해 협력하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마련되었다.
일반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는 방법은 세 가지로 구분된다. 화력발전의 효율을 높이거나 에너지 소비를 절감해 배출량 자체를 줄이는 방식, 화석연료 발전을 신재생에너지로 대체해 배출을 회피하는 방식,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거나 제거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이런 감축 방식을 각 국의 상황에 따라 효율적으로 수행하고 상호 보완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방법이 바로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이다.
상호보완적 발전,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은 국가간 자율적인 협력을 통해 온실가스 감축 실적을 거래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규정한 파리협정 제6.2조(협력적 접근법, Cooperative Approach)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를 통해 서로 다른 국가가 각자의 강점을 살려 감축 실적을 상호 이전함으로써 글로벌 차원의 온실가스 저감을 공동으로 추진하는 협력모델이다. 선진국은 감축 기술과 자본을 제공하고, 개발도상국은 이를 바탕으로 감축사업을 수행함으로써 양자간의 감축목표 달성에 기여한다. 이 과정에서 선진국은 감축 실적을 자국의 감축목표 달성(NDC)에 활용할 수 있으며, 개발도상국은 기술 이전과 인프라 개선을 통해 경제·환경적 이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은 양국 정부간 협정을 체결한 뒤 정부의 공식 승인을 거쳐 사업이 시행된다. 이후 감축 효과를 측정-보고-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최종 감축량을 확정하며, 그 성과는 UNFCCC(유엔기후변화협약) 등록을 거쳐 국제적으로 감축실적(ITMO, Internationally Transferred Mitigation Outcomes)을 인정받는다. 이렇게 확보된 감축실적은 협정국가 또는 선진국으로 이전되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 달성에 활용하게 된다.
우리나라 국제감축사업 개요
정부와 민간의 협력으로 확장되는 우리나라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우리나라는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2.9%에 해당하는 37.5백만tCO₂E을 국제감축사업을 통해 달성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를 위해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를 중심으로 6개 부처를 주관기관으로 지정하고 각 부처별 실행 전담기관을 별도로 선정하여 사업을 추진 중이다. 기후에너지환경부(폐기물·물·환경 분야), 산업통상자원부(산업·발전 분야), 기획재정부(예산·정책·협정 참여), 농림축산식품부(임업 분야), 국토교통부(건물·교통·건설 분야), 해양수산부(해양·수산·해운·항만 분야)가 부문별 주관기관이며, 한국수자원공사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담당하는 물 분야의 실행 전담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제감축사업은 정부·공공 부문이 주도하고 민간기업이 실행 파트너로 참여하는 구조로 운영된다. 정부와 공공기관이 사업을 기획·발굴하고, 예비 타당성 조사나 감축설비 설치 등 사업비의 일부를 지원하며, 민간기업은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인 온실가스 감축성과를 창출한다. 이를 통해 우리 기업의 해외 진출과 국가 감축목표 달성을 동시에 견인하고, 기후대응과 산업 경쟁력을 함께 강화하는 새로운 협력 체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2024년 12월 기준, 우리나라는 ‘기후변화 협력에 관한 기본협정’을 통해 베트남, 몽골, 가봉, 우즈베키스탄 등 9개국과 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스리랑카, 가나, 방글라데시 등 4개국과는 가서명을 완료하였다. 필리핀, 세네갈, 콜롬비아 등 3개국과의 협정도 추진 중으로, 글로벌 협력의 폭을 계속 넓혀가고 있다.
물 분야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 현황
사업주관
기후에너지환경부(주관부처), K-water(전담기관)
사업유형
① 댐·하천 등 활용 소수력 및 수상태양광 신규 개발, 재개발
② 도시의 환경난제 분석 및 최적 탄소감축 솔루션 도출, 탄소저감형 도시재생사업
사업 현황
2025년 3개국 8건 사업 추진 중
K-water의 물 분야 국제감축사업 추진 전략
물 관련 재생에너지 분야 중심의 Green(신규개발)+Brown(재개발)+Mega(대형화)
3대 사업모델 정립
Green 신규개발
적지발굴, 타당성 분석을 통한 신규 재생에너지사업 개발
- 미개발 지역 내 신규 재생e 개발
- 청정에너지 공급 및 탄소배출 저감
※ 적용사례 : 캄보디아 다운트리댐 재생e, 라오스 재생e
Brown 재개발
수원국 소유 발전소 중 운휴 또는 노후화된 시설의 재개발
- 기존 노후 시설의 현대화 및 효율 개선
- 발전용량 증대 및 추가 온실가스 감축
※ 적용사례 : 키르기스스탄 Alamedin 1~6호기
Mega 대형화
배출권을 대규모로 확보할 수 있는 거점지역 중심 탄소감축 솔루션 도입
- 도시 인프라 전반의 탄소저감형 재생
- 물-에너지-도시 연계형 통합 감축모델
※ 적용사례 :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 도시재생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의 과제와 향후 추진 방향
현행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은 주로 공모를 통해 사업을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됨에 따라 주로 소규모·시범사업 중심으로 진행된다는 한계가 있다. 공모로 선정된 다수의 프로젝트가 연 감축량 10만tCO₂E 이하의 소규모 사업으로, 관리·행정비용 대비 실질적인 감축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정부 간 협력을 통한 대형 프로젝트 발굴과 전략적 기획이 필요하다. 에너지 전환과 효율화, 탄소포집, 흡수원 조성 등 다양한 감축수단을 패키지화해 개발도상국의 여건에 맞는 맞춤형 감축 솔루션을 제공하는 협력사업으로 확장해야 한다. 또한, ODA·MDB 등 국제재원과 연계한 정부 주도의 사업대형화를 통해 실제 감축목표 달성에 기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감축실적이 인정되는 사업 방법론이 제한적이라는 점은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을 확대하는 데 장애물이 되고 있다. 파리협정 제6.2조는 국가 간 자율적이고 유연한 감축활동을 권장하고 있으나, 사업 성과의 측정과 검증을 위해 여전히 표준화된 방법론 중심의 사업 구조가 권장되고 있다. 특히, 물 분야의 유수율제고사업은 개발도상국의 물부족 해소, 에너지 절감 등 기후위기 완화 효과가 큰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 인정된 감축실적 측정·평가 기준이 부재해 사업 승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현지 여건에 맞는 다양한 사업모델 개발과 감축효과 측정 기술을 개발하는 한편, 국가 간 협정 단계부터 사업 방법론에 대한 사전합의를 통해 방법론의 표준화와 공식화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주요 사업대상국인 개발도상국들의 제도에 대한 이해와 실현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 또한 해결해야 할 과제다. 국제규범 체계는 마련되어 있으나, 대다수의 개발도상국은 파리협정 이행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보고체계가 미흡하다. 사업 승인 절차나 감축실적 검증을 수행할 전문기관과 인력이 부족해 사업 승인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된다. 이에 따라 사업 대상국의 제도 정비와 인력 양성을 우선적으로 지원하고, 이후 실증사업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추진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국내 기후테크 산업의 글로벌 확장을 위한 전략적 기회인만큼, 기술 육성을 위한 정책적·재정적 지원 체계 구축이 긴요하다. 글로벌 기후테크 시장은 기후위기 심화와 디지털 기술 혁신을 계기로 연간 30% 이상의 고성장을 지속하고 있으며, 2029년에는 1.6경 원 규모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온실가스 국제감축사업을 통해 국내 유망 기후테크기업의 우수한 기술을 해외 현장에서 실증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될 수 있도록 정책적·재정적 지원을 확대한다면, 국내 기후테크 산업성장의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