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부터 EU의 CBAM(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 탄소국경조정제도)이 시범 도입됐습니다. 철강, 시멘트 등 6개 품목의 경우, 유럽으로 수출할 때에 생산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했는지, 이에 대해 얼마나 비용을 지불했는지 보고하게 됐습니다. 시범 기간이기에 품목은 6개에 그치지만, 이후에는 품목도 늘게 될 것이고 ‘보고’를 넘어 비용을 지불해야 합니다. 일찍이 온실가스 감축에 정부 예산과 기업의 투자를 쏟았던 EU가 ‘비용 회수’에 나선 겁니다.
EU의 ESRS(European Sustainability Reporting Standards, 유럽지속가능보고기준)에 이어 IFRS(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 국제회계기준)는 기후 관련 공시 표준 최종안을 발표했습니다. 그동안에는 우리가 원가를 중심으로 경제 활동을 하고, 해외로 상품을 수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동등하거나 또는 더 뛰어난 품질의 제품을 얼마나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지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지속가능성’에 집중해야 하는 겁니다. 수년 전만 하더라도 ‘그런 정성 평가가 어떻게 가능하겠어?’, ‘그게 상호 비교를 할 수 있긴 한 거야?’ 의문이 쏟아졌지만 이젠 다릅니다. 지표화, 표준화를 통해 비교 가능해졌고, 온실가스에 값을 매기는 카본 프라이싱으로 ‘배출=비용’이 됐으니까요.
이러한 변화 자체를 리스크로 느끼는 이들이 많습니다. 국내에는 그동안 온실가스를 얼마나 배출하고 있는지 측정 한 번 안 해본 이들도 많고, 그걸 어떻게 줄여야 할지도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야 점차 ‘탄소 배출’에 관심을 갖고, 감축은 어려워도 관리는 해야겠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후 리스크엔 비단 ‘탄소 배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탄소와 더불어 지구 시스템을 순환하는 물 또한 주요한 리스크 중 하나입니다. 워터 리스크는 정부는 물론 기업과 시민 개개인에게도 중요한 일로 거듭났습니다. 전 세계 400곳 넘는 글로벌 기업이 가입한 이니셔티브인 RE100은 이제 국내에서도 ‘시사 상식’으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RE100을 발족한 CDP(Carbon Disclosure Project, 탄소공개프로젝트)는 기업들로부터 ‘재생에너지 사용량’이나 ‘재생에너지 100% 달성 목표’와 같은 정보만 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과 관련한 정보도 매우 중요하게 보고, 요구하고 있죠. 탄소만 공개하는 것이 아니라, 물도 공개함으로써 물 안보(Water Security)를 챙기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면 워터 리스크는 무엇일까요? 당장의 ‘물난리’ 역시 대표적인 리스크입니다. 가뭄이 계속되다가 갑작스레 짧은 시간에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지는 일 말입니다. 서울 강남역 일대가 물에 잠기고, 태풍의 여파로 쏟아진 비에 세계 최고의 용광로가 물에 잠기고, 역대 최장 기간의 가뭄에 저수지 곳곳이 말라붙거나 지하수가 동나는 일들... 모두 한 해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국토 면적이 크지 않은 나라에서 어디는 물이 넘쳐서 문제, 어디는 물이 없어서 문제였던 것이죠.
이러한 강수의 양극화는 앞으로도 더욱 빈번해질 전망입니다. 이는 배수와 취수 모두 어려워짐을 의미하고, 결국 물관리 고도화가 요구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어디보다 한국수자원공사의 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물론, ‘물관리 능력자’인 한국수자원공사에게 주어진 과제는 또 있습니다. 반도체 기업의 상품이 ‘반도체’라면, 한국수자원공사의 상품은 ‘안전한 물’이라고 볼 수 있죠. 워터 리스크의 최소화와 더불어 수처리 과정 전반의 탄소중립과 그 기술의 확대·전파도 주요 과제이자 역할입니다.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물의 본질적인 특성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 물을 사용하고, 버리는 과정 대부분은 이러한 본질적인 특성을 거스르는 일이고요. 그 과정에서 ‘에너지의 사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상수원을 확보하고, 그 물을 정화하고, 가가호호 보내는 과정에도. 가정이든 공장이든 각 사용처가 사용한 물을 보내고, 정화하고, 다시 왔던 곳으로 돌려보내는 과정에도. 어느 과정 하나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 에너지 대부분은 전력이고요. 여전히 지자체들이 운영하는 정수장 대부분은 많은 전력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 양도 상당해 지자체가 소비하는 공공전력사용량에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요. 이는 ‘전기의 탈탄소’만으로 해결할 일이 아닙니다. 펌프, 관망, 멤브레인 등 효율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하죠.
한국수자원공사는 수돗물 생산과정에서 탄소 발생을 줄이기 위해 운영 중인 광역정수장을 대상으로 탄소중립 정수장과 AI 정수장을 확대하고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발전을 더욱 확대하고, 각종 기술개발을 통해 효율을 개선해 원단위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있습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성과와 노하우를 지자체가 운영하는 정수장 시설에 전파하는 낙수효과까지도 한국수자원공사의 몫일 겁니다. 그리고 물을 ‘물 쓰듯’ 하지 않도록, 귀한 물, 소중한 물로 여겨지도록 시민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노력 또한 함께여야 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