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걷다 : 한국수자원공사 웹진 2024. MAY VOL.674

물길 따라 걷다

초록으로 활짝 핀 봄의 절정,
오월의 금산

어느새 봄빛이 짙어져 절정에 달했다. 봄빛 물들어 내내 반짝이던 물가는 저마다 다른 채도의 초록빛이 무성하다. 금산의 물길도 그러했다. 헤아릴 수 없는 저 먼 세월을 간직한 금강이 만나고 또 흩어지며, 초록빛 금산의 첩첩산중 사이로 흘러 들어가 존재의 여부를 찾고 또 묻는다. 캠핑으로 찾은 가족들에게는 쉼의 물길로, 차박하러 온 연인들에게는 반짝이는 기록으로 흐르고 아이들의 붉은 땀을 식혀주곤 한다. 절정에 치닫아 짙게 물든 봄의 마지막 여정이 펼쳐지는 금산으로의 초대.

글‧사진 이시목(여행작가)

길 끝에서 시작하는 적벽강 이야기

‘겹겹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직선보다는 곡선에 끌리고, 정형보다는 비정형적 풍경에 혹한다. 초록빛 푸진 물가와 불빛 적어 별빛 도드라진 밤을 사랑하고, 봄볕 소복하게 받은 봄풀에 자주 반한다. 금산은 이 모든 취향에 맞춤한 듯 딱 들어맞는 곳이다. 금산에서도 무주와 잇닿은 부리면 일대의 금강 유역은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다. 그 산자락 겹겹이 이어지고 물굽이 유난한 곳에 적벽강이 있다. ‘적벽(붉은 벼랑)을 적시며 흐르는 강’이라는 뜻의 적벽강은 부여 백마강처럼 적벽 일대 구간의 금강을 콕 찍어 칭하는 이름이다. 그래서 강이 갖는 구간의 속성보다 공간이 주는 지점의 의미가 크다. 더욱이 적벽강은 무주를 지나온 금강이 가로막아 끊어지는 막다른 길에 느낌표처럼 맺힌 절경. 더는 갈 수 없는 길이 주는 애잔함이 있다. 그러나 물은 협곡을 굽이굽이 흘러 기어코 서해바다에 이른다. 잠시나마 그 장엄한 서사 앞에 서고 싶어 굳이 적벽강에서 여정을 시작했다. 적벽 앞 너른 자갈밭에 앉아 ‘붉은 벼랑’이 통째 담긴 강 풍경을 바라보는 시간도 오래 그리웠다. 어디를 봐도 자극적이지 않은 풍경들. 적당히 헐렁해 더 편한 옷처럼 잠깐씩 깃드는 외로움도 반갑다. 그때나 지금이나 적당한 외로움이 여유를 준다. 딱 그 정도의 여백이 필요한 참이었다.


▲ 4~5월이면 금산 곳곳에서는 조팝나무가 무리지어 핀다.

진안 뜬봉샘에서 발원해 서해로 흘러드는 금강 중, 금산군 부리면 구간을 부르는 금강의 또 다른 이름이다. 붉은색을 띠고 있어 ‘적벽’이라 불리는 바위벼랑을 휘감아 흐르는 물줄기란 뜻으로, 산과 산 사이를 굽이져 흐르는 것이 특징이다. ‘적벽강 비단물길’로도 불리는 적벽 일대는 맞은편에 자갈밭을 넉넉하게 품고 있어 최근 ‘차박 성지’로 입소문났다.

▲ 맑고 청정한 풍경 덕에 금산은 오래 전부터 캠핑하기 좋은 곳이었다. 지금도 물가 풍경을 즐기기 좋은 캠핑장이 많은 곳으로 유명하다.

봄날의 비단강이 가장 눈부신 자리

제방을 따라 금강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왼쪽 옆구리에서 금강이 윤슬로 빛난다. 적벽강을 품어 안은 수통리를 지나 도파리로 가는 길이다. 수통리와 도파리는 금강 상류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마을이다. 봄가을이면 안개 짙어 피안 같고, 여름이면 산그늘 시원해 또 피안같은 자리다. 강가 나무들도 저마다 채도가 다른 초록 이파리들로 윤슬처럼 빛나 주위가 다 환하다. 누구였을까. ‘꽃 필 때는 섬진강이고, 신록 필 땐 금강’이라고 맨 처음 말한 이가. 그의 말대로 신록 짙은 오월엔 역시 금강만한 곳이 없다. 도파리를 지나면 길은 금강에 바투 붙어 흐르는 자전거도로로 이어진다. 이곳에서부터 금산청소년수련원이 있는 용화리 일대가 펼쳐진다. 지금은 주말이면 오색의 텐트들이 볕을 쬐는 캠핑장이 이 구간에 여러 곳 있다. 벚꽃 터지는 봄날엔 인삼골 오토캠핑장이 끌리고, 한여름엔 그늘 짙은 금산청소년수련원캠핑장이 유혹적이다. 특히 수련원이 있는 일대에는 반딧불이가 산다. 초여름이면 크리스마스트리에 켜놓은 꼬마전구 같은 불빛들이 물가를 가득 채워 은하수처럼 빛난다. 멈췄다가 날고를 반복하는 반딧불이의 계절이 오면 다시 금산을 찾을지도 모르겠다. 그땐 밤부터 아침까지의 시간을 꼬박 누려볼 생각이다. 바람 잔잔한 날 이곳의 아침은 그림으로는 그려내지 못할 초록의 빛들이 수면에 가득할 것이므로.


▼ 제원면 용화리 일대에는 반딧불이가 산다.

금강 상류의 강가를 낀 마을 중 하나로, 과거에는 금산 약초장에 약초와 땔감을 실어 나르던 나룻배가 드나들던 곳이다. 이곳은 금산에서 손꼽히는 반딧불이 서식지다. 금산청소년수련원 이후로는 길이 없어 ‘한적한 강마을’ 특유의 적요를 누리기 좋다.


강따라 물굽이 휘돌다 만나는 비경

금강 상류지역엔 물굽이가 유독 많다. 물길이 얼마가 자주 굽이지고 휘어지는지 ‘U’자나 ‘S’자는 흔할 정도다. 지도를 보면 ‘W’자나 오메가(Ω) 모양으로 굽이치는 물길도 보인다. 금산에서 금강을 따라 걷는다는 건 물길의 흐름대로 휘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는 뜻일 것. 길이 크게 한 번씩 휘어질 때마다 같은 듯 미세하게 다른 풍경들이 다가오며 열린다. 그러다 ‘와’ 하는 함성을 일게 하는 곳이 나타난다면, 그곳이 바로 원골유원지다. 부엉산 바위벼랑을 타고 흐르는 인공폭포가 있는 원골유원지는 최근 금산에서 가장 ‘핫’한 곳이다. 금강 상류지역의 물굽이를 조망할 수 있는 ‘월영산 출렁다리’ 덕택이다. 금강을 기준으로 양 옆에 있는 두 개의 산이 출렁다리로 연결되면서, 시선에 담기는 풍경의 넓이와 높이가 부쩍 달라졌다. 일명 ‘뷰 맛집’으로 등극했다. 소문난 뷰포인트는 월영봉전망대. 디딜 때마다 맥박이 쿵쿵대도록 출렁거리는 다리를 지나 월영봉전망대에 닿으면, 부엉산 기슭을 ‘S’자로 휘도는 금강의 면모가 제대로 드러난다. 물이 산을 깎은 것인지 산이 물을 가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산과 산 사이를 굽이져 흐르는 금강이 얼마나 빼어난 물길인지, 한눈에 훤하다. 금강은 4대강 중 유일하게 북으로 흐르는 강이다. 북쪽이 위쪽이라는 인식으로 보면 ‘거꾸로 흐르는 강’이다. ‘거꾸로’라는 단어는 어쩐지 힘이 세다. 어쩌면 물 스스로 의 힘으로 길을 찾은 것은 아닐지.


▲ 월영산 쪽 전망대에서 금강을 조망하는 여행객의 모습.

2022년 개통한 금산의 ‘핫플’이다. 금강 45m 상공에 띠처럼 걸쳐 있는 275m 길이의 다리로, 월영산과 부엉산 사이를 잇는다. 적벽과 함께 금강 상류지역의 풍광을 누리기 좋은 곳으로, 주탑이 없는 형태로 설계돼 출렁거림이 더하다. 주변에 기러기공원과 원골인공폭포 등 즐길거리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