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한복판에서 식수를 사재기하고, 곳곳의 급수가 끊기며, 주민들이 트럭에 실린 물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강원 강릉에서 실제로 벌어진 장면입니다. 강이 마르자 생태계는 무너졌고,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이동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강릉 지역은 올여름 기록적인 가뭄에 시달렸습니다. 주요 저수지의 저수율이 10% 안팎까지 떨어지며 약 4만 가구가 제한급수를 경험했습니다. 관광지 예약은 줄줄이 취소됐고, 농업은 물론 지역 경제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강 하류의 저서생물 개체수는 급감했고, 물고기 산란지는 수온 상승과 유속 저하로 기능을 잃었습니다. 흐르지 않는 강은 생태계와 사람 모두에게 위협이었습니다.
강릉의 가뭄은 단지 기후변화에 따른 물 부족 문제만을 보여준건 아닙니다. 극심한 이상기후와 이를 대비하지 못한 기존 수자원 인프라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장기적으로는 해수 담수화, 빗물 재이용, 지하수 관리 강화 등 대체 수자원 확보와 함께, 물 분배 체계와 지역 단위의 수자원 순환을 재설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강릉의 가뭄은 ‘기후 이주’의 가능성을 드러냈습니다. 물을 구하기 위해 주민들은 물탱크를 따라 움직였고, 일부는 장기간 다른 지역으로 머무르기도 했습니다. 농업과 관광에 의존하는 지역에서 물 부족은 곧 생계의 위기로 이어집니다. 특히 고령화된 농촌에서 청년층이 빠르게 빠져나가면 공동체는 사실상 해체됩니다. 지금은 트럭에 실린 물을 따라 이동하지만, 머지않아 생활 기반 자체가 이동의 방향을 결정하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 곳곳에서 하천 유량 감소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미국 콜로라도강은 2000~2014년 평균 유량이 20세기 평균보다 약 19% 감소했습니다. 유럽 알프스와 북미 북부 등에서는 봄철 유속 피크가 줄며 강 흐름의 계절성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한 기후 이주는 이미 현실이 됐습니다. 사헬지대 목축민과 방글라데시해안 농민들은 생존을 위해 도시로, 국경 너머로 떠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전쟁이나 박해를 피해 이동한 것이 아니기에 법적으로 ‘난민’으로 인정되지 못합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이동, 이른바 ‘기후 난민’입니다. 기후 이주에 대비하려면 법과 제도의 정비가 시급합니다. 단순히 주거지를 옮기는 지원에 그치지 않고, 생계 재건과 지역 회복을 위한 종합적 대응이 필요합니다. 기후로 인해 이동하는 사람들을 사회적 안전망 안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처럼 기후로 인한 물 위기를 막고 지역 공동체와 생태계 모두를 지키기 위해서는 가뭄에 대비한 근본적 대책이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기후변화 시대의 물 위기가 지역 사회 붕괴나 기후 이주로 이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니까요.
강릉에서 벌어진 가뭄은 미래가 아닌 현재의 경고입니다. 물을 확보하지 못한 지역의 붕괴를 막는 일은 생태계 회복이자 공동체 생존의 조건입니다. 물이 흐르지 않는 강은 결국 사람이 떠나는 강이 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