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
P 책임은 틈만 나면 L 주임의 자리로 왔다.
L 주임의 책상 가림막에 기대 이 얘기 저 얘기를 늘어놨다.
김장 담근 얘기, 자식 자랑 얘기, 옆 부서 사람 흉보는 얘기,
시어머니와 싸운 얘기 등 정말 별별 얘기를 쏟아냈다.
L 주임도 처음에는 잘 들어줬다. 상사이기 때문이었다.

필자가 실제로 상담했던 이야기다. 직장 상사와의 관계는 중요하다. 상사와 불편하게 지내고 싶은 직장인이 어디 있겠는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관계 유지를 위해 상사와 수다를 떨어주는 정도의 노력은 필요하다. 문제는 정도(程度)다. 상사와 얼마나 많이 수다를 나눠야 할까? 상사와 적당히 수다를 나누고, 적당히 수다 거리(?)를 두는 방법을 소개한다.

첫째, 사적(私的) 수다를 공적(公的) 수다로 바꾸어라.

수다 중 단도직입적으로 업무 이야기를 꺼내는 방법이다. 적당한 틈을 봐야 한다. 이때다 싶으면 얘기를 꺼낸다. “아 맞다. 과장님 근데 제가 올려 드린 결재 보셨나요?” 대화의 소재를 사적인 영역에서 공적인 영역으로 순간 옮겨가는 기술이다. 부하 직원의 입장에서도 부담이 덜하다. 대화 자체를 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무 얘기를 자연스럽게 꺼냄으로써 업무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인식도 줄 수 있다. 일석이조(一石二鳥)다.

둘째, 대화의 주제에 따라 공간을 분리하라.

상사에게 ‘사적인 대화를 하는 공간과 공적인 대화를 하는 공간은 다르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심리학에는 고전적 조건형성(classical conditioning)이라는 이론이 있다. 쉽게 말하면 새로운 자극과 새로운 반응을 결합(結合) 또는 연합(聯合) 시켜 주는 것이다. 즉 상사의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새로운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 목표다.
방법은 간단하다. 내 자리에서 상사의 수다가 길어지겠다 싶은 순간 말을 꺼내는 것이다. “김 과장님, 잠깐 차 한잔 마시겠어요?” 상사의 수다가 시작되는 순간 다른 공간으로 상사를 유도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상사에게 ‘잡담하는 곳과 업무 얘기하는 곳은 다른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 있다. ‘이왕 수다를 나눌 거면 다른 자리에서 하자’라는 것이다. 내 자리에서는 수다에서 도망치고 싶어도 쉽지 않다. 다른 공간은 그나마 사정이 낫지 않은가? 이를테면 휴게공간, 야외, 빈 회의실 등 다른 공간에서는 수다 공격을 받아도 적당한 때에 적당한 핑계를 대고 일어서면 된다.
그러고 보면 뭐든 적당해야 좋다. 적당히 얘기하면 대화가 되고, 과하게 얘기하는 수다가 된다. 적당한 공간에서 적당한 양(量)의 대화를 나눠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