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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역대급 엘니뇨가 찾아올 수 있다’라는 전망과 이를 다룬 기사를 접한 분들이 많을 겁니다. ‘엘니뇨’와 ‘라니냐’에 대해 들어봤지만 무슨 현상인지, 그 현상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현상을 살펴보면 ‘우리 인간은 참 작은 존재였구나’라고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체감하진 못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는 매우 빠르게 회전하고 있습니다. 남북을 축으로 도는 자전이기에 위도에 따라 그 속도는 달라지지만 적도를 기준으로 보면 자전 속도는 무려 1,670km/h에 달하죠. 이 회전으로 적도 부근에선 동에서 서로 바람이 붑니다. 물론 이는 우리 인간의 관점에서 바라본 설명입니다. 공기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움직이는 거야”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지만요. 아무튼 적도 부근에서 강하게 부는 이 바람을 우리는 ‘무역풍’이라고 부릅니다.

동에서 서로 부는 무역풍을 따라 태평양 해수면의 바닷물도 동에서 서로 움직입니다. 바다의 경우 직접 햇볕을 맞는 해수면의 온도가 가장 따뜻하고, 심해로 내려갈수록 온도는 떨어집니다. 바다 위에서 불어오는 무역풍은 결국 따뜻한 해수면의 물을 이동시키고, 그 결과 바다의 아래쪽에 있던 상대적으로 차가운 바닷물은 그 빈자리를 채우죠. 마치 욕조에 뜨끈한 목욕물을 받을 때, 수도꼭지 근처에서 먼 방향으로 손을 휘저으며 물 온도를 신속히 고르게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여기서 ‘욕조’는 곧 태평양을 의미하고요. 아래에 있던 차가운 바닷물이 이처럼 해수면을 향해 올라오는 것을 ‘용승’이라고 부릅니다.

세상 모든 자연 현상이 그렇듯 사시사철 ‘자로 잰 듯 일정한 것’ 은 찾기 어렵습니다. 무역풍도 그렇습니다. 평소보다 강할 때도, 반대로 약할 때도 있죠. 무역풍이 강하면 용승 현상도 강해지고, 무역풍이 약할 때엔 용승 역시 약해집니다. 용승이 강하면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는 평소보다 낮아집니다. 반대로 용승 현상이 줄어들면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온은 평소보다 높아지고요.

이제야 왜 엘니뇨와 라니냐라는 이름이 나오게 됐는지 ‘작명 비화’를 이야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용승은 우리의 어업활동에도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1600년대, 페루의 어부들은 여느 때처럼 고기잡이배를 타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겨울철, 용승이 활발하지 않아 바닷속 물의 순환 또한 활발하지 않았고, 그렇게 따뜻해진 바닷물로 어획량은 기대에 훨씬 못 미쳤습니다. 어민들은 어업을 잠시 멈추고, 뭍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보냈죠. 이 현상을 엘니뇨(El Niño, 남자 아기), 즉 ‘아기 예수’라고 부르게 된 이유입니다. 반대로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낮은 때는 라니냐(La Niña, 여자 아기)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우리나라와는 약 1만 km 떨어진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하지만 한국을 포함한 세계 곳곳의 날씨에도 많은 영향을 주죠. 어떤 영향일까요? 여름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무덥거나, 비를 퍼부을 때입니다. 겨울의 경우엔 포근하거나 눈·비를 퍼부을 때입니다. 기상 현상의 양극화, 기상이변을 부릅니다. 그런데 지난 겨울 동안 라니냐로 평소보다 차가웠던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최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6 ~ 7월 사이, 이 수역의 해수온이 평년보다 0.5℃ 이상 오르며 엘니뇨가 시작되고, 오는 9 ~ 10월 중엔 1℃ 이상 높아지며 강한 엘니뇨, 이른바 ‘슈퍼 엘니뇨’로 발달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가오는 여름, 엘니뇨는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지난 2000년부터 2022년까지, 엘니뇨 영향을 살펴보고자 강수 자료를 들여다봤습니다. 23년의 시간 동안 엘니뇨는 2002년과 2004년, 2009년, 2015년, 그리고 2019년 총 5차례 발생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7 ~ 8월 전국 강수량은 2002년에 ‘금세기 최고’인 854.7㎜를 기록했고, 2015년엔 294.9㎜로 ‘금세기 최저’를 기록했습니다. 강수의 극과 극에 모두 엘니뇨가 함께 했던 겁니다.

이는 기압의 미묘한 위치 차이 때문입니다. 엘니뇨가 발생할 때, 다시 말해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따뜻해지면, 그로인해 이 지역에 상승기류가 발생합니다. 바로 저기압이 형성되는 것이죠. 그 결과, 서태평양엔 상대적으로 고기압이 발달하게 됩니다. 한반도 아래의 서태평양에 자리 잡은 고기압이 동남아 지역과 가깝게 위치하면 남쪽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되는 수증기를 막게 됩니다. 여름철 강수가 평소보다 줄어드는 것이죠. 그런데 이 고기압이 동남아와 조금 떨어져 형성되면 동남아 지역의 앞바다와 고기압의 틈새로 한반도에 다량의 수증기가 유입됩니다. 이른바 ‘대기의 강’이 한반도로 흘러오며 호우를 부르는 겁니다.

이처럼 엘니뇨와 라니냐는 기상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여기에 점차 기후변화로 인한 불확실성의 증대로 기상이변의 가능성은 더 커졌고요. 태초부터 우리에게 주어졌던 조건인 ‘지구의 자전’만으로도 인간의 예측 범위를 넘어서는 일들이 빚어지는데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뿜어져 나온 온실가스가 더 큰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는 겁니다.

지구는 이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인간을 품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태양으로부터 유입되는 열의 89%는 바다가, 나머지 9%는 땅과 빙권이 흡수하고 있죠. 대기에 남는 열은 고작 2%밖에 안 되는 것인데 이런 대기를 우리는 온실가스로 채우고 있습니다. 과연 어느 정도까지 품어줄 수 있을까요? 그 임계점을 시험해 보려는 것일까요?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는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주 속 작디작은 파란 별에서, 그 별에서도 작디작은 존재가 거대한 시스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겁니다. 결국 답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해결하지 않는다면 점차 커지는 불확실성은 홍수로, 가뭄으로, 폭염으로, 때로는 이상 한파로, 그리고 점차 복구하기 어려운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