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멋진 날 : 한국수자원공사 웹진 2024. APR VOL.673

어느 멋진 날

나의 오랜 친구, 나의 오랜 가족
보리와 함께한 가족 사진 촬영

부모님과 세 남매, 다섯 명의 가족이 함께하는 공간에 반려견 ‘보리’가 함께하게 된 건 15년 전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하상화 대리는 어느새 30대가 되었고, 작은 강아지였던 보리는 어느새 노견이 되었다. 반려견과 산다는 건, 어쩌면 무한하고 순수한 사랑을 거저 배우는 것과 같다. 가장 순수한 눈빛으로 사랑을 나누어준 하상화 대리 가족의 막내 ‘보리’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글. 박향아 사진. 김은주 촬영협조. 별사진관





디어 마이 프랜즈, 나의 오랜 친구 ‘보리

가족들은 여전히 ‘2009년의 어느 겨울날’을 기억한다. 반려견 보리가 우리집에 와 가족이 된 날이다. 이웃집의 강아지가 낳은 아이들 중에 가장 작고 연약해 보이는 녀석이 눈에 밟혀 입양을 결심하게 되었고, 걱정과 달리 보리는 형제들 중에 가장 건강하게 자라주었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하상화 대리는 “사춘기 시절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보리였어요”라며 오랜 옛 기억을 꺼내놨다.
“두 살 터울인 쌍둥이 남동생과 참 많이 싸웠거든요.(웃음) 그때마다 우리 보리가 제 편이 되어줬답니다. 제가 사춘기를 무던하게 넘길 수 있게 해준 일등 공신이 바로 보리예요.”
학창 시절, 세 남매에게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가 되어준 보리는 이제 엄마 아빠를 웃게 하는 기특한 막내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남매가 대학 입학과 취업으로 독립하게 되면서, 자식들의 빈 자리를 보리가 대신 채워주고 있는 것. 아버지 하재찬 씨는 “사실 다들 한집에 살 때도 집에 오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것이 보리였어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하상화 대리가 ‘어느 멋진 날’ 코너를 통해 가족사진 촬영을 신청한 것도 ‘보리와 가족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간직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용기를 낸 것.
“우리 보리를 보면 아직도 아기 같은데, 벌써 16살이 됐어요. 눈도 잘 안 보이고, 활동량도 부쩍 줄었고요. 그래서 보리가 조금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보리와 우리 가족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었어요. 사진을 보면 ‘행복한 오늘’을 떠올릴 수 있도록 말이죠.”
사진을 찍는다는 건, 찰나를 영원히 간직하는 마법 같은 일. 가족은 함께하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할 한 장의 추억 속에 간직하기로 했다.



7년 만에 다시 찍는 가족사진


하상화 대리의 집 거실에는 7년 전 촬영한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하상화 대리의 대학 졸업을 기념하며 보리까지 온 가족이 함께 촬영한 첫 번째 가족사진이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두려던 액자의 위치가 살짝 구석으로 옮겨진 건, ‘우리 가족 같지 않게 나온 사진’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모습이 사진에 그대로 담겨 있어요. 어두운 배경과 어색한 미소까지 더해 내가 알던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아닌 거죠. 늘 아쉬움이 남아 오늘은 사진 속에 화목한 우리 가족의 모습이 잘 담겼으면 좋겠어요.”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들리는 신나는 음악과 가족을 위해 준비된 피크닉 콘셉트의 세트. 오늘은 즐거운 가족의 모습이 사진 속에 오롯이 담길 것 같다는 기분 좋은 예감이 든다. 서로의 옷매무새를 정리해 주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연습까지 마치고 나니, 드디어 본격적인 가족사진을 촬영할 시간이다. 밝은 조명이 켜지고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등장했다. 연습이 무색하게 입꼬리가 떨리기 시작하더니 미소 짓는 표정에 어색함이 더해진다. 이때 가족을 다시 웃게 하는 건 역시나 보리다. “자, 가족분들 다 같이 보리 한 번 볼까요?” 사진 작가님의 요청에 보리를 보자마자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엄마 품에 폭 안기는 보리의 모습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활짝 웃게 된다. 보리를 향한 가족의 사랑이 눈에 보이는 순간이었다.


추억을 되새기고 서로를 향한 마음을 나누는 시간


세트 배경을 바꿔가며 가족사진을 촬영하다 보니, 가족들도 어느새 카메라에 익숙해졌다. ‘찰칵’하고 울리는 셔터음 사이로 들리는 가족의 대화 속에는 지난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상화가 20개월 때 쌍둥이 동생들이 태어나면서, 너무 빨리 누나 역할을 해야 했어요. 어릴 때 엄마를 도와 동생을 돌볼 만큼, 뭐든 알아서 잘하는 딸이었어요. 그래서 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있죠. 아이고. 왜 눈물이 나오지.”
어느새 눈시울이 붉어진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우리 엄마 아빠 딸이어서 행복했던 기억밖에 없다”고 말하는 하상화 대리. 실제로 세 남매에게 부모님은 닮고 싶은 롤모델이다. 아버지는 건축사로 일하면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함을, 사회복지사인 어머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진심, 나누는 삶의 즐거움을 알려주셨으니 말이다.
“부모님의 사랑과 가르침 아래 잘 자라서, 사회에서 제 몫을 하고 있으니 감사하죠. 무뚝뚝했던 아버지는 제가 독립한 후로 종종 전화해서 ‘밥은 먹었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물어보시고, 엄마는 집에 갈 때마다 반찬을 한 아름 챙겨주시죠. 첫째 남동생은 이제 곧 결혼해서 자신만의 가정을 만들게 됐고, 둘째는 부모님과 보리를 살뜰하게 챙겨주고요. 이런 가족이 존재하기에 제가 성장할 수 있었어요.”
함께 만든 지난 추억과 서로를 향한 마음이 오고 가는 사이에도 쉴 새 없이 터지는 카메라 셔터. 자연스럽게 번지는 가족의 환한 미소가 뷰파인더에 오롯이 담겼다. ‘찰칵!’ 함께여서 행복한 ‘지금’이 ‘추억’이란 이름으로 영원히 간직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