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사유

모임, 떠나온 사람들의
새로운 관계 맺음

📝글. 김신식 감정사회학자

  • 어쩌다 보니, 모임을 시작했다

    나 같은 잇프피(ISFP)는 외출할 때 에너지가 상당히 필요하다. 막상 집 밖으로 나가면 여기저기를 잘 쏘다니다 귀가하곤 하지만….
    그래도 외출하는 동안 ‘에이, 여긴 그냥 다음에 갈까. 집에서 쉬고 싶네’ 하는 생각과 수십 번 씨름하는 일은 여전히 부담된다. 그런 내가 2년째 집 바깥에서 열리는 영화 감상 모임을 운영하는 데 에너지를 쓴다니. 방금 저 문장을 쓰면서도 믿기지 않는다. 클럽명은 ‘샥샥한 영화 모임’. 내 인스타그램의 캐릭터 이름인 ‘김샥샥’을 따서 지었다. 지금까지 24번의 자리를 가졌고, 108명과 함께했다. 영화를 다 보고 난 뒤 대화를 시작하는 시간. 혹자는 묻는다. 모임을 이어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이게 정말 내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싶을 정도로 멋있는 답변이 나왔으면 좋겠지만, 정작 내 대답은 이러하다. “어쩌다 보니 그리됐네요.”

각자의 자리에서 떠나, 함께하다

내가 운영하는 모임에 대해 계속 곱씹다 보니, ‘어디론가 떠나는 일’과 관련 있었다. 문득 첫 모임이 열린 2022년 6월이 생각난다. CGV 신촌 아트레온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를 보기로 했다. 극장으로 향하기 전 신촌에 위치한 모 카페에 모여 서로 인사를 하는데, 한 분이 자신은 나주에서 올라왔다고 하셨다. ‘와 이 모임이 뭐라고, 나주에서 오셨을까?’라는 감탄과 죄송한 마음이 든 것도 잠시. 모임에 함께하고자 그 먼 곳을 떠나 신촌으로 왔다는 사실보다 놀랐던 건, 모임 참가자끼리 데면데면할까 봐 이야깃거리를 챙겨왔다는 고백이었다. 그 말을 듣고 다들 미안함과 뭉클함이 섞인 표정을 지으며 그분을 바라봤던 기억이 난다.
지난 4월엔,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보고자 모였다. CGV 압구정 아트하우스에서 작품을 보곤 카페로 들어갔다. 한 분이 말했다. 자신은 유학생이며, 다음 날 타국으로 떠난다고. 떠나기 전에 이 모임에 꼭 와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서로 다른 곳에 있던 참가자들은 본인의 생활터를 잠깐 벗어나 같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공간에 모였다. 왜 왔냐고 물으면 돌아오는 답변은 거창하지 않았다. 그래서 좋았다.

  • 때로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를
    해도 괜찮아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2년 넘게 모임을 진행하면서 가장 인상 깊은 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누군가 소감을 말할 때, 이야기가 엉뚱하게 흘러가도 주눅 들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 물론 처음부터 그런 분위기가 만들어진 건 아니었다. 모임 초반, 주선자인 나는 사람들이 영화에 관한 감상기를 나누다가 자신이 겪은 고충을 털어놓는 점이 불편했다. 한데 그 점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보니, 모임이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시작되고 종료되길 바라는 마음이 짙어갔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었다. 나 말고 모임을 찾아온 이들에게 그날의 분위기를 맡겨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에 어색한 기류가 흘러도 분위기를 풀어보고자 괜한 말을 꺼내지 않았다. 침묵이 흐르면 흐르는 대로 그걸 잠시나마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모임을 할 때마다 멤버는 달라졌지만,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됨’에서 오는 안온함은 누구에게나 있는 듯했다. 이는 말할 때 편하다는 반응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영화에 대한 식견을 드러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러면서 영화 감상을 매개로, 다들 어떻게 이 세상을 살아가는지 좀 더 궁금해한다는 걸 확인했다.

그렇게 샥샥한 영화 모임의 정체성은 ‘영화 감상 모임’에서, ‘인생 경청 모임’으로 변해갔다. 영화에 대한 소감을 본론으로 치자면, 모임은 본론과 상관없는 개개인의 인생담이 오가는 자리가 되었다. 대화 도중 각자의 이야기가 어느 방향으로 튈지 모른다는 점은, 모임 날 본 영화의 반전보다 흥미로웠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모임이 흘러갈수록, 참가자들의 집중력을 탓하기보단, 엉뚱한 이야기를 해도 되고, 들어도 되는 자리가 기대되었다.

모임은 어딘가로부터 떠나고 싶은 이들, 무엇으로부터 떠나온 이들이 안도감을 느끼는 대피처이기도 하다. 내게 모임은, 앞서 언급한 이들과 일회성으로 모여 각자 삶에서 해방되고 싶은 바를 나누며 힘을 얻고선, 또 다른 관계를 향해 다시 떠나는 휴게소로 자리매김 하는 중이다.

들어오고 떠나감에
신경 쓰지 않는 모임을 열면서

달리 인상 깊었던 점은 ‘가입과 탈퇴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분위기’다. 이는 고정 멤버를 만들지 않겠다는 모임 규칙에서 비롯되었다. 통상적으로 생각해보면, 모임에 꾸준히 나오는 사람은 당연히 좋다. 한데 모임이 매번 좋을 순 없지 않은가.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모임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언제쯤 떠난다고 말해야 하나,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나 예민해진다. 나는 사람들이 그러한 부담감에서 편해지길 바랐다. 그래서 매회 다른 멤버를 뽑았다. 다행히도 모임을 두고 떠날지 말지 아예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아직까지는 지속 되는 중이다.
그러는 사이, 나는 모임에 온 사람들끼리 연락처를 주고받고선, 그들만의 자리를 새로 만들어 연을 이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참가자들은 단 한 번의 참여로 샥샥한 영화 모임을 떠났지만, 그와 동시에 자신만의 방식과 관심사를 기반 삼아 관계의 끈을 맺어나간 셈이다.
누가 들어오고 떠나는지에 대해 민감해지지 않아도 되는 모임 속 자유는 친밀함에 대한 각자의 생각을 존중함과 결부되었다. 누군가에겐 끈끈함이란 게 도리어 거리감 있는 관계로 느껴졌다. 다른 누군가에겐 어색함이 묘한 친밀감으로 다가왔다. 모임에 온 사람들은 사회가 ‘친숙함’, ‘가까움’이란 이름 아래 규정해 온 관계에서 떠나고 싶은 듯 보였다. 누군가와 가까운 사이, 혹은 먼 사이라는 기존 구도에서 탈피한 새로운 친밀성을 창조하고 싶은 듯했다.
정리하면, 모임은 누군가가 들어오고 떠나감을 두고 아쉬워하는 만남의 형태만은 아니다. 모임은 어딘가로부터 떠나고 싶은 이들, 무엇으로부터 떠나온 이들이 안도감을 느끼는 대피처이기도 하다. 내게 모임은, 앞서 언급한 이들과 일회성으로 모여 각자 삶에서 해방되고 싶은 바를 나누며 힘을 얻고선, 또 다른 관계를 향해 다시 떠나는 휴게소로 자리매김 하는 중이다. 그런 휴게소 같은 모임을 경험한 참가자 한 분이, 귀가하면서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나는 그 말을 선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오랜만에 무해함을 느껴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