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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지구를
살릴 수 있을까?

소방차부터 BTS까지 아이돌의 역사는 무척이나 오래됐지만,
덕질이 지구에 부담을 주고 있다는 건 최근에야 수면 위로 떠오른 사실이다.
무대 위의 우상과 무대 아래의 우리가 이제는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기후위기 앞에서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덕질’이란 무엇일까.

📝글. 조수빈

최애는 폐기물을 남기고

한 아이돌 그룹의 팬 A 씨는 사인회에 가기 위해 같은 앨범을 200장이나 구매했다. 앨범 하나당 한 장씩 들어있는 사인회 응모권 때문이다.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구매한 수백 장의 앨범 중 정작 A 씨가 소장하는 것은 한두 장 정도. 처치 곤란인 앨범들은 중고거래로 되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포장을 뜯지도 않은 채로 버려진다.
팬들의 앨범 대량구매를 부추기는 상술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아이돌 앨범은 CD뿐만 아니라 포토카드, 엽서, 포스터 등의 굿즈 등 구성품이 풍성해 그 자체로 소장가치가 높다. 문제는 이 굿즈들이 랜덤이라는 데 있다. 각 굿즈에는 아이돌 멤버의 사진이 무작위로 들어 있기 때문에 최애 멤버 굿즈를 손에 넣기 위해서는 여러 장을 구매할 수밖에 없다.
이처럼 동일한 가수나 그룹의 앨범을 연속으로 구매해 열어보는 행위가 ‘앨범깡’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K-팝에 해외 팬들이 유입되면서 이러한 팬덤 문화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국내 연예기획사가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 폐기물은 2017년 55.8t에서 2022년 801.5t으로 5년 사이에 약 14배가량 늘었다. 게다가 요즘 앨범은 종이, 플라스틱뿐만 아니라 여러 재질을 섞어 만들어 재활용을 하기에도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인지한 일부 기획사에서는 친환경 소재 앨범과 굿즈를 제작하거나, 물에 녹는 종이를 활용해 앨범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애당초 팬들이 앨범을 사는 이유가 ‘소장’이 아니기 때문에 앨범깡을 부추기는 상술을 먼저 고쳐야 한다는 의견이다.

기후위기에 맞서는 연예 산업의 움직임

글로벌 투어 같은 공연 또한 탄소 배출을 피해갈 수 없다. 항공 이동, 공연장 운영, 티켓 발부, 굿즈 제작 등이 필연적이기 때문이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영국에서 개최된 라이브 콘서트는 매년 40만 5,000t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고 있다.
해외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이러한 문제 앞에서 발 빠른 대응을 보이고 있다.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는 몇 해 전부터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한 여러 장치들을 무대에 마련하고 있다. 공연에 사용하는 전력을 친환경에너지로 대체하기 위해 태양광 타일을 설치했고, 공연 중 신난 팬들의 뜀박질로 생긴 운동 에너지를 전력으로 바꿀 수 있는 장치도 설치했다. 뿐만 아니라 월드 투어를 위한 비행을 최소화하고, 불가피하게 비행을 해야 할 때는 일반 항공유보다 80% 가까이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항공유(SAF)를 사용해 지속가능성을 더했다. 영국 팝스타 해리 스타일스는 비영리 환경 단체 리버브(Reverb)와 손잡고 100회 이상의 투어 동안 3만 개 이상 일회용 플라스틱병을 제거하는 캠페인을 벌였고, 미국의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는 팬들이 스스로 기후행동과 기후정의에 고민하고 실천할 수 있는 부스를 각 공연장마다 마련했다.
이처럼 국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도 보다 체감할 수 있는 개선책이 필요하다. K-Pop 팬들이 아이돌을 만나기 위해 수백 장의 앨범을 구매하던 열정을 이제는 다른 방향으로 쏟을 수 있도록 길을 내어줄 차례다. 다행히 요즘 팬덤 세대는 환경에 관심이 많고, 친환경적인 움직임도 즐거움으로 받아들인다. 한 사람의 ‘가치’가 새로운 덕질 포인트로 작용될 수 있는 시대인 데다 K-Pop이 세계에 미치는 파급력을 잘 활용한다면, 아이돌도 지구를 지키는 역할을 충분히 해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