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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격적인 태풍의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우리가 ‘평년’이라 부르는 30년의 세월(1991~2020년) 동안 태풍의 평균 발생 개수는 8월(5.6개)에 가장 많았습니다. 9월은 5.1개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길어지는 여름의 영향으로 태풍 발생의 시기가 9월로 변하는 모습입니다. 최근 10년(2011~2020년), 9월의 평균 태풍 발생 개수는 5.3개로 8월의 평균(5.1개)을 넘어섰죠. 지난해에도 8월에 5개, 9월에 7개의 태풍이 만들어지며 이 같은 추세가 이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안기는 태풍은 두려운 존재임이 분명하나 전 지구 차원에서 ‘균형’을 찾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남쪽의 뜨거운 열에너지가 북쪽으로 옮겨지기 때문이죠. 도대체 얼마나 강한 에너지이기에 배가 뒤집히고, 전신주나 신호등이 부러지는 등 재해를 입히는 걸까요? 태풍이 갖는 에너지는 평소 우리가 접하는 ‘돌풍’의 10조 배, 나가사키 원폭의 1만 배, ‘역대 최악’으로 꼽히는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의 10배에 달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에너지의 원천은 바로 바다입니다. 정확히는 ‘바다의 열에너지’입니다.

    지구를 달구는 열에너지의 가장 큰 원천은 태양입니다. 지구에 닿는 태양열 중 89%는 바다, 5%는 땅, 4%는 빙권이 품어줍니다. 대기에 남는 열에너지는 불과 2%에 달하죠. 우리가 ‘무덥다’고 느끼는 그 열은 사실 태양이 지구에 전한 에너지 중 극히 일부인 셈입니다. 문제는 인간이 내뿜는 온실가스입니다. 온실가스는 대기를 달구는 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온실가스로 인해 빙권이 점차 녹아 사라지고, 바다는 계속해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활동 때문입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의 집계에 따르면, 1973~2021년에 우리나라의 해수면 온도는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과연 한반도 주변 바닷물만 그럴까요? ‘강한 엘니뇨’가 우려되는 것처럼, 우리나라로부터 1만km 넘게 떨어진 중남미 부근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 또한 평년보다 뜨거운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축적된 열에너지는 비단 ‘해수면’뿐 아니라, 깊은 바닷속까지 뜨겁게 ‘끓이고’ 있습니다. 그 결과, 해양 열용량은 역대 기록을 계속해서 경신하고 있고요. 해양 열용량이란, 수심과 밀도, 비열 등을 통해 구하는 값입니다. 해수면의 온도뿐 아니라 바닷물이 어느 정도 깊이까지 데워졌는지를 알 수 있죠. 1955년 이래, 전 지구 해양 열용량은 337ZJ(제타줄)가량 늘어났습니다. 2021년엔 전년 대비 14ZJ이나 증가했고요. 1ZJ은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 기준, 166만 6,667개에 맞먹는 에너지입니다. 즉, 2021년 연중 내내 원자폭탄이 분당 31.7개씩 터진 셈입니다. 인간의 활동으로 바다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에너지가 축적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바다가 품은 에너지가 많아지면서 태풍에 대한 걱정 또한 커지고 있습니다. 점차 더 많은 태풍이 발생해 우리를 휩쓸고 지나갈 거라면서 말이죠. 하지만 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기후변화로 인한 태풍의 ‘수’는 줄고, ‘강도’는 더욱 세지는 결과가 나타납니다. 온난화로 지구 표면의 온도가 높아지면서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떨어지는 ‘기온감률’이 감소하게 됩니다. 즉, 대기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강력한 상승기류(저기압)가 만들어지기 어려워지는 것이죠. 하지만 “기후변화로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커질 것이다!”라는 걱정은 타당합니다.

    그런데 지구가 뜨거워진다는 것은 곧, 해수면의 온도가 높아지고 열대 대류권 하층에서의 수증기가 늘어나며 바다 깊은 곳까지 품고 있는 해양 열용량 또한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안정화된 대기라 할지라도 한번 태풍이 만들어지게 되면 높은 수온과 풍부한 수증기, 해양열용량의 ‘컬래버레이션’으로 ‘강한 태풍’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죠. 10개의 태풍이 만들어졌지만 대부분 강도가 약하고, 금세 열대저기압으로 변질된다면 우리에게 별다른 피해를 남기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해에 고작 5개의 태풍밖에 만들어지지 않더라도 그중 4개가 초강력 태풍으로 발달한다면, 우리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1960년대, 10년간 연평균 29.6개의 태풍이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2010년대엔 연평균 25.2개의 태풍이 만들어졌죠. 줄어든 개수는 조금씩 통계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역대 한반도 영향 태풍 중 일 최대풍속이 가장 강력했던 10개의 태풍 중 9개는 모두 금세기 들어 발생한 태풍이었습니다. 태풍 세기의 기준이 되는 ‘최저해면기압’이 가장 낮았던 10개 태풍 중 7개도 2000년 이후 발생한 태풍이었고요. 기후변화와 태풍의 변화는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 진행형’인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