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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두희

    선배님, 안녕하세요. 저는 소양강댐에서 댐 운영을 담 당하고 있는 이두희 차장입니다. 올해 7월에 소양강댐에 발령 받자마자 홍수기 대응과 장마가 끝나고 시작된 녹조 대응으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소 양강댐지사 현관에 걸려 있는 댐 방류 사진을 보게 되는데요. 제가 알기로 1981년도에 수문방류 장면을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선배님께서 근무 중이셨던 때였을까요?

    유의균

    네. 지난번에 방문할 일이 있어서 본 기억이 있는데, 정 확히 날짜도 기억합니다. 1981년 7월 12일, 방류 때 사진이죠. 입 사한지 한 달 후에 방류했기에 정확히 기억해요. 그로부터 3년 후, 대홍수로 긴급한 방류가 이뤄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지요.

  • 이두희

    댐 운영을 담당하다보니 궁금한 사항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시스템 전산화가 이루어지기 전이잖아요. 그때 수문방류 의사결정은 어떤 절차로 이루어졌는지 궁금합 니다.

    유의균

    당시에 저는 신입사원이었다보니, 고참이 시키는 것 만 열심히 했죠. 사수가 유입량, 방류량을 직접 계산하고 분석 해서 수문 개방을 결정하면, 댐 하류에 있는 주민들에게 대피 방송이 나갑니다. 그렇지만 방송을 못 듣는 사람들도 있을테니, 나는 댐부터 시내까지 직접 뛰어다니면서 물가에 있는 사람들 한테 피하라고 안내하는 역할을 했어요. 땀을 흘리며 열심히 뛰어다녔던 기억이 나네요.

  • 이두희

    요즘은 SMS, VMS, FAX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긴급 상황이 전파되는데, 고생이 많으셨겠어요. 저는 오늘 선배님을 뵙는다고 해서, 선배님께서 근무하셨던 당시에 기록했었던 소 양강댐 관리연보를 찾아보고 왔습니다. 고서처럼 세월의 흔적 이 녹아있는 연보 중 1984년의 집중호우 기록을 보니 긴박했 던 상황이 짐작이 가더라고요. 당시 상황에 대해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유의균

    1984년 당시 폭우를 동반한 태풍 ‘준’의 영향으로 피 해가 커지는 가운데, 소양강댐 상류 유역에도 폭우가 시작됐어 요. 9월 1일~2일 이틀동안 약 400mm 정도의 폭우가 집중적으 로 쏟아졌죠. 당시 일부 직원들이 상류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출장을 갔는데, 도로가 유실되어 다시 돌아오기도 했죠. 이후로 도 폭우는 계속됐고 댐 수위가 급격하게 높아지면서 방류 계획 을 세워야 했는데, 당시 댐 하류 상황을 고려하다보니 방류 결 정에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이두희

    방류하면 이미 홍수로 피해가 큰 댐 하류의 수도권 지역에 피해가 가중될 것이기 때문이겠죠? 결정이 쉽지 않았 겠네요.

    유의균

    9월 1일, 소양강댐 수위가 계획홍수위에 근접했고 방 류 결정을 더는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콘크리트댐과 달리 사력댐은 모래와 자갈을 쌓아서 만들었기 때문에, 단순히 물이 넘치는 것이 아니라 댐이 무너질 수도 있거든요. 전 직원이 며 칠 밤을 새우며 긴급상황에 대비하면서 수문 방류 결정만을 기 다리는 상황이었죠. 그리고 9월 2일 새벽 1시에 드디어 수문 방 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이두희

    방류 이후 상황은 어땠나요?

    유의균

    방류량을 계속해서 증가시키는데도 유입량이 더 많 다 보니 수위가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급기야 산사태로 인해 방류 시 완충 역할을 하는 시설 위로 토사가 덮치면서, 거센 물 보라가 그대로 발전소를 들이쳐 침수가 되어버렸죠. 전기, 통 신이 두절되고 진입도로가 유실되면서 며칠 밤을 새우던 모든 직원이 그대로 고립되었습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바닥의 물을 퍼내고 쌀 포대에 자갈을 담아 물을 막아내며 서로를 챙겼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 그때 모두 에게 참 소중한 양식이 되어준 것이 바로, 도로가 유실되어 돌아 온 직원들이 ‘혹시 모르니’ 하고 사 왔던 라면 한 박스였어요. 그 때는 ‘이 상황에 라면을 왜 사 왔냐’며 다들 구박했는데, 라면을 부숴 먹으며 허기를 달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 와중에 사택 부녀회에서 주먹밥을 만들어 유실된 도로를 뚫고 가져다주셨 는데, 모두가 허겁지겁 먹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먹은 주먹밥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해요. 요즘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죠?

  • 이두희

    네 맞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ICT 기술, 컴퓨터 보급 이 전으로 실시간 정보처리 속도에 한계가 있어 신속한 의사결정 에 제약이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는 ICT 기술의 발전으로 댐 유역 내 수위, 강수량, 영상 등의 정보가 실시간으로 수집되고, 자동화된 홍수분석 툴을 기반으로 수문 방류 등 댐 운 영 전반의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능합니다. 또한, 최근에는 시대 적 요구와 극단적 홍수·가뭄과 같은 이상기후에 대비하고자 기 존의 물관리 방식에 디지털 트윈, AI 등 첨단기술을 물관리 및 시 설물 안전관리에 도입하는 등의 지속적인 기술력 향상에 노력을 기울이는 한편, 댐 운영에 지역·민관이 참여하여 주기적인 소통 을 통해 협력 기반의 물관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유의균

    약 40년의 세월 속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네요. 당시에 는 청경들을 포함해서 100여 명의 직원이 3·4교대로 24시간 근 무를 했는데, 지금은 많은 부분이 자동화·무인화로 전환되었죠? 외적인 변화도 있죠. 예전에는 국가중요시설로 발전소 및 댐 정 상 등에 접근하거나 사진 촬영하는 것 자체가 완벽하게 통제되었 어요. 팔각정 자리에는 소양강댐을 방호하는 포병대 진지가 있었 고요. 그런데 지금은 댐 정상부를 통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고 하니 참 놀랍습니다. 물론, 소양강댐의 명성은 변하지 않았죠.

  • 이두희

    맞습니다. 많은 선배님의 노력으로 반세기 동안 자신 의 역할을 해온 소양강댐의 50주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영광입니다. 내년에도 저는 이 자리에서 소양강댐의 새로 운 반세기를 준비하겠지요. 오늘 선배님과의 만남이 앞으로 소 양강댐과 함께할 저의 시간에 든든한 디딤돌이 되리라 생각 합니다. 또 50년이 지나 소양강댐 100주년이 됐을 때, 저도 선배님처럼 후배들에게 지금의 소양강댐 이야기를 할 수 있 었으면 좋겠네요.(웃음)

    유의균

    그럼 좋겠네요! 오늘 와서 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니 댐 운영 자동화 시스템, 보조여수로부터 예정된 안정성 강화 사업 등 우리 후배님들의 노력으로 소양강댐이 안전하게 잘 관리되고 있더군요. 반세기 동안 묵묵히 수도권의 젖줄로 역 할을 해왔던 소양강처럼, 소양강댐을 지키는 우리 후배님들 의 노력도 변함없이 계속될 테지요. 그 덕택에 소양강댐이 앞 으로도 굳건히 우리 곁을 지켜주리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