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
  • 이제 ‘9월의 폭염주의보’는 일상이 된 듯합니다. 입추(8월 8일,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는 고사하고 처서(8월 23일,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와 백로(9월 8일, 가을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시기), 추분(9월 23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져 계절의 분기점으로 의식함)에 이르기까지 ‘가을이 오긴 한 것인가’ 의문이 들 만큼 절기의 도래가 무색했죠. 이유는 모두가 짐작할 수 있듯 ‘끓는 지구’ 때문입니다.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끓는 지구(Global Boiling)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 7월에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죠.

    “한반도는 사계절이 뚜렷하고…” 초등교육 때부터 주입된 한반도의 특징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될 상황입니다. 계절은 어떻게 구분할까요? ‘일평균 기온이 20℃ 이상으로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이 여름의 시작일입니다. 가을은 ‘일평균 기온이 20℃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이 시작되고요. 겨울은 ‘일평균 기온이 5℃ 미만으로 떨어진 후, 다시 올라가지 않은 첫날’부터, 봄은 ‘일평균 기온이 5℃ 이상으로 올라간 후 다시 떨어지지 않은 첫날’부터입니다.

    이런 기상학적 계절 구분에 따르면, 이미 우리의 계절은 양극화가 진행 중입니다. 1981~1990년, 113일이던 여름일수는 2011~2020년에 이르러 127일로, 총 2주가 늘었습니다. 반면, 같은 기간의 겨울은 102일에서 87일로 보름이나 짧아졌죠. 연중 넉 달 넘는 시간이 여름이고, 겨울은 석 달도 채 안 되는 게 요즘 사계절 사정입니다. 앞으로가 더 걱정입니다.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지 않을 경우, 2041~2060년 부산과 제주에서는 겨울이 아예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 기상청의 전망입니다. 2081~2100년이면 부산과 제주뿐 아니라 경남, 울산, 대구, 광주, 전북, 전남 등에서도 겨울이 사라지게 되고요. 사계절이었던 시절은 가고 ‘덥거나, 춥거나’ 또는 ‘덥거나, 덜 덥거나’로 변해가는 겁니다.

    당장 올해 10~11월, 장기예보에 따르면 전국 대부분 지역의 기온은 평년보다 덥거나 비슷할 전망입니다. 이젠 그리 놀랍지도 않은 전망입니다. 지난 7월 3일, 사상 처음으로 전 지구 평균 기온이 17.01℃를 기록한 이후 ‘역대 최고 기록’은 연일 깨졌습니다. 지난 10만 년의 시간, 아무리 뜨거워도 북극부터 남극까지 전 지구의 기온 평균값이 17℃를 넘어선 일은 없었는데, 한 달 넘는 기간 17℃를 웃돌기 일쑤였죠. 게다가 적도 부근 동태평양 해수온이 평년보다 1.5℃지 넘게 뜨거워지는 ‘엘니뇨’가 적어도 겨울까진 계속될 걸로 예상되는 만큼, APEC 기후센터는 9~11월 동아시아 계절 전망에서 한반도의 기온이 평년보다 높을 확률을 80% 이상으로 내다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온도와 관련한 지표 대부분은 ‘차가움’보다 ‘뜨거움’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가을 전망 중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단 하나, 바로 강수 전망입니다. 평년과 비슷하게 비가 온다고 하니, 지난해 ‘역대급 가뭄’을 겪은 상황에선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죠.

    물론, 온난화가 부르는 문제점들 대부분이 그렇듯, 이는 ‘극단적인 변동성’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마치 지난 2021년 10월 중순, 전국 대부분 지역에 갑작스레 ‘11년 만의 10월 한파특보’가 내려진 것처럼 말이죠. 뜨겁게 달궈진 지구로 북극 한기를 잡아두는 한대전선 제트기류, 일명 ‘북극 제트’가 느슨해진다면, 북쪽의 찬 공기가 언제든 한반도 상공을 뒤덮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어려운 기상 예측이 더욱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들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순히 ‘온난화 때문’이라고 ‘남 탓’을 할 수 있을까요. ‘끓는 지구의 시대(Era of global boiling)’의 도래를 선언한 구테흐스 사무총장의 지난 발언을 살펴보면, 책임 소재는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 모두가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그의 말을 인용하며 이번 달 지구보고서를 마칩니다.

    “몬순 폭우에 휩쓸려 간 아이들, 불길을 피해 도망치는 가족들, 무더위에 쓰러진 노동자들… 북미와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지구 곳곳에서 잔인한 여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는 재앙입니다. 이 모든 일의 책임이 우리 인간에게 있다는 것은 과학자들에겐 분명한 사실이고요. 모든 것은 그간의 예측, 그리고 반복했던 경고와 일치합니다. 유일하게 놀라운 점은, 이러한 변화의 속도뿐입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시작했습니다. 끔찍하게도, 고작 ‘시작’에 불과합니다. 지구 온난화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끓는 지구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더 이상 망설일, 변명할, 남들이 먼저 움직이길 기다릴 필요도 없습니다. 더 이상 그럴 시간이 없으니까요. 지구 평균기온의 상승 폭을 1.5℃로 제한하고, 최악의 기후변화를 피하는 일은 극적이고도 즉각적인 기후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입니다. 기온 상승 속도가 점차 빨라지는 만큼, 우린 더 빠른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