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메뉴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

80세에 시집을 내 주목을 받은 시인 유안진이 쓴 작품 중에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는 시가 있다. 춘천(春川)은 한자 표기에서도 볼 수 있듯 ‘봄 춘(春)’ 자를 사용하고 있다. ‘봄이 오는 시내, 봄의 고향’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에 가깝다. 봄이 와도 봄을 느끼기 어려운 위치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염원을 담아 춘천(春川)이라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있다. 유안진 시인이 춘천을 보며 봄을 떠올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입추가 지나 도착한 춘천의 새벽녘 소양강은 피어오르는 물안개로 장관을 이루었다. 가만 보며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의 ‘사랑해 마지않을 속의 여인이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바로 그곳’이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4050세대에는 대학 MT의 추억이 깃든 장소로 어쩌면 첫사랑의 추억이 담겼을 테고, 2030세대에는 레트로 감성이 한 스푼 담긴 여행지로 통하는 춘천. 오랜 시간 낭만의 도시, 봄의 고향이란 로맨틱한 별칭으로 불리는 것이 춘천이 갖고 있는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소양강 안개 속 자리한 몽환의 도시

춘천은 안개의 도시로도 불린다. 연중 250일 이상 안개가 피기 때문이다. 새벽녘이면 소양호와 의암호, 춘천호에서 쏟아져 나온 물안개가 도시로 밀려든다. 1970~80년대 청춘을 보낸 중년들이 춘천을 가장 낭만적인 여행지로 기억하고 있는 까닭은 아마도 춘천의 안개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경춘선 열차를 타고 춘천역에 내린 연인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몽환 같은 안개속으로 도망치듯 걸음을 옮겼으리라 상상해 본다. 옅게 미소짓는 재미있고 설레는 상상이 아닐까. 춘천은 그런 도시다. 젊음을, 청춘을 상상케 하는.
충주호와 더불어 국내에서 가장 큰 호수로 꼽히는 곳이 바로 소양강이다. 지금은 소양강댐으로 대중에게 더 잘 알려졌지만, 한때 소양호에는 양구와 인제까지 다니던 배가 있었다. 겨울 속초나 설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내설악의 코앞까지 다다르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모두 지난 일이 되었다. 지금은 관광객들을 태우고 10분 내외로 청평사까지 가는 유람선만이 오간다.
소양강의 거대한 담수량이 만들어 내는 안개는 두텁다. 일교차가 큰 가을 무렵이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분분히 피어오르는 안개 속으로 물오리가 떼를 지어 유영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런 꿈결 같은 풍경은 오직 춘천에서만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안개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소양5교로, 이곳에는 전망대도 있다. 11월이 되면 상고대를 찍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호수 옆 비포장도로로 사진작가들이 가득 줄짓는다. 아침 햇살이 수면 위로 사금파리처럼 뿌려지고 우윳빛 안개가 피어오르면, 햇살과 안개가 뒤섞여 호수는 어렴풋한 풍경을 연
출한다. 가을 녘 춘천에 들른다면 이 풍경을 놓치지 말 것. 숨겨진 비경 중 하나다.

청평사에 깃든 지독한 사랑

운치 가득한 소양강 뱃길은 사라져 버렸지만, 소양강의 물줄기를 따라가는 구불구불한 길은 남아있다. 오봉산 자락의 배후령을 타고 넘어가는 호반 도로가 바로 그 길이다. 이 길을 구불거리며 따라가면 청평사에 닿는다. 고려 때(973년) 세워진 이 천년고찰은 젊은 연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사로 유명하다. 주차를 하고 나서 절까지 약 2km의 길이 이어진다. 울울창창한 숲길이 이어지는데 절도 절이지만 절까지 이르는 이 숲길이 여간 운치 있고 좋은 것이 아니다. 청평사를 찾는 연인들은 배를 타고 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제법 근사한 데이트를 하는 셈이다. 게다가 이 절에는 지독한 사랑 이야기마저 깃들어 있으니, 연애를 북돋우는데도 더없이 좋겠다. 이야기는 대략 이렇다.

'옛날 당나라 태종에게 어여쁜 공주가 있었다. 그런데 그 공주를 짝사랑하는 청년이 있었는데, 언제나 그렇듯 그 청년이 평민이었다는 데서 비극이 시작된다. 사랑을 이룰 수 없었던 총각은 상사병에 걸렸고, 왕은 청년을 죽인다. 하지만 죽어서도 공주와 함께하겠다는 총각은 상사뱀으로 환생해 공주의 다리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결국 공주가 야위어가자 부처님에게 빌어보기로 하고 발길이 닿은 곳이 고려의 청평사다. 밤이 늦어 동굴에서 노숙하고 이튿날 잠깐 불공을 드리고 오겠다는 공주의 말에, 어찌 된 일인지 뱀은 10년 만에 떨어져 주었다. 하지만 기다리다 조바심이 난 상사뱀은 공주를 찾아 절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청평사 회전문 앞에서 벼락을 맞고 폭우에 떠밀려 죽고 말았다.'

청평사 회전문은 상사뱀이 돌아나갔다고 해서 회전문이라고 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름이 회전문이라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을 생각하겠지만 청평사 회전문은 ‘回轉門’이 아니라 ‘廻轉門’으로, 회전(廻轉)은 윤회전생(輪廻轉生)의 줄임말이다. 오래전 첫사랑과 같이 춘천에 깃든 옛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이 있다면, 공지천의 에티오피아 참전비 옆에 들어선 ‘이디오피아의 집’을 기억하리라.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비 옆에 들어선 이카페에서는 당시만 해도 흔히 맛볼 수 없는 원두커피를 냈다. 1968년 개업이래 단 하루도 문을 닫은 적이 없다고 한다. 카페에서 커피를 사 들고 공지천을 유유히 거닌다. 의암호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 풍경이다. 오리배가 무심하고 한가롭게 흔들린다. 낙엽이 떨어지는 수면은 간간이 파문을 일으킨다.

한국 소설의 거장 김유정의 흔적

김유정은 춘천을 대표하는 작가다. 짧은 생애를 살다 갔지만, 한국 문학사에 깊고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그의 고향이자 다수 작품의 배경이 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 김유정문학촌이 조성되었다. 생가와 전시관, 연못, 동상 등이 있는데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기 좋다. 문학촌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김유정역이 나온다. 원래 이름은 신남역인데, 김유정문학촌이 만들어지면서 김유정역으로 바꿨다. 김유정역 바로 옆에는 옛 기차역이 있다. 옛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역이라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이 많으니 꼭 들러보시길.
저녁 무렵에는 소양강스카이워크로 발길을 돌려보자. 스카이워크는 비교적 근래인 2016년에 생긴 새로운 명물로, 투명한 바닥 구조물이 인상적이다. 마치 소양강 위로 하늘을 걷는 듯한 느낌이 준다. 이곳은 특히 저물 무렵, 노을 지는 풍광이 아름답다.

  • 공지천 유원지

    북한강과 이어지는 지방 하천인 공지천은 춘천을 대표하는 도심 속 휴식 처다. 잔잔히 흘러가는 공지천 양쪽으로 공지천조각공원, 의암공원 등 다 채로운 시설을 갖췄으며 공지천교와 그 아래 보행교를 통해 물길 양쪽을 쉽게 오갈 수 있다. 수변 산책로와 자전거길은 계절별로 아름다운 풍광을 선사해 사계절 인기다.

    주소 강원 춘천시 근화동 690-1

  • 의암호

    호수 면적 17km2, 너비 5km, 길이 8km, 춘천시에서 남서쪽으로 12km 떨 어진 삼악산(三岳山) 계곡 국도변에 있는 인공호수다. 춘천이 호반의 도시 라 일컬어진 계기가 된 것이 바로 의암호 조성부터 시작되었다 해도 과언 이 아니다. 타원형의 호수 풍경은 춘천시와 삼악산의 풍치와 잘 어울려 인 공호라기보다 자연호의 정취가 느껴질 만큼 아름답다.

    주소 강원 춘천시 서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