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걷다 : 한국수자원공사 웹진 2024. MAR VOL.672

물길 따라 걷다

진주를 품은 남강
남강을 닮은 진주

연둣빛 무성한 강가와 꽃비 흐드러진 호수… 진주에는 이른 봄이 활짝 피었다. 환한 봄 속을 걸으며 따스한 햇살과 화려한 조명이 퍼지는 물길의 낮과 밤을 오래도록 눈에 담았다. 아침에는 바람이 좋아 설렜고 낮에는 볕이 따사로워 행복했다. 반짝이는 남강에 스민 저녁의 기운과 봄밤의 냄새 또한 얼마나 좋은지. 벌건 동백꽃부터 노오란 개나리까지, 봄날의 옷을 입은 진주를 걸었다.

글·사진. 이시목(여행작가)


진양호



남강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경호강과 덕천강이 만나는 자리에 있어 경관이 수려하고, 주변에 남강댐물문화관을 비롯한 동물원, 진양호 전망대, 진주시전통예술회관, 진주 전통 소싸움 경기장 등 볼거리‧즐길 거리가 많아 진주시의 관광명소가 됐다. 특히 벚꽃이 만개하는 봄날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호반 따라 느릿느릿 봄 속을 걷다

언젠가 지인이 물었다. "네게 여행을 부추기는 낭만적인 단어는 무엇이냐"고. 단숨에 "연둣빛"이라고 답했다. 연둣빛은 갓 움튼 새싹들의 힘찬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기특한 마음이 들어 혼자 슬며시 웃게 되는 빛깔이기도 하다. 진주는 그토록 환하게 차오르는 연둣빛의 에너지를 만끽하며 걷기 좋은 곳이다. 유려하게 흐르는 남강을 끼고 있고, 도시 한쪽 끝에는 보석처럼 반짝이는 진양호를 빚어 놓아 눈이 호강하는 걸음걸음이 펼쳐진다.
봄은 땅에서 오고 가을은 하늘에서 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봄날의 물가에 한 번이라도 서본 사람들은 안다. 봄은 물가에 가장 먼저 깃들고, 물가에서 가장 찬란하다. 여기, 진주도 그러하다. 남강에 가장 먼저 깃들고 진양호까지 이어져 환히 빛난다. 봄빛 가득한 도시의 물가는 진주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사는 일상의 공간이 되었고, 지극히 진주다운 풍경을 여럿 거느린 충절과 풍류의 땅으로 자리 잡았다.
이번 진주 여행의 시발점은 진양호다. 진양호는 지리산과 덕유산에서 발원한 남강의 물줄기가 줄곧 강으로 흐르다가 진양호란 이름으로 규모를 넓힌다. 남강댐물문화관과 진양호 전망대에 오르면 크고 너른 진양호가 한눈에 보인다. 햇살 밝은 날이면 호수를 감싸안은 산자락의 연둣빛이 그림자로 내려앉아, 때때로 물빛은 파랑보다 연두에 더 가까워지기도 한다.


그러다 봄이 더욱 짙어지면 분홍빛 꽃구름도 시나브로 내려앉을 것이다. 봄날에 진양호반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연둣빛 사이 길과 벚꽃 그늘 아래를 걷는다는 뜻일지도.
진양호 진입로에서 귀곡동 승선장이나 동물원·물문화관 등으로 길을 잡으면, 보다 무성한 벚꽃들과 기록의 유혹이 넘치는 벚꽃 포인트들을 마주할 수 있다. 특히 귀곡동 승선장 일대는 푸른 물빛의 진양호와 분홍 벚꽃이 어루어져 천지를 이룬다.



남강



남강을 따라 남‧북 쪽에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진양호와 남강 일대를 다채롭게 감상하며 걷고 싶다면, 남강댐물문화관~습지원~남강대교~하모의 숲~수변산책로~물빛나루쉼터(망진나루)~남가람공원~진주대교~진주성(촉석나루)~남강음악분수대~진양호 전망대 코스를 추천한다. 강의 남‧북 쪽은 남강대교와 진주대교를 통해 오갈 수 있다. 3월께면 남강의 김시민호 운항이 재개된다. 김시민호를 타면 한층 운치 있는 남강을 감상할 수 있다.


꽃처럼 터지는 봄 햇살을 등에 지고

봄날에는 어쩐지 내딛는 걸음에 힘이 더 잘 붙는다. 온도와 습도가 적당해 몸이 한층 가볍고, 연둣빛이 주변 자락에 충만해 마음에도 볕이 들기 때문일 테다. 주위를 자주 두리번거리게 되는 것도, 목을 길게 빼고 걷는 시간이 잦아지는 것도, 다 마음을 살갑게 간질이는 봄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제법 도톰해진 버드나무 새싹들과 물오리의 발장구 소리가 들리고, 물과 땅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들꽃들의 작은 움직임도 보인다. 소리도 없이 와글와글 수다처럼 쏟아지는 봄 햇살에 등이 따스한 기분이 드는 일이 반갑다. 봄날에 남강을 걷는다는 건 어쩌면 이 평범하 소박한 생명들의 기척과 내 마음의 변화를 알아채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낮은 언덕을 오르내리던 길이 평지가 되면 물줄기가 호수를 벗어나 다시 강이 되었다는 얘기다. 이곳에서부터 길은 연둣빛 버드나무 지대와 높다란 바위 벼랑을 지나 울창한 대숲에 이른다. 남강을 기준으로 진주성과 마주 보는 자리에 있는 남가람공원 대숲은 진주가 예부터 자랑하는 세 가지 절경 중 하나다. 바람이 불 때마다 사각사각 연필 깎는 소리가 나는 대숲은 멍하니 앉아 자연의 움직임을 음미하기에 좋은 자리다. 맑은 날 산책길을 걷다 강변 잔디밭에 돗자리를 깔고 앉으면, 남강은 윤슬로 눈이 부시고 대숲은 바람에 싱그럽게 흔들린다. 가끔은 이런 풍경에 기대어 다음 시간의 한때를 살아가도 좋겠다 싶다.


▲ 진주성 맞은편 강가에 있는 대숲. 울창한 대숲 사이에 산책로가 있어 느릿느릿 걸으며 숲의 기운을 느끼기 좋다.



진주성



진주 제일의 볼거리로 필수 관람 포인트는 세 곳이다. 조선시대 3대 누각으로 알려진 촉석루(복원)와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투신했던 의암,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바로 그것. 성곽을 따라 한 바퀴 휘이 돌며 산책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까딱하다간 놓칩니다, 낭만의 봄밤

봄기운 속에 한낮의 남강을 따라 걱정일랑 떨구며 걸었더니 어느새, 그림자가 길어졌다. 생기발랄한 연둣빛이스러지는 만큼 들어차는 남강의 또 다른 빛깔들이 매혹적이다. 그 가운데 하나가 진주성이 품은 ‘석양의 빛깔’이다. 남강 자락 낮은 벼랑에 자리한 진주성은 고려 말에 토성으로 지어져 석성으로 개축된 천년 고성이다.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진주성의 시간은 대부분 임진왜란일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제 삶을 석양처럼 뜨겁게 살아낸’ 두 인물이 불멸의 이름으로 새겨져 있다. 바로, 김시민 장군과 의녀 논개다. 김시민 장군은 임진왜란 3대 대첩의 하나인 진주성 대첩으로 혁혁한 전공을 세웠지만 이곳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논개는 적장을 껴안고 의암에서 남강으로 투신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면 진주성을 감싸는 석양빛이 찬란한 영광처럼 느껴진다. 참 거룩한 빛깔이다.
해 저물 무렵을 훌쩍 지나면, 남강은 또 다른 모습으로 깨어난다. 진주성의 화려한 조명이 남강에 내려앉아 남강의 밤은 ‘낭만’으로 다가와 곁에 앉는다. 봄의 그윽한 공기와 따스한 바람, 찬란한 석양빛이 고루 섞여 겨우내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인다. 봄의 낭만으로 가득 찬 밤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

▼ 진주를 대표하는 남강유등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