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전한 지구 : 한국수자원공사 웹진 2024. MAR VOL.672

ON전한 지구

우리 밥상에 쌀이 사라진다면?

글. 박상욱 JTBC 기자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몬순 기후 지역은 오랜 기간 이어진 특유의 기온·강수 패턴으로 농업을 일구고, 쌀을 주식으로 살아왔습니다. 라면이나 빵 등 다양한 식사 대용 음식이 많지만, 한국인은 밥심이라고 하죠. 하지만, 오늘날 기후변화는 이러한 패턴을 뒤바꾸며 우리의 밥상 및 식량 안보를 위협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역대 최장기간 가뭄이 이어진 2022년을 기억하시나요? 남부지방 곳곳에선 공업용수뿐 아니라 생활용수까지 바싹 말라붙었습니다. 기온은 오르는데,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비나 눈이 줄면서 온갖 작물이 누렇게 익어가는 것을 넘어 검붉게 타들어 갈 지경이었습니다. 당장 거둬야 할 쌀 수급이 심각한 위기를 맞이할 처지에 빠졌고요.
‘아니, 남는 쌀이 많아서 양곡법을 두고 한바탕 논란이 일었는데, 무슨 쌀 수급 위기냐’ 싶은 분들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불과 10년 후면 이런 양곡법 논란을 ‘배부른 소리 하던 시절’로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현재 논에 심은 벼 가운데 쌀알이 열리는 벼는 92.2% 정도입니다. 그렇게 열린 쌀알 가운데 ‘정상립’이라고 불리는 상품성 있는 쌀알의 비중은 74.1%고요. 그런데 우리가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지 않고 지금처럼 계속 살아간다면(RCP 8.5 시나리오), 2050년 쌀알이 열리는 벼는 51%로 줄고, 그렇게 열린 쌀알 가운데 정상립의 비중은 46.5%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말라 죽거나, 타 죽거나, 기존보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로 쌀알이 과숙성하면서 쌀의 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그간 단위 면적당 쌀 생산량은 크게 늘었습니다. 1970년대, 전국 곳곳에서 논농사를 지어도 쌀을 370kg/10a(에이커)밖에 생산하지 못해 전국적으로 쌀 수요를 조절하기 위한 각종 노력이 잇따랐습니다. 밥 대신 라면과 같은 면식을 권장하기도 했던 당시 상황을 기억하는 분들도 있으실 겁니다. 이러했던 생산성이 1990년대에 들어 473kg/10a로 급증했습니다. 품종을 개량하고, 농법을 개선한 덕분에 농지 면적이 줄어들어도 절대적인 생산량은 증가했고요.

하지만 기후변화로 이 생산성은 2060년대 368kg/10a로 줄어들 것이라는 게 국립식량과학원의 전망입니다. 쌀 걱정을 하던 1970년대보다도 생산성이 떨어지는 겁니다. 1970년대보다 농지 면적 자체도 적다 보니, 전체 생산량은 1970년대보다도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고요.


밥만 문제일까요. 고기도 문제입니다. 높아진 기온은 사람뿐만 아니라 가축에게도 심각한 스트레스를 줍니다.

당장 2023년 7~8월 사이에만 65만여 마리의 가축이 폭염으로 인해 폐사했습니다. 동남아 지역의 스콜을 연상케 하는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도 문제입니다. 지난해 7월, 폭우로 인해 폐사한 가축만도 80만 마리에 달합니다. 폭염과 갑작스러운 호우 그 자체도 문제지만, 그로 인한 감염병 증가도 문제입니다.


기후변화는 국내에서 서식하는 해충이나 바이러스의 변화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당일 배송이 디폴트인 오늘의 엄청난 유통망 발달은 이런 상황에서 감염병 확산의 리스크로 작용하기도 하고요. 또한, 그 감염병이 가축 간의 감염에 그치지 않고 인수 공통 감염으로 이어지게 되면, 이는 가축의 안전뿐 아니라 우리 인간의 보건 위기로도 이어집니다.

‘육고기’뿐 아니라 ‘물고기’도 위기이긴 마찬가지입니다. 전 지구의 해수온이 높아지고 있는데, 한반도 인근 해역의 해수온 상승은 전 지구 평균을 상회합니다. 그 결과,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1998년 130.8만 톤이던 연근해어업 생산량은 2022년 88.7만 톤으로, 원양어업 생산량은 72.3만 톤에서 40만 톤으로 크게 줄었습니다. 이 기간 전체 어업생산량은 283.5만 톤에서 360.4만 톤으로 도리어 늘었는데, 이는 양식의 증가 덕분이었죠. 실제 자연에서 잡히는 물고기의 양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농지 면적은 꾸준히 줄어왔으나 생산성을 높여 쌀이 풍부해진 것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당장은 인간의 노력으로 현시점의 문제를 가리고 있지만, 이 또한 온난화가 지속되면 양식조차 그 생산량이 줄어들거나, 양식 확대로 연근해어업 생산량 감소를 만회하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찾아올 것입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말처럼 지구 온난화의 시대(Era of Global Warming)가 끝나고, 끓는 지구의 시대(Era of Global Boiling)가 도래한 오늘날입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식량안보의 위기는 망고나 바나나, 키위처럼 더운 나라에서 나던 작물이 우리나라 전역에서 생산되는 재배지 변동 수준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상차림 모습이 변화하는 것을 넘어, 익숙했던 반찬이나 밥을 먹을 수 없는 ‘밥상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죠. 이러한 이유가 바로 기후변화를 기후위기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