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수토픽

제27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동메달리스트 허정보 선수

수처리 기술의
태극전사

올여름 전 세계는 파리올림픽으로 뜨거웠다.
승부 하나에 울고 웃으며 즐거워했던 그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프랑스에서 또 한 번의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수처리 기술 종목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소식이다.
국내 수처리 기술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운 한국수자원공사 허정보 선수가 그 주인공이다.

📝글. 조수빈  /  📷사진. 황지현, 한국수자원공사

대한민국 수처리 기술의 새로운 역사

지난 9월 10일부터 6일간 프랑스 리옹에서 제27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가 진행됐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란 제조, 건설, 정보기술 등 약 50개 분야의 종목별 직업기능을 겨루는 대회로, 올해 우리나라는 49개 종목에 57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그중 수처리 기술 종목에 출전한 선수는 한국수자원공사의 허정보 선수가 유일하다.
전무후무한 기록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2019년 러시아, 2022년 독일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4위에 그쳤던 수처리 기술 종목이 올해 메달권에 오르며 당당히 동메달을 목에 걸게 된 것이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는 ‘청년들의 사회 진출을 돕는다’라는 취지에 따라 출전 자격에 나이 제한을 두고 있으며, 각 선수에게는 출전 기회가 한 번밖에 주어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허정보 선수는 단 한 번의 기회에 일생일대의 성과를 거둔 것이다.

Interview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하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해요.
직무교육을 듣던 날 우연히 수처리 기술 1대 선수인 강현구 선수를 만나게 됐어요. 그런데 강현구 선수의 실험복에 붙은 태극마크를 보고 심장이 뛰더라고요. 태극마크는 아무나 달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 모습에 반해 나도 국가대표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어요.
‘4개 분야, 13개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대회인 만큼 훈련 강도가 높았을 것 같아요.
현장에서 근무했을 때 정수처리시설을 자주 다뤄봤었어요. 현장 경험이 대회를 준비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죠. 반면, 하수 처리에 대한 지식과 경험은 부족했어요. 그래서 하수 분야 박사님께 주 1회 과외를 받고, 아산, 포항, 구미 등 하수처리장을 직접 방문해 현장 직원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어요.
규모가 큰 국제 대회인 만큼 대회의 긴장감을 이겨내기 위한 특훈도 했어요. 대회 경험을 쌓기 위해 실제 대회장과 같은 분위기에서 모의 평가전을 진행했는데, 한 번은 평가전 때 부사장님과 부장님들이 오신 거예요. 그 앞에서 평가를 받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실제 대회 때보다 그때가 더 떨렸던 것 같아요.
기술적인 훈련 외에도 준비할 게 많았다고요.
맞아요. 4일간 진행되는 대회를 치르기 위해서는 체력이 필수였죠. 그래서 육상선수단 트레이너와 함께 체력 훈련을 했었어요. 또 국제 경기다 보니 언어 공부도 해야 했죠. 물론 통역해주시는 분이 계셨지만, 급한 상황에서는 제가 직접 소통을 해야 하니까요. 마지막으로 이건 대회에 다녀온 뒤에야 깨닫게 된 건데요. 약을 종류별로 챙겨 가야 했더라고요. 저는 종합감기약 정도만 챙겨 갔는데, 정작 대회 중에 코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애를 좀 먹었답니다.
마침내 태극마크를 달고 대회장에 들어설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해요. 꿈을 이룬 순간이잖아요.
웅장했어요. 특히 저는 ‘수처리 기술’과 관련된 기구만 다뤄왔었는데, 현장에는 포크레인, 항공기 같은 타 종목의 중장비들이 함께 놓여 있어 더욱 압도되는 느낌이었죠.
또 대회장에서 관람객과의 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가깝더라고요. 실제로 대회에 다녀왔던 선배 선수들이 조언하기를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이다”라고 했었거든요. 훈련하는 동안 시끄러운 노래를 들으면 도움이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연습하는 동안 수능금지곡을 많이 들었어요(웃음). 가장 많이 들었던 노래는 샤이니의 ‘링딩동’이에요!
동메달을 걸게 될 거라고 예상을 했었는지요.
첫날까지만 해도 ‘해 볼만 하다’ 싶었는데, 중국 선수가 월등하게 치고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메달권에만 들자’라는 마음으로 마지막까지 간절하게 임했어요. 동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되어 너무 기분 좋아요.
동메달 수상 소식에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요?
주변에서 전화도 많이 오고, 회사 정문에 크게 현수막도 걸렸어요. 가족들도 물론 축하해 줬고요. 사실 제가 농담처럼 가족들에게 ‘◯◯ 동네 ◯◯ 할아버지의 장손녀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동메달 수상’이라고 커다랗게 현수막을 걸자고 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다”라며 웃기만 하더라고요. 사실 제 무던한 성격이 부모님을 닮았어요. 그런 부분들이 대회에서 도움이 됐죠(웃음).
앞으로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적으로는 오는 2026년도 대회에 출전할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싶어요. 선배로서 해줄 수 있는 조언들이 많을 테니까요. 장기적으로는 ‘선수’가 아닌 ‘국제지도위원’으로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다시 한 번 참가하고 싶어요. 좋은 선수를 육성해 감독으로 또 한 번 좋은 결과를 얻는다면 매우 기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