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쓸모
감각을 세워 바라본
무지갯빛 세상
대사 없는 영화, 향기 없는 꽃, 음악 없는 춤이란 상상만 해도 어딘가 허전하게 느껴진다.
세상을 더 다채롭게 채워주는 한 끗, ‘감각’의 소중함을 일깨워본다.
📝글. 조수빈
영화관을 채운 첫 대사
“기다리세요. 여러분은 아직 아무것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재즈싱어>에 등장하는 이 짧은 한 줄은 그간 시각적으로만 영화를 즐기던 관객들에게 영화가 던진 첫 마디이자 발성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기념비적인 대사이다.
1920년대까지 영화는 소리가 없이 영상만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관객들은 연기자의 행동과 자막을 통해서만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영화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시각적인 요소들이었다. 이렇듯 정형화된 영화사에 변곡점이 된 작품이 바로 1927년 10월 개봉한 앨런 크로슬랜드 감독의 <재즈싱어>다. 첫 발성영화로 기록되고 있는 <재즈싱어>에 연기자의 육성 대사가 나오는 장면은 단 두 컷에 불과하다. 나머지 장면은 기존의 무성영화처럼 자막으로 극의 전개를 이끌어나갔다. 하지만 단 두 컷만으로도 관객들에게 전에 없던 희열과 감동을 전하기에 충분했다. 결과적으로 <재즈싱어>는 흥행에 성공했고, 영화 제작사였던 워너 브라더스는 메이저 영화사로 발돋움했다.일각에서는 ‘영화의 본질은 영상의 미학’이라며 발성영화의 제작을 반대하기도 했지만, <재즈싱어>를 필두로 잇따라 발성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영화사는 더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향기로 둘러싸인
클레오파트라
아름다움의 대명사로 알려진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 그는 미모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목소리와 화술을 지녔고, 철학, 과학, 어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그중에서도 결정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홀렸던 치명적인 매력이 있었으니 바로 ‘향기’다.
그는 양손에 장미와 크로코스, 제비꽃 오일을 발랐고, 발에는 아몬드 오일과 벌꿀, 계피, 오렌지꽃 로션을 발랐으며 그가 지냈던 궁정의 마루에는 늘 발꿈치 정도의 높이만큼 장미가 깔려 있었다. 목욕할 때도 언제나 향으로 욕조를 가득 채웠으며, 몸에 동물성 향료를 발라 자신의 이미지를 더욱 고급스럽고 신비롭게 치장했다. 그에게 ‘향기’란 외교적 수단이기도 했다.
그는 로마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기 위해 향수를 썼으며, 이후 안토니우스를 유혹할 때에도 언제나 향유를 뒤집어쓰는 바람에 그의 배가 바닷가에 도착할 때쯤이면 향기가 연안에 먼저 퍼질 정도였다고 한다.
그 가운데 단장하고 누워 있는 클레오파트라는 무척이나 고혹적이었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인 ‘향’이라는 감각은 우리의 뇌리에 스며들어 강렬하고도 깊게 남는다.
그가 지금까지 ‘미인’이라 통하는 이유도 그러한 강렬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최근 청년들이 ‘책 읽는 놀이’에 빠졌다. 신문이나 책을 읽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어진 시대에 독서가 힙한 행위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텍스트힙(Text+Hip)’이라는 이름 아래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일부러 예쁜 북카페를 찾아가 책을 읽고, 독립서점을 방문해 종이책을 둘러보고,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이나 인플루언서의 추천에 따라 책을 사기도 한다.
그리고 SNS를 통해 ‘책 읽는 나의 모습’과 ‘책을 읽은 경험’을 공유한다.
이들에게 독서는 하나의 놀이이자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정확히 말해서는 ‘독서’의 유행이라기보다는 ‘책’ 자체를 유행처럼 소비하는 모습이지만 읽기에 대한 관심과 책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진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유행에 화룡점정을 찍을 소식도 있었다. 지난 10월 한강 작가가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서점가에 한강 작가의 책을 구입하기 위해 줄을 서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 어쩌면 텍스트힙의 유행은 과시적인 성격에서 출발한 걸지도 모르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또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영상 콘텐츠에 밀려났던 책이 어떤 형태로든 다시 주목받고 있다는 건 환영할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