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지구

일상이 된 기후재난

📝글. 박성진 동아일보 기자

기후 위기라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있습니다. 바다 한가운데 고립된 북극곰, 콧구멍에 낀 플라스틱 빨대로 괴로워하는 바다거북이 등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은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곧장 불러일으킵니다. 하지만 그뿐입니다. 안타깝고 걱정스러운 마음이지만 정작 일상을 살아가는 데 큰 불편은 없기 때문입니다. 영화 <매드맥스> 시리즈에서 그려진 황폐한 세상은 하나의 가능성일 뿐, 설사 그런 날이 오더라도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전 세계의 움직임도 더딥니다. 1995년부터 열리고 있는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가 대표적입니다. 29년이 지났지만 COP의 핵심 의제는 여전히 ‘누가 기후위기에 대응할 돈을 얼마나 부담할 것이냐’입니다. 온실가스 배출 감축 의무도 2015년 파리협정 등을 통해 부과됐지만, 법적 구속력은 없습니다. 30여 년 가까이 기후 위기를 막을 준비만 하고 있는 셈입니다.
모두의 문제지만 당장 내 일은 아니라고 여기는 사이 기후위기는 일상이 됐습니다. 이제 먼 북극의 빙하나 가엾은 동물들만이 사라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 이웃들에게 닥친 현실입니다. 올해 한반도에서는 각종 더위 기록이 새롭게 작성됐습니다. 여름철(6~8월) 전국 평균기온(25.6도)은 기상관측망을 전국적으로 확대하기 시작한 1973년 이후 가장 높았습니다. 폭염과 열대야가 극값을 경신하는 동안 온열질환자(3,704명)는 지난해보다 31.4% 증가했습니다. 온열질환으로 신고된 사망자도 34명으로 지난해(32명)보다 6.3% 늘었습니다.

더위뿐 아닙니다. 올해 장마철(6월 12일~7월 27일)에는 전국 평균 472.0㎜의 비가 내렸습니다. 1991년부터 2020년 사이 평균 강수량 356.7㎜보다 30% 이상 많은 수준입니다. 전북 군산시 어청도에는 기상 관측 사상 최고치인 시간당 146mm의 비가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시간당 100mm 이상의 비가 내리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의 형체도 알아보기 힘듭니다. 도로 등 일부 기반 시설들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비가 장마 기간에만 9차례나 발생했습니다. 매우 이례적인 폭우로 많은 인명피해도 발생했습니다.
경험하지 못한 기후재난이 발생하면서 사회적 비용도 치솟고 있습니다. 행정안전부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13~2023년 기후재난으로 국내에서 발생한 경제적 피해는 15조 9,177억 원에 달했습니다. 327만여 명이 살고 있는 부산광역시의 1년 예산과 비슷한 규모입니다. 사망자와 실종자를 더한 인명피해는 341명이었습니다.

  • 시간이 갈수록 피해는 늘고 있습니다. 2022년의 경제적 피해는 2013년보다 약 5.3배 많았습니다. 2013~2017년 4명에 그쳤던 인명피해는 2018~2022년 57명으로 14배 증가했습니다. 이러한 추세는 지구 평균 기온이 상승할수록 각종 피해가 증가할 것이라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의 예측과 맞닿아 있습니다. 2022년 IPCC는 “기온 상승이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가 높아지면 폭염, 홍수, 가뭄, 산불 등 극한 재난이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지난달 세계기상기구(WMO)는 “올해 1~9월 지구 평균 온도가 산업화 이전 대비 1.54도 상승했다”고 밝혔습니다. 전 세계인들이 최후의 방어선으로 인정하고 있는 지구 온도 상승 폭을 이미 넘어선 것입니다. 최근 스페인 남동부 지역에 폭우가 쏟아져 200명 이상이 숨지는 피해가 발생한 것도 기후변화에 따른 극단적 현상으로 평가됩니다. 기후위기는 더 외면할 수도, 피할 수도 없는 현실이 됐습니다. 먼 미래의 일도, 머나먼 오지의 문제도 아닙니다. 생태계 보호 등 당위적인 이념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어쩌면 그 어떤 병보다 더 불시에 닥칠 수 있는 생존의 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