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사유

꿈이 하는 말

📝글. 김창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 나는 초등학생이다. 4학년이나 5학년쯤 되었을까? 가방을 둘러메고 집으로 가는데 왠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뛰기 시작한다. 불안하다. 엄마에게 혼날 것 같다. 왜? 원고를 쓰지 않아서. 초등학생이 원고는 무슨 원고? 아! 꿈이구나? 깜짝 놀라서 잠에서 깬다.꿈은 왜 꾸는 걸까? 무슨 기능과 의미가 있길래. 대단한 과학자들이 수많은 연구를 해왔지만 아직도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리 뇌 속에 있는 신경세포 뉴런들은 우리가 관측할 수 있는 밤하늘의 별이나 행성보다 훨씬 더 많고, 그 신경세포들의 연결들은 저마다 다 달라서 수많은 변수와 다양한 조합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옛날 사람들은 꿈을 신의 계시나 징조로 믿어왔다. 현실과 비현실 중간 지점인 꿈에서 경험한 것들은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든 것에는 이유와 결과가 있으니까.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한 믿음을 거의 포기하지 않으니까.

    프로이트는 꿈을 통해 무의식이라는 세상을 발견했다. 그래서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의 부자들을 눕혀 놓고는 일주일에 서너 번씩 그 날 꾼 꿈에 대해 이야기하게 했다. 그 속에 숨겨진 무의식과 욕망을 해석하려 한 것이다. 그리고 매우 긴 『꿈의 해석』이라는 책을 쓰고 ‘정신치료’라는 새로운 치료 분야를 만들었다. 정신치료에서 꿈은 무의식 혹은 갈등의 근원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작은 길이 되었다. 하지만 계속 연구를 해 나갈수록 더 이상 꿈의 구체적인 의미를 찾지 않게 되었다.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뇌의 휴식을 위한 단편 영화

꿈의 기능과 의미에 대한 가설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힘이 실리고 있는 가설은 꿈이란 뇌의 휴식기 동안 우리가 경험한 일들을 정리해 기억을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꿈은 의미보다 그 기능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꾸는 모든 꿈, 현실과 비현실 그 중간에서 우리가 경험하거나 추구하는 것들의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꿈이 없으면 뇌의 휴식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거꾸로 알고 있었다. 뇌가 쉬는 동안 꿈을 꾸는 것이라고. 인간의 뇌는 자극에 굶주려 있다. 또한 뇌의 회로 중에서 가장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회로는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 현실에서 필요한 것들을 찾고 추구하며 갈망하는 회로들이다. 이 회로들은 생존과 만족을 위해 도대체 쉬지를 않는다. 걱정이 많을 때면 더 열심히 일한다. 그래서 쉽게 잠에 들지 못하고, 들었다가도 자꾸 깬다.

뇌는 쉬기 위해 잔꾀를 부린다. 뇌가 휴식을 취하고 재정비하고 강화하는 동안, 회로들을 한눈팔게 만든다. 일상의 조각 중에서 회로들이 원하는 자극들을 골라낸다. 그런 다음 과거의 여러 경험 속에서 얻은 스토리라인에 어설프게 끼워 맞춰 만든 짧은 영화들을 보여준다. 우리가 힘든 하루를 마치고 멍하게 TV를 보며 휴식을 취하는 것과 비슷하다. 회로들의 취향에 맞춰주다 보니 꿈의 내용은 늘 생존을 위한 공포, 불안, 분노 같은 감정들과 관련된 이야기들일 수밖에 없다. 안정감과 기쁨과 쾌감 같은 감정들은 매우 간헐적으로 나온다. 현실 속의 우리의 삶에서 그러하듯이.
회로들이 한눈을 파는 동안, 뇌는 그날 겪은 경험들로 인해 형성된 단기기억들을 정리한다. 기억은 매우 작은 단백질들의 조합이다. 그 기억 중에서 필요 없는 것들은 분해해 다시 사용하고, 중요한 것들은 관련된 기억 파일을 찾아 저장시킨다. 그렇게 기억은 강화되는 것이다.

꿈은 의미보다 그 기능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꾸는 모든 꿈,
현실과 비현실 그 중간에서 우리가 경험하거나 추구하는 것들의
기능에 집중해야 한다.
꿈이 없으면 뇌의 휴식도 없다. 지금까지 우리는
거꾸로 알고 있었다.

꿈을 이루는 순서

우리는 이루고 싶고 갈망하는 것들을 ‘꿈’이라고 부른다. 꿈과 환각과 망상은 같은 회로를 사용한다. 꿈은 생존과 만족을 원하는 회로들이 잠 속에서 헛도는 것이고, 환각과 망상은 그 회로들이 현실에서 헛도는 것이다. 꿈이 잠 속에서나 현실에서 헛돌지 않고 제대로 실현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가 실현시키고 싶은 목표들이 조덕배의 ‘꿈에’ 가사처럼 깨져 버리는 물거품이 되지 않게 하려면, 망상이 되게 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기대치를 낮추고, 큰 목표를 향한 과정을 단기적인 목표들로 나누어 한 걸음씩 가야 한다. 천천히 몸을 풀고, 실수도 해가면서 꾸준히. 거리는 속도 곱하기 시간이다. 아무리 천재라도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게 성장하며 목표를 조금씩 높여가는 것이다. 멀고 높게 느껴지지만,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다음은 함께 가는 것이다. 혼자는 힘들고 버겁다. 힘을 모을 수 있고 서로 의지와 위로가 되는 사람들과 함께 가야 조금이라도 더 갈 수 있다. 자꾸 혼자 가려 한다면 자기애적인 옹고집이거나, 현실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자존심은 많은 것을 망가뜨린다. 성숙한 인간의 특성인 이타심은 결국 멀리 가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리고 타인에게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은 용기다. 두렵지만 내가 원하고 옳다고 믿는 것을 지키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분명히 어려움과 역경은 있다. 그것을 견디고 앞으로 나아가려면 내가 잘 해왔고 잘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작은 경험들이 쌓여 큰 용기가 된다. 날 때부터 투사나 영웅인 사람은 없다. 그들은 길러지는 것이다. 갈 길을 잘 계획하고 움직여야 용기를 내 꿈을 이룰 수 있다.

정리하자면 우리가 꾸는 모든 꿈, 현실과 비현실 그 중간 지점에서 우리가 경험하거나 추구하는 것들을 해석한 다음에야 의미가 붙는다. 그리고 노력하면 된다. 이 순서를 바로 알면, 꿈을 꾸는 사람들은 모두 꿈을 이룰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