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갈지도
비워 낼 시간
속초
뒤돌아볼 수밖에 없는 달이다. 새로운 각오보다 중요한 건 지난날에 대한 정리가 아닐까.
우리의 생은 비워야 채울 수 있으니까.
속초는 그러기에 맞춤한 곳이었다.
끝없는 바다와 큼지막한 산이 무얼 뱉어내도
모른 체해 주었다.
📝글. 박재현 소설가 / 📷사진. 황지현
속초 해수욕장
바다의 다양한 맛
바다가 좋은 건 변함이 없어서다. 늘 그 자리에서 파도를 보내고 포말과 윤슬을 보여준다. 다만 여름이 아니고선 들어가기가 쉽지 않아 다른 계절에는 바다를 온전히 즐기기에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속초 해수욕장은 그렇지 않다. 하나의 재료로 다양한 메뉴를 만들어내는 요리 경쟁 프로그램처럼, 바다를 소재로 다양한 즐길 거리가 있다. 바다 앞의 대관람차를 상상해 본 적 있는가. 속초아이 대관람차에 올라 바다를 너르게 눈에 담자. 해수욕장에는 ‘ㅅㅊ’ 조형물을 비롯해 하늘로 올라가는 듯한 계단, 기우뚱한 액자 프레임 등 포토존이 풍부하다. 무엇보다 속초 해수욕장에서 외옹치항까지 이어진 산책길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놓치지 말자. 나무 데크 길과 흙길을 파도 소리와 함께 번갈아 걷다 보면 우리의 마음에도 윤슬이 일렁일 것이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 있는 독특한 장소는 헤드랜드다. 속초해수욕장 연안 침식 방지를 위해 설치된 시설로 방파제 구간 200m에 걸쳐 조형물들이 있으며, 야간 경관조명 덕분에 낮보다 밤에 더 특별한 야경을 보여준다.
영랑호
영랑이 빠진 풍경
사실 속초에 가기 전엔 바다와 산만 떠올렸는데 이렇게 큰 호수가 있을 줄은 몰랐다. 영랑호는 둘레가 8km에 이른다. 게다가 수심도 깊다. 넓고 깊다니. 닮고 싶은 존재다. 호수는 둘레를 천천히 걸어 보면 더 잘 보인다. 바닷길을 걷는 것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잔잔한 물이 주는 평화가 걸음마다 조금씩 마음에 스며든다. 호수뿐 아니라 멀리서 다가오는 풍경도 특별하다. 구름 너머 어렴풋이 울산바위가 보인다. 울산바위의 힘이 잔잔한 호수와 대조를 이루며 시야를 가득 채운다. 신라의 화랑 ‘영랑’이 무술 대회장이 있는 경주에 가다 이 호수의 경관에 빠져 본분을 잊고 오래 머물렀다는 이야기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보행로 영랑호수윗길이 있다. 길이 400m의 부교로 수상 산책을 하며 호수 위를 걷는 듯한 기분을 잠시나마 느껴 보자.
대포항
겨울 항구
아주 오래된 항구다. 요즘엔 전문 어항보다는 관광 어항으로서 사람들이 찾고 있다. 동그랗게 생긴 포구를 한 바퀴 돌아보자. 제일 눈을 끄는 건 전망대 다리다. 포구를 잇는 다리위에서 바닷바람에 얼굴을 대고 있으면 겨울을 금세 느낄 수 있다. 내려와서는 방파제로 걸음이 향한다. 긴 방파제 길을 걸으면 겨울 바다의 쓸쓸함이 익숙한 바다 냄새와 함께 올라온다. 산책 후엔 먹으러 가자. 어쩌면 이곳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광어, 넙치, 방어 등의 고급 생선들이 대포항을 통해 처리되기 때문에 신선한 회를 쉽게 먹을 수 있고, 어판장, 건어물 가게, 튀김 골목이 있어 먹고 구경하기에도 좋다.
포구를 잇는 다리보다 더 먼 곳에서 내려다보고 싶다면 대포항 뒷산 산책로의 대포항 전망대로 향해 보자. 동해안과 산의 전경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새해에는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설악산 국립공원
설악의 향기를 따라
속초에 와서 설악산을 빠뜨릴 순 없을 것이다. 요즘엔 설악산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즐기는 이가 많다. 설악향기로가 생겨 힘들이지 않고 절경을 품을 수 있다. 특히 스카이워크와 출렁다리가 있어 걷는 여유를 온전히 누리며 산을 마주한다. 높은 곳에 있어 고개를 들면 방해물 없이 탁 트인 산이 보인다. 마음에 남아 있던 약간의 파동마저 잠잠해지고 만다. 대자연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권금성까지 걸어가면 또 다른 얼굴의 설악이 우릴 환영한다. 쉽게 볼 수 없는 비경이다. 다양한 탄성을 듣고 내려오면 신흥사가 기다리고 있다.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이곳에서만큼은 따뜻한 기운이 돈다. 설악이 사방에서 둘러싸고 있기 때문일까. 절을 거닐다 보면 어느새 내 안에 양지가 생기고 만다.
설악산의 품에 안겨 있는 신흥사에서는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이다. 설악산에서 특별한 하루를 보내며 머릿속을 비우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