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지구

기후변화와 러브버그

📝글. 김승환 세계일보 기자

러브버그는 익충일까요, 해충일까요?

  • 러브버그는 익충일까요, 해충일까요? 최근 정부와 일부 지자체, 환경단체, 전문가들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놓고 논의가 한창입니다. ‘러브버그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고 있다’는 뉴스를 보신 분도 있을 테고, 직접 러브버그 떼를 목격하고 눈쌀을 찌푸린 기억을 가진 분도 있을 겁니다. 정식 명칭이 붉은등우단털파리인 이 친구들은 짝짓기하는 암수가 꽁무니를 연결시킨 채 비행해 러브버그란 별칭이 생겼습니다. 원서식지는 중국 동남부와 대만으로, 우리나라에선 2015년 인천 산곡동에서 첫 관찰 기록이 있다고 합니다. 2022년부터는 여름만 되면 수도권을 중심으로 떼로 출현해 뉴스를 타고 있습니다. 아직 5월이지만 벌써 일부 지역 낮 기온은 30도를 육박하고 있습니다. 수도권 지역민들은 러브버그를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단 뜻입니다.
  • 보통 6월이면 러브버그가 대발생 현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대발생이란 생물이 환경수용 능력 범위를 벗어나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상을 뜻합니다. 이쯤이면 감 잡으셨겠지만, 러브버그 대발생도 역시 기후변화 때문입니다. 대개 전문가들이 한반도 기후가 온대에서 아열대성으로 변화하면서 러브버그가 대량 증식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졌다고 보고 있습니다.
  • 논쟁이 벌어진 건 대책을 놓고서입니다. 서울시가 전국 최초로 러브버그와 같은 대발생 곤충을 방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만들면서였습니다. 올 2월 서울시가 ‘곤충으로부터 쾌적한 도시 서울 만들기, 유행성 생활불쾌곤충 통합관리계획’을 내놨고, 3월에는 서울시의회가 ‘대발생 곤충 관리 및 방제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서울시가 러브버그 등을 ‘유행성 생활불쾌곤충’이라 규정했는데, 환경단체가 “서울시가 인간의 불쾌감과 스트레스를 이유로 생태계에 이로운 곤충도 방제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며 반발한 겁니다. 실제 러브버그는 그간 계속 ‘익충’으로 분류돼 왔습니다.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지도 않고 질병도 옮기지 않는데 진드기 박멸, 환경 정화 등 이로운 측면이 있단 이유에서였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정확한 정보 제공으로 시민들의 부정적 인식을 전환해 공존을 도모할 수 있단 의견을 내놓습니다. 다만 익·해충 구분은 본디 철저하게 인간의 주관적 관점에 따라 나눠지는 겁니다. 다른 종에게 해가 되더라도 인간에게 이익이 된다면 익충이고, 다른 모든 종에 이익이 되더라도 인간에게 해가 된다면 그건 해충이 되는 겁니다. 자연스레 그 구분은 만고불변이 아니라 여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서울시가 “이상 증식으로 시민들이 집단적으로 불편을 호소한다면 그 자체로 방제가 필요한 해충으로 분류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도 이런 시각에 따른 겁니다. 실제 지난해 5월 서울시 거주 만 20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러브버그가 ‘해충’이라고 답한 응답률이 86%나 나오기도 했습니다.
  • 이제 다시 한 번 물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러브버그는 익충일까요, 해충일까요? 저는 아직 쉬이 답하지 못하겠습니다. 다만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 주범, 기후변화에 대해서만은 다시 한 번 확신하게 되는 게 하나 있습니다. 폭염·홍수·산불 등 대형 기후재난과 비교하면 어쩌면 소소해보이기까지 하는 ‘러브버그’라는 숙제 하나를 푸는 데도 이리도 인간적인 판단과 결정이 요구된단 사실입니다. 이제는 두말하면 입 아픈 얘기가 됐지만 애초에 기후변화의 주 원인이 산업화 이후 급격한 탄소 배출을 초래한 인간활동이란 것까지 떠올리면, 이 글을 어느 독일 철학자의 저서 제목을 빌려 끝내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게 됩니다. 기후변화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위기란 식으로 말입니다.
  •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