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지도

자연과 나만의
오롯한 시간

바람의 리듬 따라 춤추는 물결, 물이 빠져 나간 자리에 얼굴을 내민 뻘, 일몰 무렵 불그스름하게 번지는 하늘.
이 낙원 같은 곳에서 오로지 몸과 마음으로 자연과 대화하는 최효진 씨를 만났다. 요가 안내자 최효진

📝글. 조수빈  /  📷사진. 황지현

에너지를 잘 쓰는 방법

‘요가’라 하면 아사나(요가에서 ‘자세’를 뜻하는 말)에 접근하는 부드러운 움직임, 고요한 에너지와 평화로운 명상 등이 떠오른다. 이런 이유에서 효진 씨의 전공은 조금 의외다. 그는 고등학교 입시 때 뮤지컬을 전공했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복수전공으로 사회체육을 택했다.
뮤지컬과 사회체육, 요가의 공통점이라면 ‘에너지’ 를 쓰는 일이라는 거다. 그런데 전자의 두 가지가 역동적인 움직임으로 에너지를 발산하는 일이라면, 요가는 내면의 고요를 지켜 에너지를 축적하는 일이다. “저에게는 힘을 밖으로 뿜어내기보다는 단단하게 쌓는 일이 더 잘 맞더라고요. 물론 요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에는 에너지를 소진하기도 하지만, 혼자 하는 수련을 통해 분출한 만큼의 힘을 다시 채울 수 있어서 좋아요.”   마침 관객을 상대로 공연을 이끌었던 뮤지컬 전공자로서의 경험이 수련생들 앞에서 수업을 이끌어가는 데에 좋은 자양분이 되기도 했다.
사실 여기까지는 서울에서의 이야기다. 효진 씨가 태안에 내려온 지는 올해로 3년 차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 줄곧 서울에서만 자라던 효진 씨가 태안에 내려온 이유는 간단하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모두 여기, 태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놀고 싶을 때마다 태안에 왔어요. 만리포로 서핑을 다녔고, 캠핑을 좋아하는데 풍경이 멋진 곳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었어요. 이렇게 자연 속에서 노는 게 좋은데, 서울에서는 도무지 그 갈증이 풀리지 않는 거예요. ‘내 삶을 가장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자!’라는 생각으로 태안 행을 택했어요.”

도시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태안의 풍경

태안에 터를 잡기 위해 여러 곳을 둘러 봤다. 조건은 두 가지였다. 자연과 가까우면서도 사람들의 삶의 반경과 그리 멀지 않은 곳. 그가 현재 태안군 도내리에서 운영하고 있는 낙원요가는 바로 앞에 바다를 마당처럼 두고 있는 데다, 차로 이십 분이면 태안과 서산 어디든지 갈 수 있다. 효진 씨가 바라던 조건에 딱 맞는 공간을 만난 덕분에 태안 행을 결정하고 두 달도 채 걸리지 않아 이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됐다.
와 보니 정말 서울과 태안의 생활은 천지 차이였다. “우선 매트 간격이 다르죠. 수련을 하며 팔을 양옆으로 펴거나 다리를 옆으로 쭉 뻗어도 옆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기를 바랐는데, 사실 도심에서는 그게 힘들거든요.” 역시 가장 큰 차이는 늘 자연을 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매일 물 들어오는 시간이 다르고, 시기마다 밀물과 썰물의 양이 다르고, 해가 뜨고 지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진다는 걸 몰랐어요. 태안에 사는 덕분에 자연의 법칙을 알게 됐죠.”   어떤 날은 요가를 하는 도중에 바다 위에 뜬 무지개를 만나기도 했는데, 일곱 빛깔이 조금씩 짙어지고 점차 옅어지는 무지개의 변화를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았단다. 서울이었다면 바삐 걷느라 차마 보지 못했을 풍경이라는 생각에 ‘역시 태안에 오길 잘했다’ 싶었다고.
태안에 오고 난 후 야외 수련도 자주 하고 있다. 하늘이 조금이라도 화창하면 낙원요가 옥상에서 수련을 하고, 매주 일요일은 의항해변에서 여행객을 상대로 요가 수업을 진행한다. 매달 1회는 ‘월간 요가’라는 이름으로 태안의 곳곳에서 매트를 깔고 몸과 마음을 펼치고 있다. 4월에는 신두리 해변에서 요가를 했다. “모래사장 위에서 요가를 하는 건 또 다른 맛이에요. 피부에 닿는 모래의 고운 입자, 햇볕에 뜨끈하게 달아오른 모래의 열기도 좋아요.”

요가하듯 산다는 것

  • 효진 씨가 이토록 자연을 중요시 하는 이유는 요가란 자연과 몸과 마음을 하나로 연결시키기 위한 수행이기 때문이다. “요가를 하다 보면 몸과 마음과 자연, 그리고 너와 나의 에너지가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돼요. 그리고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자연, 나와 에너지를 나누는 도반(요가를 함께 하는 사람)들, 내가 원하는 대로 뻗어가는 나의 몸, 이 모든 것들을 일종의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어요. 요가는 결국 사랑으로 향하는 수련인거죠.”
    요가를 하면서 삶의 태도도 많이 바뀌었다. 무한한 연결을 느끼다 보면 요가가 내 삶으로 넘어오는 순간들이 있는데, 특히 아사나에 접근하기 위해 애쓰는 마음들이 세상사는 방식과 참 닮았다고 말했다. “사실 엄청나게 심각했던 문제도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게 많잖아요. 그런데 과하게 걱정하고 전전긍긍했던 거죠. 어차피 별 게 아니라면 좀 내려놓는 것도 좋잖아요. 되지 않는 문제에 애를 쓴다는 건 나만 힘든 일이니까요. ‘오늘은 힘 좀 풀어볼까?’ 라는 태도가 중요해요. 억지로 끌고 가다 보면 탈만 나요.”
    그런데 사실 힘을 푼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옆 사람이 나보다 조금 더 잘하는 것처럼 느껴지면 쫓기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효진 씨의 요가원에는 거울이 하나도 없다. 힘을 풀기 위해서는 오로지 나에게만 집중해야 하는데, 시선을 타인에게 빼앗기면 마음의 균형이 깨질뿐더러, 타인과 비교하다 보면 힘을 풀기는커녕 무리하게 된다고.
    그는 앞으로도 요가가 알려 준 가르침에 따라 살아볼 작정이다. 흐르는 듯 그러나 견고하게. 어쩐지 단정하다고만 생각했던 그의 미소에서 강렬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자연과 매일 교감하며 사는 사람의 미소란 그런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