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적 사유

여전히 함께 살기 좋은 세상에서

📝글. 김세희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혼자여도 괜찮지 않나?

‘혼자’ 살기가 점점 더 편해지고 있다. 전체 가구 중 1인 가구가 35%를 넘어서면서 소형 주택, 1인 가구 맞춤형 가전, 가구, 식품과 생활용품 등이 다양하게 갖춰지고 있다. 혼자라서 고독하거나, 문제에 처해 난감할 때 친구나 가족, 전문가를 찾지 않아도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와 의논하면 해결 방안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앞으로 인류는 함께 하기보다는 홀로이기를 자청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다른 이와 함께하고 싶은데 홀로일 수밖에 없어 외로운 것과 스스로 만든 고립에는 차이가 있다. 역시나 여러 사람과 함께하다 보면 갈등이 발생한다. 나 혼자여도 ‘이럴까 저럴까’ 마음 안에 갈등이 생기는데, 생각과 취향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함께하려면 갈등은 증폭된다. 그나마 혼자면 주도권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수 있다. 지켜보는 사람이 없으면 신경 쓸 게 적다. 자유롭고 편안하다. 무엇보다 홀로일 때,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다.
전공의 시절, 100일 당직이 있었다. 수련과정 중 하나였는데, 전공의 1년 차 시작 후 100일 내내 집에 가지 못하고 온종일 병원에서 당직을 섰다. 홀로일 수 있는 시간이 전혀 없었다. 자유롭고 편안하지 못했던 것 중 하나는 먹는 일이었다. 아침이면 의국에 커피를 내리고, 다른 선생님들의 취향에 맞춰 컵라면이나 빵 등 간식을 챙겨 놓았다. 점심에는 선생님들에게 연락해서 함께 밥을 먹고 저녁에도 병원에 남아 있는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식사했다. 2년 차 선생님과 는 식성이 달라 난감할 때가 자주 있었다. “김 선생, 오늘 불닭이 당기지 않아?” 당시에는 나에 대해 상대에게 이해시키고 조율하는 수고가 내키지 않았고 그런 방법도 잘 몰랐다. 속으로만 궁시렁거렸다. ‘선생님. 저는 맵거나 기름진 음식을 선호하지 않고 저녁은 별로 먹고 싶지 않아요.’, ‘괜히 선생님이 선호하지 않는 메뉴를 제시해서 눈치 없다는 이야기를 듣거나 눈 밖에 날 필요 없어. 그냥 맞추자.’
“예, 선생님. 불닭 갈까요?” 불닭을 먹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재빠르게 응답하곤 했다. 2년 차 선생님과의 당직은 즐겁지 않고 불편했다.

함께여야 지속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로 마음먹으려면, 홀로 있을 때의 자유로움과 편안함,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유를 포기해야 한다. 혼자인 게 편안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상황들을 늘 마주한다. 한편, 무리와 함께해서 얻는 것들도 꽤 많다.
혼자 달리는 게 여러 가지 이유로 편리하지만, 굳이 시간과 장소를 맞춰 무리에 속해 달리기를 하는 이유는 함께하는 데서 분명 얻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함께 ‘착착착’ 한 리듬에 따라 발맞추어 달리다 보면 흥이 나고, 더 오래, 더 빠르게 뛸 수 있다. 앞선 주자를 따라 달리다 보면 자세가 좋아지기도 한다. 함께 하는 데서 생기는 시너지 효과다.
마라톤 대회에서 수천수만 명이 정황으로는 ‘함께’ 달리고 있어도, 결국엔 나 홀로 달리는 것이다. 숨찬 느낌, 다리의 무거운 느낌, ‘이제 그만하고 멈출까?’ 쉬고 싶은 마음은 서로 대신해줄 수가 없다. 그럼에도,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것은 ‘함께’일 때 더 수월하다. ‘나만큼 저 사람도 힘들구나’, ‘옆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니 지금 정말 힘든 것 같은데 참고 이겨내고 있구나, 나도 한 번만 더 이겨내 보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할 때 책임감도 더 강해진다. 나를 지켜보는 눈이 있으니, 더 잘해야 한다는 부담도 있지만, 그로 인해 힘든 일을 마주하고 이겨내기로 마음먹게 된다. 혼자일 때보다 함께할 때 일의 성과가 좋은 이유도 그래서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 혼자 달릴 때보다 달리는 속도가 훨씬 빨라지고, 기록이 잘 나온다. 함께하는 다른 주자들과 응원해주는 이들로부터 힘을 얻고 나를 알아주는 이들에게서 기쁨을 느끼며 좀 더 속도를 낸다.

42.195km를 달리는 동안, “파이팅”을 외치거나 엄지를 세워 보이며 상대 주자를 격려하고, 터널 구간에서는 다른 주자들과 같이 함성을 지르며 각오를 다지기도 한다. 주로에서 들려오는 “멋있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힘내라!”, 35km 사점 구간에서 전해주는 레몬 한 조각, 물 한잔이 고비를 이겨내고 피니시 라인에 이르게 한다.

힘든 순간을
이겨내는 것은
'함께'일 때
더 수월하다

함께라는 바탕 위의 동행

“선생님, 나만 무기력하고 우울한 게 아니라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요. 뭔가 다시 시작해볼 수도 있겠단 느낌이 들어요.” 진료실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누구나 살다 보면 당연히 힘들 때가 있어. 나만 약하거나 잘못된 게 아니야.’라는 데서 안도감과 위로를 얻는다.
뇌졸중 등 뇌의 편측 병변 때문에 한쪽 손에 마비나 기능 저하가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반대쪽 손을 쓰면 되는데, 반대편 뇌의 영역이 아무 문제가 없음에도 다른 쪽 손에 함께 마비가 오거나 기능이 현저히 저하되기도 한다. 오른손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왼손이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어서다. 너와 나, 우리가 함께한다는 전제의 바탕이 없이 홀로 존재할 수 없다.
전공의 시절 의국 생활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선후배 동료들과 함께였기에 배우고 익히는 과정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수련을 마칠 수 있었다. 우리는 각자 독립된 존재이면서, 서로 연결되어있다. ‘함께’라는 바탕 위에 나를 알아주는 또 다른 나와 함께 동행하며 삶을 완성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