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뜨겁고 몹시도 더웠던 지난 7월 8일. 아침엔 서대문, 낮엔 국회에 머문 뒤 18시 20분쯤 세종시에서 식사를 하던 중 여의도에 있는 지인에게서 비가 많이 온다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확인해 보니 서울 서남권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져 있었고, 이후 18시 50분 호우경보로 격상되더니 19시 27분엔 오목교 동측 지하차도 침수 속보가 전해졌습니다. 경기 광명과 파주의 낮 최고기온이 7월로는 사상 처음 40도를 넘긴 바로 그날의 일이죠.
6월 중반~하순쯤 다소 일찍 찾아온 장마 소식을 전하며 올여름 장마는 폭우와 폭염이 번갈아 나타나는 극단적 패턴을 보일 거란 전문가 관측을 담아두었습니다. 이후 ‘마른장마’가 계속되는 바람에 ‘비 예보 없다, 엉뚱한 소리’라는 분노에 찬 댓글 뭇매를 맞은 터라, 한편으론 기습 폭우 소식에 내심 안도감이 스친 것도 맞습니다. 가방 안에 한 달간 쟁여둔 양·우산이 드디어 빛을 발하겠거니, 든든한 마음으로 귀가한 것도 덤이고요.
그러나 극한기후가 심화하며 국내외에 발생하는 사건·사고 앞에서 ‘물 폭탄을 피했다’라고 기뻐할 순 없는 노릇입니다. 지난 7월 4일 미국 텍사스를 덮친 집중호우는 과달루페 강 상류 수위를 순식간에 8~9m로 높여 300명 가까운 사망·실종을 야기했고, 스페인 북동부와 방글라데시 남부 등 지구촌 곳곳의 갑작스러운 폭우 피해 소식은 ‘누구든, 언제든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을 주었습니다. 매년 7월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기릴 이유도 여기 있죠.국립기상과학원에 따르면 근대 관측 이래 과거 30년(1912~1940년) 대비 최근 30년(1991~2020년) 평균기온은 10년마다 0.2℃씩 오르고, 강수량은 17.71mm씩 증가했습니다. 극한기후를 나타내는 최고기온 33℃ 이상의 여름철 폭염일수는 최근 10년(2010~2020년) 들어 평균치가 10일 이상으로 늘었고, 열대야일수도 10년마다 0.12일꼴로 증가세가 뚜렷합니다. 반면 겨울철 한파일수는 10년마다 2.62일씩, 서리일수는 3.23일씩 감소세입니다.
주목할 부분은, 1910년대 연 180일을 훌쩍 넘겼던 총 강수일수가 최근(2010~2020년)엔 연 120일을 겨우 넘길 만큼 감소한 점입니다. 10mm 이하 구간의 강수일수는 10년마다 2.98일씩 줄고 이 구간 강수량도 0.7mm씩 감소한 반면, 80mm가 넘는 물폭탄 강수일수는 0.08일씩 늘고 강수량도 10.16mm씩 증가해 온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강수일수가 줄 때 강수량이 늘었다는 건, 비가 한번 올 때 더 세차게 오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현대 세계 모습을 아우르는 양극화란 단어가 비단 정치·경제 현상에서만 쓰이는 표현은 아닌 게 돼 버린 셈이네요.
물을 다스리는 당국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것 같습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공화당 텃밭’ 텍사스 사태에 뒤늦게 노심초사하는 걸 보면 자연재해 때마다 정치 권력에 대한 민심이 요동치는 건 옛날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경제부처는 하반기 히트플레이션(Heat+Inflation)으로 밥상 물가가 올라, 기대하던 민생경제 회복 속도가 더뎌질까 비상인 모습이고요.
기후변화가 초래하는 또 다른 극단의 파고에서 AI(인공지능)라는 ‘제n의 물결’ 을 앞두고도 극복할 기술과 적응할 지혜 사이에서 우위를 가리는 논쟁은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변화(1912~2020년)
-
10mm 이하
2.98 일 감소
강수일수 -
80mm 이상
0.08 일 증가
물폭탄 강수일수 -
80mm 이상
10.16mm 증가
물폭탄 강수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