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단의 아픔이 담긴 공간, 유진상가
- 1970년 홍제천을 복개한 자리에 위치한 유진상가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주상복합건물이었다. 북한의 남침을 대비한 대전차방어 목적으로 설계되었으며, 1992년 내부순환도로 공사로 건물 한쪽이 잘린 독특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 이후 오랜 세월 방치되었던 유진상가의 지하 공간이 2020년 서울시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서울은 미술관사업’을 통해 변모했다. 새로운 형태의 공공미술을 선보이는 ‘홍제유연’은 ‘화합과 이음’이라는 메시지 아래 남북의 분단, 산업화 시대, 무분별한 재개발시대 등 여러 역사성을 담고 있다.
- 물과 인연이 함께 흐르는 곳, 홍제유연
-
홍제유연(弘濟流緣)이라는 이름은 ‘물과 사람들의 인연이 함께 흘러 예술로 치유하고 화합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아프고 어지럽던 과거를 지나 자연과 사람, 예술이 어우러진 화합의 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홍제유연’이라 적힌 간판을 지나 어둠으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물소리이다. 한가운데로 흐르는 홍제천을 에워싸고 양옆으로 미술 작품이 늘어서 있다. 빛이 들지 않는 지하의 특성을 고려해 빛, 조명, 영상, 사운드를 매체로 한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다. 어둠의 세계에서 또 다른 감각들이 만들어낸 광경에 자연스레 몰입도가 높아진다.
가장 처음 만나는 작품은 천여 개의 <홍제 마니차>다. ‘마니차’ 란 티베트 불교에서 경전을 적은 종이를 원통에 담아둔 것을 일컫는데, <홍제 마니차>에는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 내 인생의 빛’이라는 주제로 시민들이 적어 내려간 메시지들이 담겨 있다. 각자가 가장 빛나던 순간을 공유하는 동안에 따뜻한 마음이 서로에게 가닿는다. 중앙부에는 3D 홀로그램 작품인 <미장센_홍제연가>가 설치되어 있다. 크기가 다른 10개의 스크린이 연동되어 홍제천 지하에 생겨날 자연의 모습을 예측해 보여준다. 바닥을 비추는 <숨길>은 숲의 그림자로, 관객들이 걸음과 호흡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돕는다. 메인 작품은 팀코워트의 <온기(溫氣)>이다. 42개 기둥을 빛으로 연결한 이 조명예술작품은 초입 돌다리의 정가운데 섰을 때 제대로 마주할 수 있다. 물에 비친 형상으로 이어지는 빛의 향연이 홍제천을 감싸 안은 듯한 느낌을 준다.



- 자연 - 사람 - 예술을 아우르는 물길
-
염상훈 작가의 <두두룩터>는 도심과 공공미술의 응접 장소다. 지하 홍제천의 비일상적인 경험을 연장하는 동시에 도심의 산책로와 하천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곳이기 때문. 그러나 홍제유연 바깥에서도 예술은 이어진다. 홍제3교에서 사천교까지 홍제천을 따라 이어지는 구간은 ‘홍제천 산책로 미술관’으로 빈센트 반 고흐, 구스타브 카유보트, 에두아르 마네 등 서양 화가를 비롯해 이인성, 김기창의 작품 등 동서양을 아우르는 주요 그림들이 교각에 전시되어 있다.
홍제천을 따라 더 걷다 보면 하천을 건너기 위한 수문인 ‘홍지문길’, 인공폭포인 ‘홍제폭포’, 낙하분수, ‘포방터시장’, ‘옥천암’ 등 다양한 볼거리와 만날 수 있다. 특히 높이 25m의 홍제폭포는 인공폭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으며, 여름철 내내 무더위를 잊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로 북적이는 곳이다. 건너편 수변 카페와 야외 테라스 등도 시원한 도심 속 물소리를 즐기기 좋은 장소다.
홍제천은 과거의 이야기와 함께, 오늘날에는 예술과 만남의 장소로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 물길을 따라 걸으며 도심 속에서 색다른 경험 즐겨보는 것은 어떨까.


홍제유연
- A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48-84 유진상가 지하
- H 매일 10:00~22:00
- T 02-2133-2710
홍제폭포
- A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170-181
- H 08:00~2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