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에서 소리로 마음을 전하던 클라리넷 연주자에게 한순간 악기를 놓아야만 하는 상황이 온다면 어떤 마음일까.
무대를 완전히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앞에서 임성균 씨는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았다. 떠오르는 건 역시나 음악뿐이었다.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에서 수리하는 사람으로, 여전히 음악 속에 살고 있는 임성균 씨를 만났다.
글. 조수빈 사진.황지현
시작하자 끝나버린 사랑
가느다란 현악기의 선율, 웅장한 울림으로 공기를 메우던 금관악기, 심장을 두드리는 듯한 타악기의 소리가 한데 어우러진 오케스트라 연주는 마치 현실 너머에서 밀려오는 거대한 물결 같았다. 청중들은 숨을 죽인 채 휘몰아치는 선율에 귀를 기울일 뿐. 그때 한 줄기의 음색이 그의 귓가에 천천히 스며들었다. 부드럽고도 선명한 소리를 가진 클라리넷이었다. 벌써 십수 년이 흐른 이야기지만 임성균 씨는 클라리넷과의 첫 만남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다. “단지 연주하고 있을 뿐인데 감정이 느껴지더라고요. 소리에서 따스함이 느껴졌거든요. 그 아름다운 음색에 홀딱 반한 거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 자체도 너무 멋있었어요.”
처음 클라리넷을 배우기 시작한 건 단순히 호기심에서였다. 그러다 우연히 출전한 대회에서 상을 타게 되면서 욕심이 생겼고, 소리를 다루는 일에 익숙해질수록 음악에 대한 사랑도 점점 더 깊어졌다. 대학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연주자의 길을 걷게 된 그에게 브레이크를 건 것은 ‘건강’이었다. 대학교 3학년, 진로 선택을 앞두었던 가장 중요한 시기에 눈에 이상이 생긴 것이다. 진단명은 ‘망막박리’. 한 달가량 병원 신세를 지다 겨우 퇴원을 하고, 악기를 잡았는데 이번엔 또 다른 게 문제였다. “오른쪽 입술과 볼이 심하게 부어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어요. 병원에서는 눈 수술을 하느라 신경을 마취한 게 좀 오래가는 거라고 했지만, 몇 달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더라고요.” 클라리넷을 불기는커녕 입에 대는 것조차 힘들었다. 결국 악기를 놓을 수밖에 없었다. 십 년의 짧고도 치열했던 음악 사랑은 이대로 막이 내리는 듯했다.
결국 내가 있어야 할 자리
‘내가 사랑했던 음악이 결국 나를 떠나는구나’라는 생각에 며칠을 눈물로 지새웠단다. 무대를 보기도, 악보를 보기도 무서워졌다. 그렇다고 모든 걸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모든 걸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음악만큼은 도저히 놓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내가 직접 연주를 할 수는 없어도, 누군가의 소리가 제대로 울릴 수 있도록 손을 보탤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죠. 그렇게라도 음악 곁에서 살고 싶었거든요. 그 마음이 점점 간절해지면서 ‘악기 수리’라는 길로 눈을 돌리게 됐어요. 돈이 없던 학창시절엔 악기가 고장나면 스스로 고쳐 쓰곤 했거든요. 그래서 ‘나름 좀 안다’고 생각했던 거죠. 돌이켜 보면 모두 엉터리였지만요(웃음).”
악기를 고칠 땐 단순히 기술만이 필요한 줄 알았다. 그런데 시작하고 보니 기술과 섬세함은 물론 악기와의 교감, 악기에 대한 철학도 필요한 일이었단다. 게다가 관악기에 대해 성균 씨가 아는 거라곤 클라리넷이 전부였기에 ‘제대로 된 수리’를 배워보기 위해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악기가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듯 섬세하고 철학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어요. 저 또한 수리사로서 ‘왜 소리를 찾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된 시간이었어요.” 그가 내린 해답은 ‘완벽’보다 ‘애정’이었다. 오로지 원칙만을 따져 고치기보다는 연주자의 성향, 악기에 담긴 손길 등을 살피는 수리사가 됐다.
프랑스에서 2년간 공부를 하고 돌아와서는 제주도로 향해 클래식을 하는 사람들의 애정과 열정을 마주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향인 춘천으로 돌아와 순수하게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음악’으로 연결되고 있다.
기억과 시간을 고치는 사람
녹이 슨 색소폰, 핀이 빠진 클라리넷, 관이 눌린 튜바, 벨이 찌그러진 트롬본 등 성균 씨를 찾아오는 악기들의 모습은 제각각이다. 때로는 창고에 오래도록 방치되어 있다가 발견되어 맡겨지는 것들도 있단다. “60년 정도 방치되어 있던 트럼펫을 맡기고 간 분이 있었어요. 기억 속에 잊고 지내다 우연히 발견하고는 ‘이것도 고칠 수 있을까?’ 하고 찾아오시는 거죠. 복원된 트럼펫을 불며 ‘이 소리의 아름다움을 잊고 있었어요!’ 하고 즐거워하는 분들을 보면 정말 보람차요.”
성균 씨에게 무언가를 고친다는 것은 기억과 시간을 재생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수리’란 단순히 부품만을 고치는 일이 아니에요. 소리가 다시 울릴 수 있게 도와주는 일이죠. 악기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고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연주자가 다시 악기를 쥐었을 때 낯선 느낌이 들지 않아야 해요. 그러기 위해 연주자의 손과 입, 호흡을 파악하고 그에 맞게 되돌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자신이 운영하는 악기 수리사에 ‘숨 악기사’라는 이름을 붙인 것도 연주자의 호흡과 악기의 생명에 숨을 불어넣는 곳이라는 의미에서다.
그가 운영하는 악기사는 악기를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 자신들이 가장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편히 이야기할 수 있는 방앗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요즘은 지역 오케스트라에 참여해 소소하게나마 다시 연주를 하고 있어요. 완벽하진 않더라도 음악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뻐요. 결국은 이것이 제가 원했던 삶인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서였을까. 방황은 짧았고, 행복은 확실했다. 연주자이자 수리사, 성균 씨는 이제 ‘음악가’로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