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넘치는 물줄기

금강산 구룡폭포의 아름다움에 대한 설화나 시는 한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많다. 조선시대 화가 최북이 그 아름다움에 동화돼 폭포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는 금강산 구룡폭포의 절경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케 한다. 120m의 장대한 폭포는 그 규모만큼이나 너른 품으로 많은 이야기를 안고 있다. 인도에서 온 53불상이 아홉 마리 용을 쫓아내고 지었다는 유점사의 창건 설화를 비롯해 붓꽃의 유래, 폭포에 깎인 여러 가지 모양의 돌, 폭포 위 상팔담과 얽힌 설화 등 다양한 이야기가 물살에서 샘솟았다.
그러니 그 이름 역시 그냥 지어졌을 리 만무하다. 구룡폭포의 이름은 옛날 유명한 학자였던 정학에 의해 지어졌는데, 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정학이 금강산에 놀러 왔다가 어느 골짜기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과 동행하던 중 골짜기에서 울려퍼진 천둥소리에 몹시 놀란 정학은 잠시 쉬었다 가자고 했지만, 노인은 저것은 자연의 조화라며 가던 길을 재촉했다. 무서움을 누르고 다시 걸음을 옮기던 정학의 눈에 무지개가 걸리고 곧, 흰 무명필이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용은 폭포였다. 하얗게 빛나는 거대한 물줄기가 마치 용처럼 보였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폭포의 이름을 짓자고 마음을 먹은 정학은 종이 위에 용(龍)을 적었으나 다음 자가 생각나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에게 노인이 말했다. 폭포는 아홉 가지 조화를 부리는데, 흰 물살이 용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첫 번째 조화요, 물 떨어지는 소리가 신비한 것이 두 번째 조화라고 했다. 그와 같은 재간을 아홉 가지나 부린다는 설명에 정학은 무릎을 치며 아홉 마리 용이 있다고 해야 할 것 아닌가 했고, 그리하여 구룡폭포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곳

그러나 구룡폭포를 위세 넘치는 물줄기에 대한 찬사로만 읽을 수 있을까. 옛날, 하늘과 땅을 이어주는 신령한 존재였던 용은 비·천둥·번개를 다스리는 수신의 상징이기도 했다. 불교에서 용은 부처의 법을 수호하고 수행자를 돕는 존재였으며, 도교에서는 기(氣)가 솟는 명당에 깃드는 존재로 여겨졌다. 그런 용이 폭포에 산다고 생각했던 데에는 당시 사회의 주 산업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옛날 우리나라는 농경사회였고 농업은 물이 흥망을 좌우했기에, 물을 생존의 근원으로 여긴 것이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포는 그 자체로 생명이 흐르는 공간이었다.
그렇다면 왜 아홉 마리일까? 동양에서는 홀수를 ‘하늘의 수’로 여겼고, 그중 가장 큰 한 자리 홀수인 9는 완전함을 상징했다. 불교와 도교에서도 9는 완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여 아홉 마리 용은 완전함, 신성함에 대한 은유이자 하늘과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구룡폭포는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공간으로서 땅의 염원을 하늘에 전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현대 영화에서 폭포는 강렬한 감정의 변화, 사건의 전환을 의미하는 미장센으로 사용이 되고 있다. 상징성은 달라졌으나 강렬한 생명력에 대한 경외심은 여전히 투영되어 있는 듯하다. 용과 인간의 감정까지 폭포는 오늘도 많은 이야기를 품고 흐르고 있다.

동양에서는 홀수를 ‘하늘의 수’로 여겼고, 그중 가장 큰 한 자리 홀수인 9는 완전함을 상징했다.
불교와 도교에서도 9는 완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여 아홉 마리 용은 완전함, 신성함에 대한 은유이자
하늘과 가까운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