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제게 생긴 큰 변화가 있습니다. 주말 식단을 바꾼 것입니다. 원래 주말 아침 느지막이 일어나는 저에게 단골 메뉴는 ‘라면’이었습니다. 조리가 간단한 데다 금요일 밤 술을 마시고 생긴 숙취를 해소하기도 제격이었기 때문입니다. 라면 아니면 배달 음식으로 토요일 하루의 시작을 여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달 전부터 식단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라면을 대체할 제 주식은 ‘낫또’가 됐습니다. 일본 만화 속에서만 보던, 끈적끈적한 실이 나오던 그 낫또 말입니다. 토요일 아침에 일어나 밥 위에 낫또를 얹고 아보카도와 삶은 달걀을 썰어 넣어 함께 먹어봤습니다. 분명 맛있다고 할 수 있는 맛은 아니지만 뭔가 건강한 맛이 느껴졌습니다. 한 달째 주말에 이 식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런 식단을 저속노화식단이라고 부른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습니다. 사실 제게 늙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이런 식단을 선택한 배경은 하나였습니다. 주중에 반복되는 건강하지 못한 저녁 자리 때문입니다.
저는 직업 특성상 일주일에 최소 세 번의 저녁 자리를 갖습니다. 메뉴는 누구를 만나도 거의 비슷합니다. 삼겹살, 양꼬치, 혹은 기름진 중국 음식이 단골 메뉴입니다. 바깥 음식을 정말 좋아하던 저도 이런 생활을 몇 년째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새로우면서도 건강에 좋은 음식을 고민하다가 낫또를 택했습니다.
낫또의 효능을 살펴보니 왜 저속노화식단이라고 하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낫또에는 노화를 방지하는 폴리페놀 성분이 들어있다고 합니다. ‘혈관 청소부’라고 불리는 ‘나토키나제’ 라는 성분은 혈전성 질환을 예방한다고 하고요. 장내 유익균을 증식시켜 장 건강도 개선해준다고 합니다. 주중에 ‘고기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저를 낫또가 살려준 셈입니다. 저속노화식단의 강점은 단순히 건강하다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저속노화식단은 저뿐만 아니라 지구를 살리는 구원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낫또와 같은 콩류 중심 식단은 고기와 가공식품 섭취를 막아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기능을 합니다. 육류를 섭취하기 위해서는 소나 돼지를 사육해야 합니다. 이 사육 과정에서 소는 다량의 메탄을 배출하게 됩니다. 메탄은 탄소보다 훨씬 더 큰 온실효과를 유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하버드대 공중보건대학원이 지난해 수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물성 식단을 준수하는 상위 10%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29%, 비료 사용량을 21% 줄이는 데 기여했습니다. 미국 국립학술원(PNAS)에서도 건강에 좋은 식품일수록 환경에 미치는 영향도 낮다는 상관관계를 발표한 바 있습니다. 저속노화식단은 토지 황폐화를 막는 데도 상당한 역할을 합니다. 소와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양의 토지가 필요하고, 과도한 방목은 토양의 물리적 훼손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육류의 경우 이같은 토지 이용 대비 식량 공급 효율도 낮습니다. 저속노화식단이 점차 확산돼 육류 소비가 줄어들면 토지 훼손이 줄어들 뿐 아니라, 같은 영양 공급을 위해 필요한 토지 면적 자체도 줄어들게 됩니다.
우리가 저속노화식단이라고 부르는 식단은 유엔의 ‘지속 가능한 식단’ 원칙과도 일치합니다. 유엔은 지속 가능한 식단 원칙으로 최소 가공식품 위주, 콩류와 채소 위주의 식단, 붉은고기 최소화 등의 원칙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고 생물 다양성을 유지하겠다는 목표입니다.
몇 달 전 서점을 서성이다 산 책의 제목이 떠오릅니다. 조너선 사프란 포어의 『우리가 날씨다』, 부제는 ‘아침 식사로 지구 구하기’입니다. 저속노화식단을 조금씩이라도 실천하다 보면, 책 제목대로 정말 아침 식사로 지구를 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