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분명한 것은, 인류는 30만 년 동안 완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협동하며,
다양성과 창의성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쩌면 지구 역사상, 혹은 우주 역사상 가장 운이 좋거나 불운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좋든 싫든 이제는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인공지능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언제부터 예정된 필연이었을까? 2016년 알파고가 바둑에서 이세돌을 이긴 순간이었을까? 아니면 오늘날의 컴퓨터 개념이 자리 잡은 1940년대, 혹은 그 기초가 마련된 1920년대의 물리학일까? 더 거슬러 올라가면, 뉴턴이 우주의 작동 원리를 인간 이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믿게 한 1600년대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보다 훨씬 이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이나 춘추전국시대의 사상가들이 세계의 질서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일 수도 있다. 더 멀리 가면 현생 인류가 등장한 30만 년 전, 생명체가 지구에 출현한 38억 년 전, 혹은 우주가 탄생한 138억 년 전까지 닿는다. 자연법칙이 은하와 별과 행성을 만들었듯, 지능을 가진 무생물이 언젠가 나타나는 일 또한 예정된 흐름이었을까? 지구 밖 생명체의 존재는 아직 불분명하다. 지구만을 기준으로 시간을 다시 계산해 보자면, 지구는 우주가 태어난 뒤 92억 년이 지난 시점에 형성되었고, 약 8억 년 후 최초의 생명체가 나타났다. 이후 38억 년 동안의 진화 끝에 현생 인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류의 역사는 우주의 시계로 보면 찰나와도 같은 30만 년에 불과하다. 처음에는 다른 종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문명을 일군 지 불과 만 년 만에 인류는 마침내 우주에 없던 새로운 지적 존재, 인공지능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우리는 바로 그 경계 위에 서 있다.
인간의 평균 수명을 100년으로 치면, 지금 세대는 우주 역사 전체를 통틀어 극히 드문 순간을 살고 있다. 지구 생명의 출현 시점으로부터 따지면 3천 8백만분의 1, 인류 등장으로부터 따지면 3천분의 1, 문명으로부터 따지면 백분의 1 확률의 순간에 우리가 당첨된 셈이니까. 앞으로 백 년 혹은 그 이후의 백 년 동안, 인공지능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경이로운 발전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인간 이외의 지능이 처음으로 출현하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는 기회는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다. 이는 30만 년 전 조용히 시작된 인류의 탄생을 그 누구도 자각하지 못했던 상황과 뚜렷하게 대조된다.
알파고의 승리로부터 10년, 그리고 ChatGPT가 등장한 지 불과 3년. 그 사이 인공지능은 이미 여러 영역에서 인간을 추월했다. 예술, 인문학, 과학의 발전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이 인간을 넘어서지 못할 분야가 과연 남아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은 인간의 지시에 따라 특정 임무를 수행하는 보조적 존재이지만, 언젠가는 인간처럼 모든 상황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인공지능이 등장할 가능성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 활발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인간의 존재 가치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혹시 우리가 가장 불운한 세대가 되는 건 아닐까?
돌이켜보면, 인간의 역사는 언제나 불확실성과 고난 속에서 이어져 왔다. 맹수에게 목숨을 잃고, 자연의 거대한 힘에 무너졌으며, 때로는 사소한 이유로 서로를 해쳤다. 하지만 인간은 부족함을 인정하고 협동하며 사회를 이루고 문명을 쌓아 올렸다. 완벽한 개인도, 완벽한 사회도 존재하지 않았다. 역사에 길이 남은 위인들조차 약점을 지녔지만 그 불완전함은 그들의 업적을 가리지 못했다.
어쩌면 서로의 부족함을 받아들이고 그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으며 실패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인간 고유의 가치인지도 모른다. 위기 속에서 놀라운 창의성으로 돌파구를 찾고 문명을 확장해 온 힘은, 오히려 완전하지 않음에서 비롯된 것일 테다. 80억 명의 인간은 모두 다른 모습과 다른 유전자를 지녔고, 각기 다른 경험과 시각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누구도 완전할 수 없기에 서로의 차이를 메우며 사회를 역동적으로 발전시켜 왔던 것이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지식을 소수의 시스템 안에 모아 학습하고, 거의 빛의 속도로 정보를 주고받는다. 인간은 배움도 소통도 느리지만, 그 느림 속에서 다양성이 생긴다. 바로 그 느림과 다양성이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를 만들어낸다. 생명체가 수십억 년의 변화 속에서도 멸종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본질적으로 다양성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인공지능과 함께 인류는 새로운 진화의 길에 들어설지도 모른다. DNA의 자연적 한계를 벗어나거나 인간과 기계가 결합한 새로운 존재가 나타날 수도 있다. 변화의 파도는 피할 수 없지만, 그것이 축복이 될지 재앙이 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인류는 30만 년 동안 완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협동하며, 다양성과 창의성으로 위기를 극복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 불완전함 속에서 우리는 인간 고유의 가치를 길어 올렸다. 인공지능이 완전함을 향해 나아간다면, 인류는 불완전함을 품은 채로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갈 것이다. 어쩌면 바로 그 점이, 우리가 미래에도 여전히 고유한 가치를 지닌 지적 생명체로 남을 수 있는 이유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