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을 끌어당긴 전통의 멋
기골이 장대한 붉은 기둥을 따라 시선을 올리면, 그 끝에 유려하게 뻗은 처마가 드러난다. 처마를 받치고 있는 공포에는 오방색이 겹겹이 어우러진 선명한 무늬가 새겨져 있다. 천장이나 기둥, 벽면 등 건축 곳곳에 여러 색으로 문양과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을 ‘단청’이라 한다. ‘건축물의 백미’라 불리는 단청은 정교한 붓질의 연속이자, 멀리서 보면 질서 있는 색의 울림이다. 정규린 화공은 고작 열다섯 나이에 깊이 있는 전통 색채미술의 매력에 푹 빠져들게 됐다. 중학생 소녀가 ‘전통’에 마음에 빼앗기는 일이 흔치 않게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정 화공이 단청에 빠져든 건 그리 특별할 일이 아니란다. “외갓집에 작은 사찰이 있었어요. 어린 시절 할머니 집에 가면 법당에 누워 낮잠을 자곤 했죠. 절을 놀이터처럼 여기다 보니 화려하고 장엄한 단청에 눈길이 간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그가 단청에 발을 들인 이유는 ‘웅장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었기 때문이지만, 알고 보니 그것은 지독할 만큼 치밀하게 계산된 예술이었다. “작업을 하기 위해 단청과 가까워져 보니, 착시를 만드는 예술이더라고요. 보통 사람들은 단청을 멀리서 감상하잖아요. 시선도 아래에서 위를 향하고요. 시선에 따른 그림의 각도는 물론 부재가 부식되거나 고르지 않을 때도 이를 감쪽같이 가리기 위한 계산이 필요했어요. 완벽한 조화로움을 만들어내는 과정은 정말 경이로웠어요.”
마음을 머물게 하는 작품
그러나 전통예술의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삼국시대부터 이어져 온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예술인 만큼, 책으로는 배울 수 없는 무형의 기술을 익히는 데 꽤 많은 시간을 쏟아야 했다. 예컨대 색채의 조화를 찾고 깊이를 더하는 법 같은 것들이다. 목조·석조 같은 건축양식과 우리나라에 산재한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지식도 쌓아야 했다. 이처럼 높은 장벽을 넘어 현재 정 화공은 국가유산 수리기술자로서 단청의 맥을 잇고 있다. 단청에 이어 정 화공이 눈을 돌린 곳은 불화였다. 불화는 불교의 세계관이나 부처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말하는데, 정 화공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예술인 동시에 수행이기도 하단다. 부처님의 세계를 눈앞에 펼쳐내는 일인 만큼, 붓을 들 때마다 잡념이나 욕심을 내려놓는 일로 작업을 시작하고 있다. 또한, 불화를 그릴 땐 색을 여러 번 덧칠하는 과정이 필수인데 그동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단련하게 된다고. 불화를 그릴 때 ‘수행’한다는 마음을 갖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기도 했다. “제가 그린 불화 앞에서 한 어르신이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내가 그린 그림이 누군가에게 기도의 대상이 되고 마음의 위로가 되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림에 대한 제 태도가 바뀌었어요. 기술적인 완성도를 넘어 보는 이들에게 마음으로 보답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겠다고 다짐했죠.” 단청이 공간을 채우는 예술이라면, 불화는 마음을 채우는 예술이었다. 두 세계가 만나는 지점에서 그는 비로소 전통예술 자체가 지닌 깊은 뜻을 알 수 있었다. “처음 단청에 빠졌던 이유는 단순히 ‘멋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제 우리 예술 속에 담긴 마음을 알게 됐어요. 단청이나 궁중회화, 민화 등 우리 전통예술이 전하는 메시지는 결국 하나더라고요. ‘복을 기원하는 마음, 평안과 행복을 바라는 온정’이죠. 선조들의 마음이 이제야 온전하게 느껴져요.”
오늘에 닿은 백제의 미학
선조들의 예술혼을 이어받은 정 화공은 우리나라 전통예술에 자기만의 색깔을 조금씩 더해보고 있다. 그 일환으로 사찰이나 전통 건축물이 아닌 현대의 공간 속에 전통이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도록 하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최근 한 카페 구조물에 단청을 그리는 작업을 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지역민들은 하나 같이 “우리 것이 정말 멋있네요!” 하며 감탄을 내뱉었다. “병머리초 양식의 바탕에 부여의 마스코트인 ‘금황이’, ‘금용이’, ‘금동이’를 배치했어요. 고색창연하면서도 요즘 사람들이 낯설게 느끼지 않도록 부드럽게 표현해 과거와 현재가 잘 스며들게끔 하고 싶었어요.” 그의 말처럼 요즘 정 화공은 그림에 ‘편안함’을 더하기 위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옛날 우리 그림은 쨍할 만큼 선명하거나 혹은 어두워 위엄이 느껴지지만, 그것이 오히려 무섭고 으스스하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에 누구나 편안한 마음으로 작품을 마주할 수 있도록 온화하고 따뜻한 느낌을 강조하고 있다.
정 화공이 추구하는 방향은 백제, 즉 부여의 예술과도 닿아있다. “삼국을 비교해보면, 고구려는 강인하고, 신라는 세련됐죠. 그런데 백제의 예술은 한마디로 표현하기가 어려워요. 소담하면서도 부드럽고, 은은하면서도 섬세하거든요.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고 하잖아요. 저도 백제의 예술처럼 섬세한 온정을 담고 싶어요.”
전통예술이 지닌 힘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데 있다. 정규린 화공이 남긴 붓 자국 하나하나는 오늘을 사는 사람들에게 평안을 선물하고 있다. 먼 훗날, 우리는 그가 과거에서 길어 올린 위로에 기대어 내일로 나아갈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