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는 백제 문화예술의 보물창고다.
백제는 부여에서 화려한 문화와 예술을 꽃피우며 절정기를 맞았다.
유구한 역사와 화려한 예술을 간직한 어제의 부여와 대중문화를 통해
다시 한번 부흥의 꽃을 피우는 오늘의 부여를 함께 만나본다.
글. 사진. 임운석 여행작가
찬란했던 불교 예술을 마주하다
백제는 고구려, 신라와 더불어 삼국시대의 한 축을 담당했다. 백제는 웅진에서 부흥의 기틀을 마련한 뒤 사비(현 부여)로 천도해 백제 700년의 역사 가운데 가장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문화적으로도 번영을 이뤘다. 당시 백제는 예술과 종교, 건축 등 모든 분야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며 화려한 문화를 꽃피웠다. 특히 불교는 사비시대의 문화적 정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왕은 불교를 국가의 중심 가치로 삼고, 대형 사찰과 불상, 탑 등을 건립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기에 세워진 사찰들은 백제의 건축 기술과 예술성을 잘 보여준다.
백제문화단지는 1400년 전 백제 사비시대의 왕궁인 사비궁과 능사, 백제 생활문화마을 등을 재현해 놓은 대규모 복합 역사 공간이다. 정양문을 지나면 웅장한 사비궁과 능사 5층 목탑에 시선이 사로잡힌다. 사비궁에서 조금 비켜선 자리에 있는 생활문화마을은 백제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어 가옥의 형태를 통해 그들의 신분사회를 가늠해 볼 수 있다. 또한 백제가 태동할 당시 위례의 왕궁까지 재현해 놓아 백제의 역사를 좀 더 폭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엇보다 실내외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잘 구성돼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들에게 추천할 만하다.
백제문화단지에서 4km 남짓한 곳에 정림사지가 있다. 이곳은 백제가 부여로 천도한 직후 지은 절이다. 지금은 넓은 절터에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홀로 남아 융성했던 백제 불교 문화를 웅변해 주고 있다. 석탑에는 세월의 더께가 켜켜이 쌓였다. 천년이 넘는 세월을 견뎌온 탑이 대견스럽고 고맙다. 경내의 잔디 위에 햇살이 비치면 석탑이 한결 멋스럽다. 석탑의 지붕돌은 금테를 두른 듯 반짝이고, 옥개석은 버선코처럼 단아하다. 정림사지 뒤편에는 석조여래좌상이 극심한 파괴와 마멸로 형체만 남은 채 오층석탑을 응시하고 있다.
백제문화단지
A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T 041-408-7290
백제 예술의 극치 ‘역대급’ 국보를 마주하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백제문화의 정수로 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가 상설 전시 중이다. 1993년 백제왕릉원(당시 능산리고분군) 주차장을 조성하기 위해 사전 발굴조사를 진행했는데 그때 지금껏 보지 못했던 큼지막한 향로가 진흙 속에서 발굴됐다. 바로 백제금동대향로였다.
당시 언론들은 연일 관련 기사를 대서특필했고 국민적 관심 또한 매우 높았다. 백제금동대향로 관람에 앞서 박물관 1층 로비에서 진행되는 영상 ‘사비백제’ 감상을 추천한다. 이 영상은 초고화질의 실감형 입체 영상으로 12대의 4K 빔프로젝트를 활용해 로비 천장과 벽면에 백제금동대향로의 제작과정을 보여준다. 긴장감과 박진감 넘치는 영상미에 관객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상영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매시 정각이다. 백제금동대향로는 도교 사상을 바탕으로, 신선이 사는 이상세계를 다양한 형태의 동물과 인물의 형상으로 정교하게 표현한 걸작이다. 백제인들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뛰어난 공예 기술, 신비로운 종교적 신념 등이 향로에 응축되어 있어 경이로움, 그 자체다.
국립부여박물관
A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T 041-833-8562
궁남지에서 황홀한 노을빛에 반하다
궁남지는 ‘세기의 사랑’이라 불리는 백제 제30대 임금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전설적인 로맨스가 깃든 곳이다. 무왕을 일컫는 서동은 어릴 적 부르던 아명이다. 궁남지는 궁궐(사비성)의 남쪽에 있는 연못이라는 뜻이다.
궁남지가 특별한 이유는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연못이라는 점이다. 신라 동궁의 월지보다 40여 년 앞선 634년(무왕 35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7월 중순에 백련, 홍련 등 다양한 연꽃이 82,645여 ㎡의 드넓은 연밭에 만발해 장관을 이룬다. 9월에는 연꽃이 모두 떨어져 조금은 황량해 보일 수 있지만 연밥이 대롱에 매달려 있어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궁남지 조성의 사상적 배경은 도교의 신선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증거가 연못 가운데 있는 포룡정이다. 자고로 포룡정은 신선이 노릴 만한 곳이므로 목조다리를 건너 포룡정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 일상의 시름이 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해 질 녘에는 황혼빛에 물든 연못 속에 포룡정과 주변 수목이 고스란히 반영되어 낭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시나브로 시간이 흐른 뒤 마주 보는 야경도 놓칠 수 없다. 궁남지는 올해 ‘한국 야간관광 100선’에 선정된 곳으로 연못에 달빛이 반사된 풍경과 정자의 불빛이 환상적인 야경을 선보인다.
궁남지
A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부여, 대중문화와 만나다
부여 임천면에 있는 가림성(성흥산성)은 백제의 수도였던 웅진성과 사비성을 지키기 위해 쌓은 석성이다. 성의 형태는 산 정상을 중심으로 빙글빙글 둘러쌓은 테뫼식이다. 가림성은 나당연합군에 맞서 싸운 역사의 현장인 동시에 백제 멸망 이후에는 백제 부흥 운동의 현장이기도 하다.
산 정상에 오르면 금강과 일대 마을들이 아득하다. 인적 드문 외딴 성이지만 도로, 주차장, 화장실까지 편의시설이 잘 조성돼 있다. 이곳이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알려진 덕택이다. 산 중턱에 오르면 그 증거들을 마주한다. <서동요>, <엽기적인 그녀>, <신의>, <대왕세종>, <육룡이 나르샤> 등 가림성을 스쳐 간 수많은 작품의 포스터가 전시돼 있다.
여행객들은 이곳에서 일명 ‘사랑나무’라 알려진 느티나무를 배경으로 인생사진을 남기며 즐거운 한때를 보낸다. 수령 400년 이상 된 이 느티나무는 높이가 22m에 이르는 거목으로 넓게 펼쳐진 뿌리 모양과 일부 나뭇가지가 하트 모양의 반쪽처럼 보여 독특하다. 이곳에서 촬영한 뒤 좌우를 겹쳐 합성하면 절묘하게 하트 모양이 완성된다. 특히 일몰 시각에 맞춰 촬영하면 실루엣이 선명하게 드러나 더욱 또렷한 하트 모양을 확인할 수 있다.
부여군 충화면에 있는 서동요 테마파크는 영화와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장으로 조성됐다. 33,000여 ㎡에 달하는 대단위 규모로써 삼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세트장 가운데 충남권 제일을 자랑한다. 백제와 신라의 건축양식에 따라 고증된 왕궁은 물론이고 귀족과 평민 가옥, 저잣거리 등 옛 건축물이 구역을 나눠 재현해 놓았다. 덕분에 마치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된 듯 사진을 촬영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여러 사진 촬영지 가운데 으뜸은 왕궁이다. 특히 하얀색 커튼이 바람에 나부끼는 정자는 화려했던 백제문화를 간접적으로 체험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으므로 어린 자녀의 체험학습장으로도 그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