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 January VOL. 658
‘늘미곡’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곡물을 파는 미곡상(米穀商)인가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늘미곡>은 미곡상이되, 그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하는 곳이다. 잡곡 소분 숍이니 미곡상이고, 각종 세제와 차(茶) 등을 소분 판매하니 리필스테이션이다.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의 대안용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숍이면서, 폐품을 모아 자원화하는 거점센터로서의 역할도 한다.
그 출발에 ‘잡곡 소분 판매’를 메인으로 하는 리필스테이션이 있다. 쌀, 서리태, 수수, 흑미, 기장, 율무, 귀리 등 호남평야와 진도 등 국내 각지에서 공수한 잡곡 20여 가지를 ‘용기 안(또는 냉장보관)’ 에 종류별로 담아 판매한다. ‘말통’의 개수만으로 리필 가능 세제가 몇 개인지 가늠할 수 있는 세제 리필 존도 있다. 현재 주방 세제 세 종류와 세탁 세제 세 종류, 섬유유연제 세 종류가 준비되어 있고,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등 살림 필수템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조과일 칩과 벌크로 판매하는 차가 여럿인 점도 눈에 띈다. <늘미곡>의 서늘 대표는 “티백 대신 지구와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리필 차의 종류를 늘렸다”라며 “잡곡과 함께 차를 찾는 이들도 꾸준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리필제품은 어떻게 구매할 수 있을까? 잡곡을 비롯한 세제, 차 등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담아 갈 용기나 종이봉투를 지참해야 한다. 용기 지참 시 구매 금액의 5%가 할인되니, 자원뿐만 아니라 비용이 절약되는 이점도 있다. 서늘 대표는 “미처 용기를 챙겨오지 못하신 분들을 위한 판매 용기가 따로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쓰레기도 줄이고 할인도 받을 겸 직접 가져오시길 추천 드린다”라고 설명했다.
지구와 나,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늘미곡>은 대안생활에 필요한 친환경상품도 판매 중이다. 천연 통수세미부터 강화산 소창 손수건, 고체 치약, 스테인리스 빨대, 순면 생리대, 밀랍 랩 등 250 ~ 300여 가지에 이르는 제품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비치되어 있다. 이 중 1,000번 재사용이 가능한 건조기용 양모볼은 내구성에서 단연 돋보인다. 서늘 대표는 “사실 제품의 대부분은 손님들이 요청하셔서 채워놓은 것들”이라며 오셔서 “이런 거 넣어주세요” 하면 찾아 채워 넣고 또 채워 넣은 결과가 지금의 <늘미곡>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늘미곡>은 ‘느림이(소비자)’들과 서늘 대표가 함께 만든 공간이라는 것이다. 다만 제품을 구비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서늘 대표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환경적인가? 지역적인가? 사회적인가?”를 먼저 물었고, “완전할 것이냐? 비교적 완전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있었다. 두 번째 질문에서 서늘 대표는 판단의 몫을 소비자에게 두었다. “여러 가지 제품을 보여드리고, 소비자 스스로의 제로웨이스트 단계에 혹은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각자의 환경운동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제로웨이스트 숍을 운영하면서 상점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직접적인 환경운동이 자원순환이었어요. 제가 가장 애정을 담아 하는 작업입니다.” 서늘 대표는 <늘미곡>이 하는 여러 활동 중에서 자원순환에 특히 진심이다. 참여 물품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늘미곡>에서 수집하는 자원은 우유팩부터 병뚜껑, 아이스팩, 크레파스, 비닐봉지, 텀블러, 칫솔대, 전선, 양파망, 빨대, 페트병, 일회용 컵 등 무려 15가지에 이른다. 그 덕에 상점은 늘 빈틈없이 빼곡하다. 서늘 대표는 “리필스테이션 이용 시 구매금액의 5%를 할인해 드리는 것처럼 폐품을 가져오시면 개수대로 포인트를 적립해 드린다”라며 “그 포인트로 필요한 물품을 리필해 가시거나 구매해 가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데다가 지구까지 생각하는 가치소비가 아닐 수 없다.
※ 본 취재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미곡상을 운영하세요. 10년 전쯤인가에 1인 가구에 맞춰 소분해 판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0년 후에도 관련 매장이 생기지 않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늘미곡>을 준비했습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네요.
기업에서 대기환경기사로 일했습니다. 나름대로 환경전문가라 자부했었죠. 그런데 스테인리스 빨대가 왜 환경에 좋은지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빨대 자체는 오래 쓸 수 있다지만 공정 과정에서 폐수가 나오거든요. 하지만 내구성이 좋다는 점과 제품 자체에서 환경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일회용 빨대보다 스테인리스가 훨씬 낫더라고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플라스틱은 만들어지는데 5초, 사용하는데 5분, 썩는데 500년이라고요. 스테인리스는 거의 평생 쓸 수 있으니 일회용 빨대를 하루에 한 개 정도 쓴다고 치면 우리가 줄이는 플라스틱 양이 어마어마한 거겠죠.
특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병뚜껑이나 우유팩 등 수거자원만 주고 가시는 분들이 진짜 많거든요. 저는 그게 진짜 좋아요. 가끔 수거자원이 산처럼 쌓여 있으면 손님들이 보고 그러세요. “자원 재활용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아요?”라고.
그러면서 또 그러시죠. “나도 한 번 해봐야겠네.” 저는 <늘미곡>이 일상적으로 왔다 갔다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다녀가신 분들이 ‘나도 한 번 (친환경적 생활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멘트 중에 ‘완벽하지 않아야 완전해진다’는 말이 있어요. 환경문제나 기후문제나 다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몇몇 사람이 제로웨이스트 물건을 완벽하게 쓴다고 해서 환경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거고요. 하지만 내가 이 물건을 경험함으로써 환경에 조금 더 도움이 되려나, 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가 정도면 시작할 수 있거든요. 전혀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일회용 컵에 든 커피를 주문해 먹었다고 치자고요. 저는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다음에는 텀블러를 가지고 가야지’가 자연스럽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용한 일회용 컵은 잘 버려서 자원순환하게 하고요. 그렇게 오래 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