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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勇氣) 내서 용기(容器) 내는 곳

‘늘미곡’이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곡물을 파는 미곡상(米穀商)인가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늘미곡>은 미곡상이되, 그 이상의 역할과 기능을 하는 곳이다. 잡곡 소분 숍이니 미곡상이고, 각종 세제와 차(茶) 등을 소분 판매하니 리필스테이션이다.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의 대안용품을 판매하는 제로웨이스트 숍이면서, 폐품을 모아 자원화하는 거점센터로서의 역할도 한다.
그 출발에 ‘잡곡 소분 판매’를 메인으로 하는 리필스테이션이 있다. 쌀, 서리태, 수수, 흑미, 기장, 율무, 귀리 등 호남평야와 진도 등 국내 각지에서 공수한 잡곡 20여 가지를 ‘용기 안(또는 냉장보관)’ 에 종류별로 담아 판매한다. ‘말통’의 개수만으로 리필 가능 세제가 몇 개인지 가늠할 수 있는 세제 리필 존도 있다. 현재 주방 세제 세 종류와 세탁 세제 세 종류, 섬유유연제 세 종류가 준비되어 있고,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등 살림 필수템도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건조과일 칩과 벌크로 판매하는 차가 여럿인 점도 눈에 띈다. <늘미곡>의 서늘 대표는 “티백 대신 지구와 소비자의 건강을 위해 리필 차의 종류를 늘렸다”라며 “잡곡과 함께 차를 찾는 이들도 꾸준하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들 리필제품은 어떻게 구매할 수 있을까? 잡곡을 비롯한 세제, 차 등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담아 갈 용기나 종이봉투를 지참해야 한다. 용기 지참 시 구매 금액의 5%가 할인되니, 자원뿐만 아니라 비용이 절약되는 이점도 있다. 서늘 대표는 “미처 용기를 챙겨오지 못하신 분들을 위한 판매 용기가 따로 준비되어 있긴 하지만, 조금 불편하더라도 쓰레기도 줄이고 할인도 받을 겸 직접 가져오시길 추천 드린다”라고 설명했다.

내일의 지구를 더 푸르게 ‘더 낫도록’

지구와 나, 그리고 미래세대를 위해 <늘미곡>은 대안생활에 필요한 친환경상품도 판매 중이다. 천연 통수세미부터 강화산 소창 손수건, 고체 치약, 스테인리스 빨대, 순면 생리대, 밀랍 랩 등 250 ~ 300여 가지에 이르는 제품이 자세한 설명과 함께 비치되어 있다. 이 중 1,000번 재사용이 가능한 건조기용 양모볼은 내구성에서 단연 돋보인다. 서늘 대표는 “사실 제품의 대부분은 손님들이 요청하셔서 채워놓은 것들”이라며 오셔서 “이런 거 넣어주세요” 하면 찾아 채워 넣고 또 채워 넣은 결과가 지금의 <늘미곡>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늘미곡>은 ‘느림이(소비자)’들과 서늘 대표가 함께 만든 공간이라는 것이다. 다만 제품을 구비하는 이런 일련의 과정에서 서늘 대표는 스스로에게 많은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환경적인가? 지역적인가? 사회적인가?”를 먼저 물었고, “완전할 것이냐? 비교적 완전할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있었다. 두 번째 질문에서 서늘 대표는 판단의 몫을 소비자에게 두었다. “여러 가지 제품을 보여드리고, 소비자 스스로의 제로웨이스트 단계에 혹은 취향에 맞게 선택하는 것이 각자의 환경운동일 것”이라는 얘기였다.

하나는 쓰레기지만 모으면 자원이다

“제로웨이스트 숍을 운영하면서 상점 안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직접적인 환경운동이 자원순환이었어요. 제가 가장 애정을 담아 하는 작업입니다.” 서늘 대표는 <늘미곡>이 하는 여러 활동 중에서 자원순환에 특히 진심이다. 참여 물품만 봐도 알 수 있다. 현재 <늘미곡>에서 수집하는 자원은 우유팩부터 병뚜껑, 아이스팩, 크레파스, 비닐봉지, 텀블러, 칫솔대, 전선, 양파망, 빨대, 페트병, 일회용 컵 등 무려 15가지에 이른다. 그 덕에 상점은 늘 빈틈없이 빼곡하다. 서늘 대표는 “리필스테이션 이용 시 구매금액의 5%를 할인해 드리는 것처럼 폐품을 가져오시면 개수대로 포인트를 적립해 드린다”라며 “그 포인트로 필요한 물품을 리필해 가시거나 구매해 가시면 된다”라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데다가 지구까지 생각하는 가치소비가 아닐 수 없다.

※ 본 취재는 코로나19 방역 수칙을 준수해 안전하게 진행했습니다.

interview
“잘 버리기만 해도 쓰레기의 30%는
재활용이 가능하다고 해요.
그 30%를 제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폐품을 모으려고 합니다.” <늘미곡> 서늘 대표

잡곡을 메인으로 한 점이 특색 있습니다. 이유가 있을까요?

부모님께서 미곡상을 운영하세요. 10년 전쯤인가에 1인 가구에 맞춰 소분해 판매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10년 후에도 관련 매장이 생기지 않아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늘미곡>을 준비했습니다. 그게 벌써 2년 전이네요.

<늘미곡>을 운영하면서 약간의 혼란을 겪으셨다면서요?

기업에서 대기환경기사로 일했습니다. 나름대로 환경전문가라 자부했었죠. 그런데 스테인리스 빨대가 왜 환경에 좋은지 이해를 못 하겠더라고요. 빨대 자체는 오래 쓸 수 있다지만 공정 과정에서 폐수가 나오거든요. 하지만 내구성이 좋다는 점과 제품 자체에서 환경호르몬이 발생하지 않는 점을 생각하면 일회용 빨대보다 스테인리스가 훨씬 낫더라고요. 왜 그런 말 있잖아요. 플라스틱은 만들어지는데 5초, 사용하는데 5분, 썩는데 500년이라고요. 스테인리스는 거의 평생 쓸 수 있으니 일회용 빨대를 하루에 한 개 정도 쓴다고 치면 우리가 줄이는 플라스틱 양이 어마어마한 거겠죠.

<늘미곡>이 지역민들에게 어떤 곳이기를 바라시나요?

특별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병뚜껑이나 우유팩 등 수거자원만 주고 가시는 분들이 진짜 많거든요. 저는 그게 진짜 좋아요. 가끔 수거자원이 산처럼 쌓여 있으면 손님들이 보고 그러세요. “자원 재활용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아요?”라고.
그러면서 또 그러시죠. “나도 한 번 해봐야겠네.” 저는 <늘미곡>이 일상적으로 왔다 갔다 편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이어서 다녀가신 분들이 ‘나도 한 번 (친환경적 생활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기는 계기가 되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아요.

제로웨이스트 활동이 처음인 분들에게 전할 말씀이 있으신가요?

제가 좋아하는 멘트 중에 ‘완벽하지 않아야 완전해진다’는 말이 있어요. 환경문제나 기후문제나 다 단시간에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잖아요. 몇몇 사람이 제로웨이스트 물건을 완벽하게 쓴다고 해서 환경이 달라지는 것도 아닐 거고요. 하지만 내가 이 물건을 경험함으로써 환경에 조금 더 도움이 되려나, 난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는 건가 정도면 시작할 수 있거든요. 전혀 부담 갖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가령 일회용 컵에 든 커피를 주문해 먹었다고 치자고요. 저는 마음속에 양심의 가책이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러면 ‘다음에는 텀블러를 가지고 가야지’가 자연스럽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사용한 일회용 컵은 잘 버려서 자원순환하게 하고요. 그렇게 오래 가는 게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늘미곡

주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선너머로 16 , 상가2동 1층 1호

문의 070-4240-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