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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던 중에 친한 선배가 경주시에 있는 고철 폐기물처리장에 가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고철 폐기물이 압축되어 제 키보다 높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보니 일종의 위압감이 느껴졌어요. 그 인상이 무척 강렬해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에 숨은 반전

서울의 한 카페에 들어서니, 온라인 메신저에서 자주 접하던 귀여운 캐릭터가 그려진 그림 몇 점이 한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그림 한 점, 한 점을 살피면 여느 그림과 다른 독특한 소재가 눈에 띈다. 알고 보면 이 그림은 조민아 작가가 각종 폐기물을 활용해 만든 작품이다. 작은 비닐과 노끈, 마스크, 스티로폼, 커피 찌꺼기 등 일상생활에서 쉽게 쓰고 버리는 폐기물들을 소재로 활용했다.
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리뉴얼(Renewal)’이다. 사전적으로 리뉴얼은 ‘부활’ 혹은 ‘기존의 것을 새롭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조민아 작가는 쓸모없어 버려지는 것들이 얼마든지 아름다운 것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믿으며, 현대사회의 부산물인 폐기물들을 작품에 담아냈다.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던 중에 친한 선배가 경주시에 있는 고철 폐기물처리장에 가보라고 조언을 했습니다. 고철 폐기물이 압축되어 제 키보다 높게 쌓여 있는 모습을 보니 일종의 위압감이 느껴졌어요. 그 인상이 무척 강렬해 작품에 담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철이 큐브 형태로 압축된 단면은 그 자체로 조형성이 강했다. 조민아 작가는 이를 캔버스에 아크릴물감과 목탄, 콘테 등으로 표현했고, 폐기물의 부식된 느낌을 살리고자 커피 가루를 활용해 독특함을 더했다. 빠르게 성장해온 현대사회의 이면에 폐기물 문제라는 묵직한 문제가 있음을 드러낸 그의 작품은 주목받았고, 2014년 <신라미술대전> 대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학부에서는 아동미술을 전공하고, 작품 활동 초창기에는 주로 풍경이나 자연물을 소재로 사실적인 회화를 그렸습니다. 하지만 이 작품을 준비하면서 작품을 구상하는 방식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신라미술대전> 대상작인 ‘혼돈의 시대’는 조민아 작가가 폐기물을 주제로 삼은 첫 작품이었다. 미술사가 김영호 중앙대학교 교수는 그의 작품을 두고 “작가에게 고철은 현실이나 사회에 대한 비판의 소재가 아니라 삶을 담아내는 기호이자 기억의 저장고였으며 무엇보다 조형 실험의 원천임을 보여주었다”라고 평했다.

폐기물을 향한 작가의 시선

특히 그가 <신라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은 2014년은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미디어를 장식하던 시기였다.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 조민아 작가 역시 작품 속에 자신만의 관점을 담아낼 의무감을 느꼈다. 특히 환경 문제는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다. 그때부터 일상에서 버려지는 사소한 쓰레기 하나도 허투루 보이지 않았다.
“제 작품에 사용된 여러 소재는 실제 일상에서 나온 생활 쓰레기들입니다. 자세히 보면 표면이 깨끗하지 않고 울퉁불퉁하기도 합니다. 자칫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생활 쓰레기에서 재료의 다양성을 찾아나가고 있어요.”
‘혼돈의 시대’에서 자신감을 얻은 조민아 작가는 이후 다양한 방식으로 폐기물을 연구하고 조형 실험을 확장해나갔다. 10년 가까이 이어지는 작품은 크게 세 개의 시리즈로 나뉜다. 초반의 <리뉴얼Ⅰ> 시리즈는 강하게 압축된 고철 표면을 보이는 그대로 묘사해 그렸으나, 두 번째 시리즈인 <리뉴얼Ⅱ>에서는 고철의 형상을 다양하게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
“고철 덩어리가 주는 강렬한 인상에서 영감을 많이 얻었어요. 그래서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경주 고철 폐기물처리장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사진을 찍어오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자체로 메시지가 느껴지니 미술 관계자들의 평가도 좋았습니다.”
작가의 시선으로 포착한 이미지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시대의 단면을 드러낸다. 조민아 작가는 2022년 가을에 열린 개인전 작가 노트를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인간의 과도한 욕망 때문에 버려진 쓰레기가 넘쳐난다”라고 말하며, “이로 인한 기후변화 등의 환경 문제는 심각한 사회 문제로도 이어진다” 라고 지적했다.
“폐기물은 쓸모를 다하면 가치가 없다며 버려지기도 하지만 또 다른 존재로 재창조되기도 합니다. 기본적으로 예술은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매체로 사람들의 감동을 끌어내는데요. 버려지는 폐기물 역시 감동을 느끼게 하는 훌륭한 예술적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조민아 작가는 <리뉴얼Ⅱ>에서 고철의 형상을 다양하게 재구성해 새로운 이미지를 표현했다.
캐릭터와 접목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다가가다

조민아 작가의 최근 작업에 해당하는 <리뉴얼Ⅲ> 시리즈에서는 원더우먼이나 슈퍼맨, 카카오프렌즈 등 대중적인 캐릭터의 이미지를 변주해 해석의 폭을 넓혔다. 덕분에 조형성이 강한 회화 작품에서는 거리감을 느끼던 대중들도 익숙한 캐릭터를 보면서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아무래도 대중적으로는 눈으로 보기에 예쁘고 귀여운 그림에 눈길이 한 번 더 가게 마련입니다. 예전에는 미술 애호가들이 좀 더 제 작품에 관심을 가졌다면, 최근에는 청소년이나 아이들도 제 작품에 호기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가 차용한 캐릭터들은 미디어에서 보던 그대로의 모습은 아니다. 하지만 캐릭터와 접목한 메시지는 산업사회의 부산물인 폐기물과 더불어 정보산업사회의 소비성과 맞물려 또 다른 해석으로 이어진다. 물론 폐기물로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순조롭지만은 않다. 비닐이나 스티로폼 등 폐기물 자체에 훼손이 있는 경우가 많아 표면 처리를 깔끔하게 하기 어려운 까닭이다. 그럼에도 그는 계속해서 일상에서 버려지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 소재를 찾아갈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