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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단을 두른 듯 아름다운 강

    한강, 낙동강, 섬진강을 아는 사람들은 많지만 금강은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금강(錦江)은 국내 4대강 중의 하나로, 비단강이란 뜻을 지녔다. 강줄기를 따라 펼쳐진 산수가 아름다워 붙여진 이름이다. 전북 장수 뜬봉샘에서 걸음을 시작해 무주에서 진안천과 적상천, 남대천이 물줄기를 보탠다. 그리고 금산 제원면에 이르러 완만한 산줄기 사이를 지나며 제법 강폭을 넓히고 충북 영동을 지나면서 큰 강줄기로 변한다. 공주와 부여를 지나 군산을 적신 후 바다로 나아간다. 길이는 401km. 딱 천릿길이다.
    부여 군민들이 금강을 일컫는 이름은 백마강이다. 부여 서쪽을 반달 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는데 부여군 규암면 호암리의 천정 대에서 시작해 낙화암, 구드래나루를 거쳐 세도면 반조원리까 지 약 16km를 달린다. <삼국사기>에는 백강, <일본서기>에는 백촌강으로 기록되어 있다. 백마(白馬)는 ‘큰 나라’라는 뜻이다. 그러니까백마강은‘큰나라가있는 강’ 또는 ‘큰 나라의 강’을 의미한다. 금강은 아직 사람과 손길이 덜탔다. 강가에 깔린 자갈은 초여름 햇살을 담아 반짝인다. 옥색 강물도 바람을 받아들이며 부드러운 잔물결을 만들어 낸다. 저녁 무렵이면 주홍빛 아스라한 윤슬도 만들어낸다.백제는 이 금강에 기대어 나라를세웠고 번성했다. 123년 동안 백제의 왕도로 자리한 부여는 백제의 아득한세월이깃든역사의보물창고다. 작은도시곳곳에는옛 백제의 역사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옹기종기 모여있어 다채롭다.

  • 백제 정원의 정수, 궁남지

    백제의 은근하고 그윽한 역사를 간직한 곳이 있다면 바로 궁남지다. 궁남지는 ‘궁 남쪽에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삼국사기>에 이르면 ‘궁궐의 남쪽에 20여리나 되는 긴 수로를 파 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고 주위에 버드나무를 심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634년 무왕시절을 만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라고 한다. 1만평 정도에 이르는 지금의 궁남지는 1965년에 복원한 것인데, 원래 규모의 1/3쯤이었다. 궁남지 한가운데의 ‘뜬 섬’에는 포룡정(泡龍亭)이라는 현판이 걸린 정자가 있다. 이는 백제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에 살던 용이 나타나자 의식을 잃은 뒤 무왕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탄생 설화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뜬 섬으로 이어지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정자로 들어갈수있다. 궁남지는 무왕과 선화공주의 러브스토리가 깃든 곳이기도 하다. 어릴적 이름이 서동으로 불렸던 무왕은 신라의 국정을 탐지하라는 밀명을 받고 마를 파는 상인으로 위장해 서라벌로 잠입한다. 그리고 어느 날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됐다. 서동은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시집가서 서동 도련님을 밤마다 몰래 안고 간다’는 내용의 서동요를 직접 지어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소문이 번지자 왕은 결국 선화공주를 내쫓았고, 무왕은 기다렸다는 듯 백제로 데려갔다. 두 사람이 신접살림을 차린 곳이 바로 궁남지터다.

  • 백제 속 비운의 역사를 간직한곳

    금강은 아름답지만, 백제 비운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흐르는 강이기도 하다. 금강을 한눈에 굽어보며 자리 잡은 곳이 부소산성이다. 위례성(서울), 웅진(공주)에 이어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던 사비(부여)의 역사가 진하게 배어 있다.
    부소산성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사비성 또는 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로 수도를 옮기던 백제 성왕 16년(서기 538년)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해 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소산성의 둘레는 약 2.2km. 해발 106m의 낮은 산인데다 소나무, 왕벚나무, 갈참나무, 상수리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 사이로 산책 길이 잘 정비되어 있어 아이들과 노약자도 쉽게 걸을 수 있다.
    부소산성의 여행은 사비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르는 것으로시작한다. 이 길은소나무가 울창한데다 널찍한돌이깔 려 있어 산책코스로도 손색이 없다. 처음 만나는 곳은 삼충사. 백제 삼충신인 성충과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곳이다. 삼충사를 지나면 백제시대 왕과 귀족들이 계룡산 연천봉에 떠 오르는 해를 맞으며 하루를 계획했다는 영일루, 백제시대 곡물 을 저장했던 창고인 군창지가 차례로 나타난다. 군창지를 지나 면 반월루. 전망 좋은 누각이다. 부여읍내와 구드래 들판, 반월 형으로 읍내를 감싸고 도는 백마강까지 한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백제, 그 우아함과 만나다

백제는 해상왕국인 만큼 일본, 중국과 왕래했다. 구드래나루는 당시 해상왕국 백제의 출발점이었다. 중국과 일본에서 드나드는 배로 붐볐다. 지금도 나루터는 여전하다. 대신 사신과 승려, 학자, 예술가가 아닌 관광객을 싣고 유람선이 다닐 뿐이다. 사람들은 “백마강 달빛 아래, 물새가 우~울고...”라는 유행가를 들으며 백제의 화려했던 한 시절을 떠올린다. 어느새 조각 공원도 들어서 있다. 세계 각국 거장들의 조각품들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자전거로 여행해 보기를 권한다.
대청댐에서 시작해 금 강하굿둑까지 총 146km에 달하는 금강 자전거길이 지나는 구간이다. 백제보에서 구드래나루를 거쳐 규암 선착장에 이르는 백마강 양쪽의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돌아 볼 수 있다.
고구려 장수왕의 칼에 개로왕을 잃은 뒤 한성 백제시대를 마감하고 공주에서 64년 동안 국력을 키웠던 백제는 성왕이 부여로 천도한 재기를 도모하지만, 마침내 의자왕에 이르러 그 역사를 마감한다. 부여는 6대 동안 123년에 걸쳐 찬란했던 백제문화를 꽃피웠던 고도다.
부여를 여행하다 보면 자주 그리고 오래 멈추게 된다. 미륵반가 상의 은은한 미소 앞에서, 아라비아의 그것보다 더 화려한 백제 의문양앞에서,고도를 둘러싼 산성을 걷다가 문득 백마강이 내려다보이는 성벽 앞에서 멈춰 서 있으면 잊혀진 백제의 찬란한 역사가 다시 눈앞으로 다가오는 듯하다. ‘백제/천오백년, 별로/ 오랜 세월이 아니다/우리 할아버지가/그 할아버지를 생각하듯/ 몇 번 안가서/백제는 우리 엊그제, 그끄제에 있다...’ 부여 출신 시인 신동엽의 그의 시 ‘금강’에서 이렇게 노래했듯이 말이다.

여행고수가 알려주는 여행지 이야기
  • 백제문화단지

    백제 왕궁과 마을을 재현한 곳. 당시 생활상을 재현한 사비성에는 왕궁 및 능사, 생활문화 마을, 위례성, 고분공원, 역사문화관 등이 들어서 있다. 특히 생활문화 마을에는 백제시대 귀족부터 군관가옥, 그리고 중류계급과 서민계급의 집들을 재현해 놓았다.

    주소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 455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문화의 진수로 손꼽히는 백제금동대향로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능산리사지에서 발굴된 세기의 보물로 백제 공예품의 절정을 보여준다. 전체 높이 62.5cm. 용 모양의 향로받침 위에 연꽃 모양의 향로 몸체를 사뿐하게 얹혔다. 불교문화 연구가들은 백제금동대향로가 불교의 이상향인 연화장의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주소 충남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 고란사

    낙화암 아래에 있다. 낙화(落花)가 된 백제인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 이 곳에 지어졌다. 지금도 식수로 애용되는 고란수가 나오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다년초 식물 고란초가 있다.

    주소 남부여군 부여읍 쌍북리산 1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