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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디자인을 고민하면서 작품뿐만 아니라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줬어요. 예전에는 계절별로 새로운 옷을 사서 입었는데 지금은 입고 싶은 옷이 생기면 일주일 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놔요. 그 뒤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구매하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냉장고는 최대한 채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하나를 넣으면 그것부터 먹어 없애요.”

그린디자인으로 시작한 첫걸음

인생의 가장 큰 이벤트 중에 하나인 결혼식.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새로운 시작을 축복받는 날이지만 결혼식에는 우리가 몰랐던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단 몇 시간의 행사를 치르기 위해 너무 많은 쓰레기가 생긴다는 것. 이경재 디자이너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고 친환경적인 결혼식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에코 웨딩 컨설팅 사업을 시작했다. 한지, 옥수수 전분, 실크 등의 천연 소재로 신부만을 위한 맞춤 웨딩드레스를 만들고 꽃장식, 부케, 청첩장 등 결혼식에 사용되는 모든 것들을 친환경으로 할 수 있게끔 컨설팅해 준다. 그녀가 이렇게 에코 웨딩에 관심을 두게 된 건 그린디자인 대학원에서 윤호섭 교수님을 만난 뒤부터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뒤 SBS의 디자인실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일이 재밌었는데 6개월 정도 지나자 꿈과 현실 사이에 괴리감이 느껴지더라고요. 그 무렵 아빠가 아파서 함께 강원도 횡성군에 신대리라는 마을로 여행을 가게 됐고, 친한 마을 이장님께 제안을 받아 귀농 생활을 시작하게 됐어요. 마을에 있는 한 공간을 펜션으로 운영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뜻밖의 여정으로 시작하게 된 귀농생활은 만족스러웠지만 펜션 사업 특성상 평일에는 일이 적어 적적한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적적한 생활 중 대학원을 알아보게 되었고 우연히 그린디자인을 만났다. “환경운동으로 유명한 윤호섭 교수님이 그린디자인 대학원을개설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커리큘럼 등 궁금한 게 많아 직접 찾아 뵙기도 했죠. 마침 야간 대학원이라 하고 있던 펜션 일과도 병행이 가능할 거라 생각했고요.” 그렇게 2005년, 국민대학교 그린디자인 대학원에 입학한 이경재 디자이너는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에코 패션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
수업을 들으면서 많이 반성했어요. 디자이너로서 한 번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책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요. 교수님께서 소개해주신 친환경 소재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옷을 떠올리게 됐어요. 그중에 옥수수 전분으로 만든 비닐이 있어 우비를 만들어봤죠. 마을 한우 축제에서 무분별하게 버려지던 우비가 생각났거든요. 그린디자인을 고민하면서 작품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도 많은 영향을 줬어요. 예전에는 계절별로 새로운 옷을 사서 입었는데 지금은 입고 싶은 옷이 생기면 일주일 동안 장바구니에 담아놔요. 그 뒤에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면 구매하죠.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는 냉장고는 최대한 채우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하나를 넣으면 그것부터 먹어 없애요.”

  • 옥수수 전분으로 만들기 시작한 웨딩드레스

    인생의 첫 에코 패션 제품으로 우비를 만든 이경재 디자이너의 다음 작품은 웨딩드레스가 되었다. “우연히 잡지에서 한 연예인의 결혼식 정보를 소개하는 기사를 보게 됐는데 단 1~2시간을 위해 쓰는 금액이 엄청 많더라고요. 사실 연예인들이 입는 웨딩드레스는 천연 소재인 실크로 만들지만, 일반인들이 대여해서 입는 건 대부분 잘 썩지 않는 합성섬유로 만들거든요. 웨딩드레스는 보통 4~5회 대여하면 수명이 끝나요. 세탁하는 데도 한계가 있죠.”
    그녀는 잠시 입고 버려질 거라면 차라리 환경에 도움이 되는 소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옥수수 전분으로 웨딩드레스 두 벌을 만들어냈다. 그러다 우연히 일본 박람회에서 옥수수로 만든 원단을 발견하게 되었고, 6개월 동안 14벌의 드레스를 만들어 ‘대지를 위한 바느질’이라는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단순히 과제와 개인전으로 시작한 웨딩드레스가 그녀의 삶의 방향을 바꿀 거라 예상하지 못했을 터. “개인전을 하면서 제가 만든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은 사람을 찾아봤어요. 그러다 한 분이 지원해서 제가 만든 에코 웨딩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리게 됐죠. 한 달 정도의 개인전이 끝나고 다시 강원도로 내려갔는데 웨딩드레스를 입고 싶다는 연락이 하나 둘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웨딩드레스만 만들다가 친환경 종이로 만든 청첩장부터 음식, 뿌리를 살린 부케와 화분으로 꾸민 결혼식장 등을 총체적으로 컨설팅하는 에코 웨딩 서비스를 만들게 되었어요.”
    승승장구하던 이경재 디자이너의 에코 웨딩 컨설팅은 코로나19로 큰 변화를 맞이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팬데믹 시기에 소비자 대상으로 했던 사업을 유지하기 어려워 비즈니스 모델을 변경하게 된 것.
    “코로나19로 많은 예약이 미뤄지고 취소됐어요. 더 이상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을 유지하기 어렵더라고요. 현재는 에코 웨딩을 진행했던 노하우를 정리해 매뉴얼을 만들고 시스템화해 웨딩 업체에 컨설팅하고 있어요. 작년 말에 수서에 있는 ‘식물관PH’라는 곳에서 연락이 와서 컨설팅을 완료했죠.”

  • 내일을 위한 발걸음

    이경재 디자이너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에 대해 묻자, 자신이 만든 웨딩드레스를 원피스로 수선해 10주년 결혼 기념사진을 찍어 보내준 손님을 떠올렸다. “제가 만든 옷이 쓰고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소중한 추억을 기념하는 데 쓰여 기분이 좋더라고요. 저는 지구에 해가 덜 되는 옷을 만들고 싶어 창업하게 됐어요. 웨딩드레스뿐만 아니라 면역력이 약한 환자와 위생을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의료진을 위한 친환경 유니폼, 영유아 옷을 만들고 있죠.”
    웨딩 사업을 진행하며 아는 병원에만 납품했던 유니폼은 코로나19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되었다. 친환경 소재에 항균 기능을 더한 ‘HED+’ 브랜드를 아마존에 성공적으로 론칭한 뒤 지난 12월에 한국에도 선보이게 됐다.
    이경재 디자이너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친환경 병원복의 피드백을 받아 개선하는 작업을 하면서 이를 논문으로 쓸 예정이라고 한다. 더불어 소비자들이 에코 웨딩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전국에 있는 웨딩 업체 30곳 정도에 컨설팅을 완료하는 것이 목표다.
    “환경은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이렇게 해야 한다고 정해두기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을 위해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어제는 종이컵을 5개 썼지만, 오늘은 그보다 적게 쓰기 위해 노력하는 거죠. 우리의 작은 변화가 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 거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