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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으로부터 바다에 흐르기까지

    탐진강은 전남 장흥과 강진을 적시며 흐르다가 남해로 빠져나가는 강이다. 전라남도의 3대 강(영산강, 섬진강) 가운데 하나다. 일명 예양강(汭陽江)이라고도 하는데, 신라 문무왕 때 탐라국 사람이 상륙했다는 전설에 연유해 탐라국의 ‘탐(耽)’자와 강진(康津)의 ‘진(津)’자를 합하여 탐진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유역에는 용반평야과 장흥평야, 강진평야가 만들어져 있는데, 장흥의 여느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도 기름지고 넉넉한 음식의 많은 부분이 이 탐진강에서 나고 기른 것들이다. 탐진강은 전라도를 가로 짓는 아름다운 강줄기로, 영암 금정면 세류리에서 발원, 유치면과 장흥읍내를 지나 강진읍에서 바다로 빠진다. 길이 55km의 짧은 강이지만 이 강에 무태장어를 비롯해 납자루, 송사리, 버들매치, 돌마자, 갈겨니가 어울려 살아간다. 하나 같이 드물고 귀한 생명들이다. 이 곳에 인공호수인 탐진호가 만들어졌다. 탐진호를 따라 휘어 돌아가며 길이 이어진다. 소박한 산과 고요한 산간마을을 잇는다. 호수에는 기암이 박혀있거나 멋들어지게 휘어진 소나무가 물에 비치는 비경은 없지만, 소양호처럼 크지도 않고 옥정호처럼 아기자기하지도 않지만, 깊고 구구한 이야기가 많이 얽혀 있다. 장흥을 여행하는 일은 이 강과 저 강이 흘러가 닿은 바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다.

  • 탐진호의 첫 풍경 보림사

    호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보림사가 있다. 860년(헌안왕 4)에 창건된 통일신라 시대 고찰이다. 인도 가지산의 보림사, 중국 가지산의 보림사와 함께 ‘동양의 3보림’으로 불린다. 원감국사와 각진국사 등 대선사들이 이곳에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절 마당에 서서 둘러보면 가지산 봉우리들이 연꽃을 닮았다. 보림사가 연꽃 한가운데 자리 잡은 셈이다. 보림사 범종 소리가 은은하고 여운이 긴 이유도 가지산이 울림통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경내에는 귀중한 유물이 많다. 특히 대적광전에 모신 철조비로자나불좌상은 우리나라에 있는 철불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한국전쟁 때 피눈물을 흘렸다는데, 이는 비가 온 뒤 흘러내린 쇳물이 와전된 것이라고 한다. 불상 왼팔 뒷면에 858년(헌 안왕 2) 김수종이 왕의 허락을 받아 불상을 조성했다는 명문이 있다. 이 명문은 신라 시대에 지방 유지가 개인 재산으로 불상을 조성할 만큼 불교가 전국적으로 퍼졌음을 보여준다. 당시 쇠 2,500근이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깊고 그윽한 비자나무 숲 사람들은 보림사만 휘휘 돌아보고 가지만, 진짜 좋은 곳은 뒤쪽에 위치한 울창한 비자나무 숲이다. 수령 300년이 넘은 비자나무 500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참나무와 단풍나무, 소나무도 많이 자란다. 숲은 1982년 산림유전자원보호림으로 지정됐으며 비자나무는 회색이 약간 도는 갈색 껍질을 두르고 있어 목재 질이 좋아 바둑판이나 가구로 쓰인다. 비자나무 숲 사이로는 시냇물처럼 산책로가 나 있다. 숲이 깊고 깊어서 한여름 거센 햇빛 한 올도 침범하지 못한다. 다소곳한 길을 따라 걷노라면 몸도 마음도 초록으로 물드는 것 같다.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숲 내음이 가슴에 들어찬다. 비자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나무 사이사이 잡풀이 무성한데, 자세히 보면 야생차밭이다. 그래서 이 길을 ‘청태전 티로드’라고 부른다. 청태전(靑苔錢)은 ‘푸른 이끼가 낀 동전 모양 차’라는 뜻으로, 가운데 구멍을 뚫어 엽전을 닮았다. 1,200년 역사를 자랑하는 발효차로, 삼국시대부터 근세까지 장흥을 비롯한 남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야생 찻잎을 따서 가마솥에 덖고 절구에 빻은 뒤 엽전 모양으로 빚어 발효한다. 보통 발효 기간은 1년을 거치지만, 3년 정도 발효해야 제대로 된 차 맛을 즐길 수 있다. 색은 파래와 비슷하고, 맛이 순하고 부드럽다.

  • 문학의 고장, 장흥

    ‘장흥에서 글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장흥에는 유독 문인이 많다. 〈서편제〉의 이청준, <아제아제 바라아제>의 한승원, <녹두장군>의 송기숙, <생의 이면>을 쓴 이승우 등 한국 현대문학을 빛낸 문인들이 장흥 출신이다. 시인으로는 김영남, 이성관, 이한성, 박순길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는 단연 故 이청준 선생이다. 그는 1960년대 중반 문단에 나와 40여 년 동안 소설계를 이끌었으며, 장흥을 무대로 많은 작품을 썼다. 이청준 선생이 태어난 곳이 회진면 진목마을이다. 진목마을 입구에서 좁은 골목을 돌아가면 이청준 선생의 생가가 보인다. 조그만 방에는 선생의 사진과 유물이 다소곳이 놓였고, 마당에는 지금도 사람이 사는 듯 장독대가 앉았다. 마을 동쪽의 예전에는 포구가 있었지만, 지금은 간척해 논으로 바뀌었다. 작가가 어릴 때만 해도 밀물이 들 때면 바다에 드리운 산줄기가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처럼 보였다고 한다. 선생은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선학동 나그네〉를 썼다. 장흥의 바다에도 문향이 짙다. <아제아제 바라아제>로 유명한 소설가 한승원이 장흥 회진면 신덕리 출신이다. 율산마을 앞 바닷가에는 ‘한승원 문학산책로’가 조성돼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 그의 시비가 서 있다. 바다를 소재로 쓴 시가 많은데 이 시들을 한편씩 읽으며 산책을 즐겨보자. 한승원은 2016년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장흥에서 태어나고 자란 이대흠 시인은 산문집 <탐진강 추억한 사발 삼천 원>에 이렇게 썼다. ‘회진항에서 남포까지 이어진 장흥의 해안도로는 굽이마다 이야기가 맺혀 있고, 또 태어난다. 설화에서 소설까지 길은 이어지고, 이미 쓰인 소설에서 아직 태어나지 않는 이야기로 길은 이어진다. 길 끝이 어디냐고 묻지를 마라. 여기 이곳에서 이 나라의 소설 길이 시작된다.’ 저물 무렵이면 탐진강을 거슬러 온 노을이 장흥읍내를 물들인다. 예양교에 올라 이 주홍빛 풍경 앞에 서 있노라면 수많은 이야기들이 전해오는 것만 같다.

여행고수가 알려주는 여행지 이야기
  • 강성서원

    고려시대의 문신 문익점과 조선 중기의 의병장 문위세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고려시대의 문신인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인물. 문위세는 문익점의 9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왜적을 물리쳤다. 1785년(정조 9)에 강성(江城)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많은 학자들을 배출했다.

    주소 전남 장흥군 유치면 조양리 산365-1

  • 장흥 선사문화유적공원

    장흥의 오래된 마을에서 발굴한 고인돌들을 이전, 복원해 놓은 곳이다. 140여 기의 고인돌과 각종 선사 유적들을 볼 수 있다. 덮개돌 무게가 10~20톤가량 나가는 것도 있고, 100톤에 이르는 것도 있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사람들이 땅을 파고 기둥을 세운 후 이엉을 덮어 만든 움집도 있다.

    주소 전남 장흥군 유치면 신풍리 287-6


  • 해동사

    안중근 의사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국내 유일의 사당이다. 매년 추모 제향을 지낸다. 안중근 의사는 순흥 안씨인데, 죽산 안씨 문중이 안 의사 후손이 국내에 없어 제사를 지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이곳에 사재를 털어 사당을 지었다. 사당에는 시계가 걸려 있는데 안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시간인 오전 9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주소 전남 장흥군 장동면 만수길 25-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