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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월 8일은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입동’입니다. 무더위와 비 피해로 얼룩졌던 여름을 지나 가을은 소리소문없이 스쳐 갔고, 11월과 함께 겨울을 맞게 된 겁니다. 물론, 우리가 알고 있는 겨울과는 사뭇 다른 겨울이지만요.

    우리가 날씨를 이야기할 때 비교군으로 언급하는 ‘평년값’은 통상 과거 30년의 평균을 의미합니다. 2022년 기준, 이 평년값은 1991~2020년의 평균을 뜻합니다. 평년 기준, 수도권에선 11월 첫 주에 첫 얼음이 얼었습니다. 그런 과거의 겨울과 우리는 조금씩 멀어지고 있고, 올해도 역시 평년과는 먼 겨울을 보낼 걸로 예상됩니다.

    기상청은 11월과 12월의 기온이 평년과 비슷하거나 더 높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평년과 비슷할 확률이 40%,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40%, 낮을 확률은 20%로 예측된 것이죠. 강수는 어떨까요. ‘역대 최악의 가뭄’이 이어졌던 지난가을∙겨울과 달리, 이번 겨울에는 가뭄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을 듯합니다. 강수도 기온과 마찬가지로 평년과 비슷(40%)하거나 더 많을(40%) 걸로 예상됐기 때문입니다.

    평년과 다른 겨울은 한국만의 문제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는 예년과 다르게 역대급으로 달궈진 지구 때문입니다. 지난 7월 3일, 사상 최초로 지구의 평균기온이 17℃를 넘어선 이래로 10월까지 지구의 기온은 연일 ‘가장 뜨거운 상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역대 가장 뜨거운 7월, 8월, 9월, 10월…’ 갑작스러운 이변으로 지구 전반의 온도가 뚝 떨어지지 않는 이상, 이러한 역사적 기록은 겨우내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APEC 기후센터(APCC)는 동아시아 지역의 기온과 강수 역시 평년보다 높고 많을 거라는 전망을 내놨습니다. 특히 한반도의 경우, 10월~12월 3개월 기간, 기온은 평년보다 1~1.5℃ 높고, 강수는 평년보다 일평균 0.3mm가량 더 많을 것이라는 게 APEC 기후센터의 다중모델 예측 결과입니다.

    다만 올겨울엔 두 개의 커다란 변수가 존재합니다. 엘니뇨와 한대전선 제트기류, 즉 북극 제트입니다. 지난여름, “수퍼 엘니뇨로 각종 기상이변이 우려된다”는 뉴스가 다수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엘니뇨의 영향이 큰 계절은 여름이 아닌 겨울입니다. 이미 평년보다 1.6℃ 안팎까지 뜨겁게 달궈진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해수온은 겨우내에도 평년보다 1.4℃가량 높을 걸로 예상됩니다. 엘니뇨가 계속된다는 것이죠. 이렇게 되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요.? 당장 북반구 곳곳엔 이상 고온 현상이 벌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고온 현상은 뜨거운 바다를 만들고, 평소보다 따뜻한 공기는 더 많은 수증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하늘로 향하는 공기의 흐름은 저기압을 만듭니다. 저기압은 비를 뿌리게 되고요. 이는 앞서 소개한 기상청 및 APCC의 기상 전망이 일맥상통하는 부분입니다.

    ‘따뜻하고, 비 좀 내리는 것이 문제인가?’ 싶을 수도 있습니다. ‘추운 건 질색인데, 차라리 반갑네’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런데 또 하나의 변수, 한대전선 제트기류가 ‘진짜’ 문제입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제트기류의 영향으로 한반도에 발생할 기상현상이 문제입니다.

    달궈진 건 적도 부근 동태평양의 엘니뇨 감시 수역의 바닷물만이 아닙니다. 북극, 적도, 남극 할 것 없이 지구 곳곳이 달궈졌죠. 연일 새로운 역사를 써가고 있는 지구의 기온이 그 증거고요. 지난 지구보고서를 통해 자주 설명해 드렸듯, 북극의 기온이 오르면 극지방의 찬 공기를 가두는 ‘에어 커튼’ 역할을 하던 제트기류가 약해집니다. 수평 방향으로 팽팽히 불던 제트기류는 세력이 약해지며 구불구불 뱀처럼 사행(蛇行)하게 되고요. 마치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처럼 말입니다. 그렇게 제트기류가 처져 내려온 곳엔 강추위가, 반대로 올라간 곳엔 이상 고온 현상이 벌어집니다.

    이러한 ‘약해진 제트기류’로 지난겨울, 유럽엔 이상 고온이 찾아오며 알프스 스키장의 눈이 녹아내렸고, 스페인 남부에선 사람들이 12월에도 해수욕을 즐겼죠. 하지만 우리나라엔 갑작스러운 혹한이 찾아와 곳곳이 꽁꽁 얼어붙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남쪽에선 뜨끈한 수증기가 올라오면 어떻게 될까요. 혹한에 더해 폭설이 쏟아지게 됩니다. 그저 ‘평년보다 따뜻하다’는 겨울철 기상 전망에 긴장을 풀고 느슨해질 수 없는 이유입니다.

    따뜻한 겨울날이 찾아왔다고 ‘온난화야 반갑다’ 외칠 수도, 반대로 갑작스러운 한파와 폭설이 찾아왔다고 ‘온난화야 어디 갔니’ 외칠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처지입니다. 이는 산업혁명 이래로 아무런 비용 없이 대기 중에 온실가스를 뿜어낸 우리에게, 인자하던 Mother Nature가 그간의 외상값을 기록한 청구서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