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따라 걷다

버드나무 흐드러진
대전의 유등천을 따라 걷다

유등천은 갑천, 대전천과 함께 대전을 대표하는 3대 하천이다. 금산군에서 시작해 대전 중구를 지나 갑천으로 흘러든다. 과거에는 비옥한 곡창지대를 이루었고, 지금은 9km에 이르는 산책로 등으로 시민들을 위한 쉼터로 자리한다. 예로부터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내로 불리며 현재는 대전 중구와 서구를 구분 짓는 경계가 되고 있다. 몸과 영혼을 모두 비옥하게 만드는 유구한 흐름을 간직한 유등천을 따라 대전의 이모저모를 만나보자.

글. 김영은 사진. 김은주



버드나무가 있는 물가, 유등천

유등천(柳等川)의 ‘유’는 ‘버들 류(柳)’를 사용한다. 유등천 주변에 흐드러진 버드나무가 많기 때문인데, 이러한 이유로 과거에는 버드내 또는 유천(柳川)이라 불렸다. 유등천의 기록은 조선시대 지리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으며, 당시에는 유포천이라 불렸다. 조선 성종 때 만들어진 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를 보면, ‘유포천은 유성현 동쪽 20리에 있는데, 전라도 진산현 경계에서 발원한다’고 적혀 있다. 유등천이라는 정확한 명칭은 1872년 지방지도(공주)에서 처음으로 확인되었다고 전해진다. 유등천 여행은 대전의 서구 복수동에서 시작했다. 복수동은 대부분 주거지다. 마음 먹으면 한 걸음에 달려갈 정도로 유등천과 가깝다. 그래서 유등천변은 주민들의 일상으로 북적인다. 오래 전 버드내로 불렸던 만큼, 복수동 유등천 곳곳에서 버드나무가 줄지어 있다. 8m에 이르는 거대한 버드나무가 존재하기도 하고, 앙상한 가지의 버드나무가 있는 반면 또 어떤 것들은 겨울 초까지 노란 잎을 간직하곤 한다. 버드나무를 중심으로 백로와 왜가리, 할미새, 흰뺨검둥오리, 뱁새 등도 자주 모습을 내비친다. 세찬 바람이라도 부는 날에는 후드득 떨어진 버들이 힘찬 유등천을 따라 흘러 흘러간다. 유등천에서 유명한 것은 비단 버드나무뿐만이 아니다. 주거지 쪽으로 눈길을 돌리면 430년의 세월을 간직한 느티나무를 만나게 된다. 높이 15m, 뿌리 둘레 8m에 이르는 자태에는 장엄한 기운이 서려있다. 오랜 세월 나무 밑동이 썩는 시련도 겪었다. 다행히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되며 치료를 받아 회복했다. 지금은 두쪽의 몸으로 나누어져 서로 의지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느티나무는 일생을 거쳐 우리에게 말하는 듯 했다. 몸이 두쪽 날 때까지 삶을 지키고 서로 의지하라고.



자연을 품은 도시, 도시를 품은 자연

유등천은 대전의 원도심과 신도심의 경계를 짓는다. 1970년대 이전에는 유등천이 대전시의 외곽이었지만 곧 드넓은 논밭이 주거지로 바뀌었고, 이곳을 중심으로 서대전이 급속히 도시화를 이루었다. 유등천은 충남 금산 일대의 월봉산에서부터 흘러들어 대전까지 이른다. 금산 진산지역의 작은 물길들이 모여 유등천이 되고, 서구 둔산동을 지나 대전천에 흡수된 뒤 갑천으로 유입된다. 그렇기에 유등천은 중구와 서구를 구분 짓는 경계이기도 하다. 복수동 느티나무를 뒤로 하고 유등천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갑천으로 유입되는 길목에 한밭수목원이 있다. 봄이나 가을처럼 총천연색으로 물드는 수목원만큼이나 겨울의 수목원도 매력이다. 겨울잠에 푹 빠진 동식물이 깨어날까 소곤소곤 걷는 모습은 마치 모두가 고요히 잠든 새벽을 거닐 듯 고즈넉한 매력이 있다.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의 녹지축을 연계한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인공수목원이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식물 종과 자연 체험학습의 장, 도심 속 휴게공간 등 다채로운 공간이 꾸려져 있어 제대로 보려거든 하루가 족히 걸린다. 전망대에 오르면 도심 전경과 함께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한밭수목원 주변으로는 대전예술의 전당, 대전시립미술관, 열대식물원, 조각공원 등이 있어 자연과 문화, 예술이 어우러진 공간들이 두루두루 자리 잡고 있다.

걷고 싶은 길, 달리고 싶은 길

2023년 대전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의 공모를 통해 국제명소형 야간관광 특화 도시에 선정되었다. 대전을 대표하는 엑스포 과학공원부터 한밭수목원, 미디어파크 등이 야간관광의 중심지다. 한밭수목원에서 갑천을 끼고 반대편에는 야경명소로 알려진 한빛탑, 엑스포과학공원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엑스포다리가 명관이다. 1993년 대전 엑스포(EXPO) 개최 당시 행사장 앞 갑천에 설치된 엑스포다리는 보행용 다리로 만들어졌다. 아치 도장, 교량상판 방수도장, 보도 우드데크 설치 등 지난 2009년 환경개선을 통해 걷고 싶은 다리로 탈바꿈하며, 시민들에게 또 다른 야경 명소이자 쉼터가 되고 있다. 야간 조명은 매주 금~일 밤 11시까지 켜진다.
해가 짧은 겨울이라 유유히 걷다 보면 금세 화려한 야경이 눈앞에 펼쳐지겠지만, 자전거를 좀 탈 줄 안다면 대청호까지 라이딩에 도전해 볼 것을 추천한다. 대전천, 갑천, 유등천 모두 산책로와 자전거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자연을 벗 삼아 대청호까지 라이딩이 가능하다. 보통 라이딩 코스로는 한밭수목원에서 대청댐 물문화관까지로, 약 22km이며 1시간 반 정도가 소요된다. 대청공원을 지나면 대청호가 한눈에 펼쳐지고, 잠시 쉴 만한 곳으로 물 문화관이 있다. 더불어 야간에는 대청교에서 보는 대청댐의 야경도 놓칠 수 없는 경관 중 하나다.


  • 한밭수목원

    도심 속의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의 녹지축을 연계한 전국 최대의 인공수목원이다. 계절마다 바뀌는 풍경이 다채롭게 느껴지는 곳이다.

    이용시간
    하절기(4월-9월) 06:00-21:00
    동절기(10월-3월) 08:00-19:00


  • 대청호 오백리길

    대청호 오백리길은 대청호 주변을 따라 마을과 하천을 연결한 둘레길이다. 대전시(동구, 대덕구)와 청주시, 보은군, 옥천군에 걸쳐 약 220km에 이르며, 총 21구간의 수변 생태문화 탐방길로 알려져 있다.

▲ 1993년 대전엑스포 개최 당시 놓인 다리로, 한밭수목원과 엑스포 과학공원을 연결하는 보행교다. 해가 지면 화려한 조명으로 수놓아 명소로 꼽힌다.
▼ 눈 덮인 대청호에서 만난 일출 전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