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살다
흙을 도화지 삼아
꽃으로 그려낸 작품
율봄농업예술원 최후범 원장
햇살 아래 고개를 치켜든 수국과 눈을 맞추며 해사하게 웃는 사람들. “여기서 찍어 줘!” 하며 카메라 앞에 미소 짓는 사람들. 강렬한 햇살 아래서도 찡그리는 사람 하나 없는 이곳은 경기도 광주의 율봄농업예술원이다. 6만 여㎡ 부지의 율봄농업예술원을 하나하나 손으로 빚어낸 농업의 장인, 최후범 원장을 만났다
글 조수빈 사진 신현균
농업도 예술이 될 수 있을까
율봄농업예술원의 정체성은 딱 하나로 정의 내리기 어렵다. 멀리서 바라보면 자연이고, 가까이서 거닐면 예술이고, 손을 대 보면 신나는 경험이 되는 곳. 그래서 율봄농업식물원은 식물원이자 예술원이자 체험원으로 통한다.
시작은 ‘농업’이었다. 어려서부터 줄곧 농업의 길을 걸어온 최후범 원장은 농업의 가치에 대해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농업은 우리 삶의 밑바탕이 되는 요소인 ‘의식주’ 가운데 ‘식’과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어요. 하지만 너무 당연한 존재라 그 가치에 대해 사람들이 무감각하게 여기죠. 농업의 가치를 되새겨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가 생각하는 농업의 가치는 무엇일까. 최 원장은 농업에도 예술성이 있다고 말했다.
“농부의 삶 자체가 예술이에요. 농작물을 기르기 위해 씨앗을 심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 농부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거든요. 그림이 화가의 작품이듯 농작물은 농부가 공들여 만들어낸 작품인 거죠.”
가장 먼저 자신이 생각하는 가치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도록 농업의 문턱을 낮추기로 했다. 농사일의 과정에서 어려운 일은 자신이 하고, 재미있고 흥미로운 과정들은 관람객의 몫으로 내어 주었다. 예를 들어 딸기를 심고 열매가 맺힐 때까지 공들이는 일은 최 원장이, 탐스럽게 익은 딸기를 따고 맛보는 건 관람객들이 하게끔 했다. 최 원장이 잘 차려 둔 식탁을 우리는 그저 맛있게 먹고 감탄만 하면 되는 거다. 이밖에도 농업에 대한 다채로운 기억을 만들어 주기 위해 체험, 수업 등의 프로그램도 제공하고 있다.
사람들이 광주로 달려오는 이유
경기도 광주는 오랫동안 자연보존권역으로서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잘 보존해 나가고 있는 지역이다. 율봄농업예술원에서 시선을 더 뻗으면 용마산의 산세가 마치 한 폭인 듯 이어진다. 그래서 율봄농업예술원은 도심 속 공원이라는 말보다 자연의 한 귀퉁이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 지난해에는 무려 10만 명의 방문객이 이곳을 다녀갔는데 그중에서 지역민은 1% 남짓, 나머지는 모두 멀리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이다. 모두 자연이 그리워 달려오는 사람들일 테다.
2001년 문을 연 율봄농업예술원은 올해로 24년 차가 된 광주의 터줏대감이다. 최 원장이 20년 넘도록 농업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좋아서’란다. “농사일에 대한 애착이 커요. 힘든 순간도 분명 있지만, 고통 끝에 느끼는 희열이 더 크거든요. 힘들다고 모두가 포기하면 농업의 자리는 누가 지키겠어요.”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농업에 대한 애정은 물론 농부로서 사명감도 느껴졌다. ‘농업의 가치’라는 하나의 고민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최 원장은 관람객들의 표정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꽃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웃고 감탄하고 즐거워하기 바쁘죠.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과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나 좋은 일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증샷 삼매경에 빠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는 한 치 여유가 없었다. 가지가 꺾인 곳은 없는지, 이파리가 마른 곳은 없는지 수시로 들여다보며 식물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하루가 짧기만 하단다.
최 원장은 인터뷰를 마치자마자 곧장 할 일이 많다며 정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꽃과 나무에 둘러싸여 흘리는 땀방울이 또 한 송이의 꽃을, 한 그루의 나무를 키워낼 것이다. 그리고 그가 가꾼 행복을 우리는 마음껏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최 원장이 진정으로 바라는 모습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