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전한 지구
휴가철 항공 여행에 떠오른 복병
마른하늘에 난기류
글 장세만 SBS 기후환경전문 기자
설레는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분들에게 복병 같은 뉴스가 전해졌습니다. 잇따른 항공기 난기류 사고입니다. 지난 5월 21일 영국을 출발해 싱가포르로 가던 여객기가 강한 난기류를 만나 남성 승객 1명이 숨지고 80여 명이 부상했습니다. 당초 보도에서는 난기류 탓에 갑자기 1,800m를 급강하했다고 전했지만, 정확한 낙하 거리는 싱가포르 항공청 조사 결과 54m이었던 걸로 드러났습니다. 낙하에 걸린 시간은 4.6초였습니다. 초당 10여 미터 떨어지는 강하만으로도 부상자가 속출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숨질 수 있다고 하니 그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두려움이 앞섭니다. 이 사고 닷새 뒤엔 카타르에서 아일랜드로 향하던 카타르 항공 여객기에서도 비슷한 난기류 사고가 났습니다. 승무원과 승객 등 12명이 다쳤습니다.
사실 그동안 잘 몰랐을 뿐 난기류 사고는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주요 원인이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미국 항공사의 항공 사고 발생 건수 290여 건 중 110여 건이 난기류로 인한 사고였습니다. 사고만 안 났을 뿐 미국 항공기 비행 건수 가운데 연간 6만 5천 건에서 난기류를 만난다고 합니다.
특히 무서운 건 이른바 청천 난기류(Clear-air-turbulence)라는 겁니다. 멀쩡히 맑은 마른하늘에 갑자기 돌풍처럼 생기는 난기류를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비바람을 동반한 난기류는 물방울 입자로 인해 항공기에 탑재된 레이더에 관측되지만, 청천 난기류는 말 그대로 수분 없이 마른 돌풍인 탓에 레이더에 관측되지 않는 복병입니다.
항공기들이 항로로 쓰는 고도 9~12km 구간에는 바람이 특히 강하게 붑니다. 이른바 제트기류 탓입니다. 태풍보다도 속도가 빠른 탓에 1950년대 기상학자 로스비가 ‘Jet Stream’이라고 부른 게 연원이 됐습니다. 학교에서 배웠던 편서풍의 일종입니다. 동쪽으로 부는 빠른 바람이라는 특성이 있고요. 서울-LA 항로에서 서울로 돌아올 때보다 LA로 향할 때 비행시간이 2시간이나 줄어드는데, 바로 이 제트기류 덕분입니다.
국내 경우에는 지리적 위치와 지형적 조건도 난기류 빈발에 한몫합니다. 태평양과 아시아 대륙 사이에 위치한 만큼 해양과 대륙 사이의 온도 차로 인해서 불규칙한 난기류 발생이 많기도 하고요. 태백산맥 등 산악지대가 많다 보니 바람길이 산맥 구간과 부딪히면서 난기류 발생을 늘리기도 한다는 게 기상 전문가들의 얘기입니다.
문제는 기후변화와의 연관성입니다. 이 제트기류는 고도상으로 볼 때 아래쪽 대류권과 위쪽 성층권 사이에서 발생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지구온난화로 아래쪽 대류권 기온이 상승하면서 성층권과의 온도 차가 커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두 대기층 사이의 온도 차로 인해 제트기류의 교란 현상이 심화되고 난기류의 변화폭도 증가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로 지난해 영국 레딩대 연구진이 컴퓨터 분석을 통해 미래에 중간 강도 이상의 청천 난기류가 얼마나 증가할지 연구했더니, 지구 온도가 1도 상승할 때 가을과 여름에는 14%, 겨울과 봄에도 9%가 늘어날 것으로 결론 내렸습니다. 연구진이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은 항로는 북대서양 상공이었습니다.
난기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 우리 기상항공청에선 편서풍대 상층 기류와 하층 기류의 속도 및 방향 차를 이용해서 난기류 발생을 관측 제공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데이터를 확보해 나래웨더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고요. 항공업계에선 항공기의 내구성을 강화하거나 관제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방안들을 연구하고 있죠.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승객의 입장에서 위험 예방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좌석에 달린 안전벨트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앞으로 기후위기 가속화와 맞물려 항공기의 난기류 사고가 커질 수 있는 만큼, 비행 중 안전벨트 의무 착용 시간을 확대하는 쪽으로 안전기준이 강화되는 게 불가피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