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처럼 살다
바다의 선물
염전에 살어리랏다
곰소염전 이강연 염부
햇살과 바람, 그리고 염부의 정성이 더해지면 비로소 염전에 소금이 소복하게 쌓인다. 하얀 소금 결정체가 만들어지는 모습을 더러 염부들은 ‘소금꽃이 핀다’라고 말한다. 바로 지금, 곰소염전에 소금꽃이 만개했다
글 조수빈 사진 황지현, 웰촌
짠내 나는 염부의 하루
‘소금 같은 사람이 되어라’, ‘빛과 소금’ 같은 표현을 보면 알 수 있듯 소금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광물이다. 1950년대까지 우리나라에는 대규모 염전시설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그 많던 염전들은 대다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고 현재 전북 지역에 염전은 딱 한 곳, 곰소염전만 남아있다. 이곳에서 이강연 염부는 아버지를 따라 2대째 염전 일을 하고 있다.
이 염부의 하루는 새벽부터 시작된다. 염전에 뽀얗게 드러난 소금을 한바탕 모으고, 채염한 소금을 거둬 수레에 싣고 나면 그제야 해가 뜨기 시작한다. 약 15만 평의 곰소염전에서 새벽부터 소금과 씨름을 하다 보면 사람들이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 그 시간, 이 염부의 옷은 이미 소금과 땀에 절여져 짠내를 가득 머금고 있다. 새벽부터 일을 서두르는 이유는 간단하다. 해가 없을 때 작업해야 수월하기 때문이다. “여름에는 햇빛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염전 물이 금방 데워져요. 머리 위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발아래 염전의 습기가 더해지면 견디기가 힘들 정도예요. 그래서 힘든 일은 새벽에 하고 있어요.”
단순히 바닷물을 증발시키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건만, 염부의 정성과 시간이 없었다면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 ‘소금’이었다. 이 염부의 하루를 엿보고 나니 ‘소금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가진 힘을 재정의해야 할 듯싶었다. 소금 같은 사람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그것이 얼마나 큰 극찬인지 알게 됐으니 말이다.
소금 한 꼬집에 깃든 자연의 모든 것
이토록 정성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천일염이 만들어지기에 국내에서 판매되는 소금 중 천일염의 비중은 30% 남짓이다. 나머지는 수입산과 공장염이 차지하고 있다. 여러 종류의 소금 가운데서 한국인의 입맛에는 천일염이 가장 잘 맞다고 강조했다.
“천일염은 정제염보다 염도가 낮아요. 그래서 소금 몇 그램, 설탕 몇 스푼 하는 식의 서양식 조리법과 달리 우리는 소금을 ‘팍팍’ 치는 게 익숙하죠. 정량화된 방법보다 ‘손맛’을 중시하는 우리 입맛에는 천일염이 가장 잘 맞아요.”
게다가 곰소염전의 소금은 건강하고 맛도 있다. 천일염은 자연에서 만들어내는 광물인 만큼 염전의 지리적 위치에 따라 맛과 품질이 천차만별로 나뉘는데, 곰소염전은 변산반도 국립공원에 인접해 큰 오염원이 없다. 또한, 바닷물을 증발시키는 과정에서 농도가 일정 수준보다 높아지면 쓴맛을 내는 염화마그네슘이 생성되는데, 고농도 간수를 생산 단계에서 최대한 걸러내기 때문에 소금 맛이 쓰지 않고 달다.
이 염부는 휴대전화에 일기예보 앱을 두 개나 깔아놓고 수시로 확인한다. 하늘도 자주 올려다본다. 이 염부는 자신의 일을 ‘자연과 호흡을 맞추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염부의 일은 자연을 상대하는 일이에요. 일출과 일몰 시각에 따라 출·퇴근 시간이 달라지고, 날씨에 따라 일을 서두르거나 접기도 하니까요.”
뭉게구름이 뜬 하늘과 소금꽃이 핀 염전이 하나로 이어지는 순간, 이따금 부는 바람에 소금물 위에 비친 하늘이 파도를 치는 순간 등 염전에서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감탄할 광경을 마주한단다. 해넘이 시간에는 마치 폭죽이 터지듯 온 세상이 붉어지는데, 문득 노을 한가운데 서 있다는 기분이 들어 묘해지기도 한다. 오직 이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일 것이다.
이제 소금을 콕 찍어 맛보면 은은하게 햇빛과 바람의 맛이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더 깊이 음미해 보면 염부가 지나온 계절이, 그가 해온 노력도 서서히 느껴질 테다. 혀끝을 때리는 짠맛에도 살포시 웃음이 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