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전한 지구
저 많은 도요새는 어디서 왔을까?
기후위기가 보낸 위험신호
글 김민수 MBN 기자
고사성어 ‘어부지리’에 등장하는 비운의 새가 도요새입니다. 영어로는 ‘Snipe’이고, 도요새 사냥에서 이름을 따 명사수를 스나이퍼 ‘Sniper’라고 부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렇듯 도요새는 친숙한 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화에 따라 생존에 위협을 받으면서 세계적인 보호종으로 지정됐는데요. 이런 도요새의 개체 수가 최근 부쩍 늘었다고 해서 주목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은 도요새는 56종 81만 5천 마리에 이릅니다. 현황 조사를 시작한 2015년보다 67% 급증했습니다. 국내에서 관찰된 도요새 56종 가운데 40종 이상이 러시아, 중국 북부, 알레스카에서 동남아, 호주, 뉴질랜드로 겨울나기를 떠납니다. 그러니까 개체수가 급증한 원인은 국내가 아니라 나라 밖 서식지 환경에서 찾아야 할 텐데요.
국내 연구를 주도하고 있는 국립생물자원관이 주목한 원인은 이상고온입니다. 주서식지인 시베리아 일대에 도요새의 먹이인 곤충 우화가 촉진됐다는 이유에섭니다. 곤충은 따뜻한 환경에서 유충이나 번데기에서 탈피해 성충이 되는 과정인 우화가 빨리지는 특성이 있습니다. 시베리아가 주서식지인 기러기 개체수도 같은 기간 늘어난 사실이 확인되기도 했습니다.
도요새에게 기후위기는 위기가 아닌 기회가 된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이상고온이 도요새의 주서식지 식생환경을 바꿔 개체수 급감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6월에는 시베리아 영구동토 지역에 이례적으로 40도에 달하는 폭염이 발생하기도 했는데요. 영구동토층이 녹으면서 땅속 병원균이 야생동물 집단 폐사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사소한 위기징후를 가볍게 여기면 반드시 참사로 이어집니다. ‘하인리히의 법칙’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기후위기는 언젠가 돌이킬 수 없고 파괴적인 ‘기후참사’가 될 수 있습니다. ‘참사’라는 무게감에 비춰보면 곤충의 우화 속도나, 도요새 개체수 급증은 아주 사소한 위험신호에 불과한 것입니다. 게다가 위험신호가 워낙 많이 목격되다 보니 이러한 사소한 징후에서 사람들이 ‘기후참사’까지 떠올리기는힘들 수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기후위기는 계속 우리가 목격할 수 있는 형태로 위험신호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상고온이 곤충 우화를 촉진시킨 사례는 우리 주변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4월부터 활개를 치는 모기, 잠실구장을 뒤덮은 동양하루살이, 숲길에 가득한 대벌레까지. 균형이 생명인 생태계에 이렇듯 급격한 변화는 좋지 못한 징조입니다. 우리를 찾아온 도요새가 급증했단 소식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입니다. 기후위기가 보내는 위험신호를 결코 가볍게 여겨선 안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