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人지도

거제 바다로 뛰어든
모아나

매일 바다로 뛰어드는 직업이 있다.
그리고는 네 시간이 지나서야 뭍으로 나온다.
맨몸으로 떠날 때와 달리 망태기에는
전복이며 해삼, 멍게, 소라 등이 가득 들어 있다.
바다를 누비는 청년 해녀
진소희 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해녀 진소희

📝글. 조수빈  /  📷사진. 박재우

해녀에게 한눈에 반하다

멀리서 보면 바다에 떠 있는 사람은 아주 작은 점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커다란 바다에 겁도 없이 맨몸으로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해녀다. 해녀들은 제주 바다에만 있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진소희 씨의 일터는 거제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 바다는 익숙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바다가 일터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었다. 10년 전만 해도 그의 일터는 바다가 아닌 병원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야심차게 병원에 취업을 했지만, 6년 차쯤 되자 직장인들에게 3년마다 찾아온다는 슬럼프가 그에게도 찾아왔다. “남들보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여기서 얼마나 발전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고요. 그래서 대학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런 그가 어쩌다 대학 캠퍼스 대신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대학에 가려고 거제로 이사를 왔거든요. 그런데 옆집 할머니가 해녀라는 거예요. 집 앞 바다에서도 해녀들이 매일 물질을 하는데 너무 신선했어요. 일반적인 직장이었다면 모두 퇴직했을 나이였는데도 여전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해녀에 한눈에 반한 소희 씨는 그들과 같은 길을 걷기로 했다.

바다 아래의 꽃밭을 만나기까지

미지의 세계에 발을 담근다는 건 배울게 많다는 이야기다. 해녀 일은 작업복인 고무 옷을 입는 것부터가 시작이었다. 요령이 없어 옷을 찢어 먹기 일쑤였던 그는 고무 옷 입는 법부터 시작해 물속 지형, 바람, 물 때, 이퀄라이징 등을 배우고 익숙해지는 데에만 1년이 걸렸다.여기까지가 해녀가 되기 위한 일반과정이라면, 다음은 ‘거제’ 바다에 적응하기 위한 심화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해녀들의 활동지로 유명한 제주와 비교하면 거제는 작업 난이도가 높은 편이다. 우선 물이 맑은 제주에 비해 거제 바다는 어두워 가시거리가 짧다. 그리고 어패류들이 물에 떠 있는 제주와 달리 거제에서는 대부분 바위에 붙어 있어 채취하기 위해서는 따거나, 파거나, 망치로 두드려야 한다.
이러한 까다로운 환경 앞에서도 소희 씨는 ‘오히려 좋아!’를 외친다. “물속에서 게임하는 것 같아요. 어두운 바다 속에 숨어있는 소라나 해삼, 멍게 등을 찾는 게 숨은그림찾기 같거든요. 그러다 처음 보는 어종이나 해초도 만나고요. 얼굴만 한 전복이나 문어라도 발견하면 어려운 미션을 깬 것 같이 진짜 행복해요. 아무도 보지 않아도 혼자 환호하고 막 웃어요.”
그는 바다 아래에도 꽃밭이 있다고 말했다. 미역이나 해초가 밀려오는 시기는 새싹이 돋는 것 같고, 빨간 멍게가 올라올 때는 붉은 꽃이 피는 것 같단다. 바깥세상과 시간은 다르게 흐르지만 바다 나름의 봄이 찾아오는 셈이다. 이 맛에 소희 씨는 오늘도 바다로 출근한다.

요즘 해녀가 말하는 요즘 바다

소희 씨는 MZ 해녀답게 아무도 걷지 않은 길을 개척하는 중이다. 2019년부터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해녀의 삶과 거제 바다의 매력을 널리 알리고 있다.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지만, 사실 초반에는 ‘해녀’ 일을 한다는 게 부끄럽기도 했었어요. 저는 고무 옷을 입고 할머니뻘 동료들과 종일 함께 있는데, 예쁜 옷을 입고 출근하는 또래 친구들을 보며 스스로 비교하게 되더라고요. 해녀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겠다 싶어 유튜브 채널을 개설했죠.” 소희 씨는 채널 ‘요즘해녀’를 운영하며 해녀의 시선으로 바라 본 바다 아래의 풍경부터 해녀 아이템, 해산물 먹방 등 자기만 할 수 있는 이야기로 해녀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고 있다. 이러한 활동 덕분에 후배 해녀들이 많이 생겼고, ‘우리가 끝이야’라며 자조하던 해녀 이모들에게도 웃을 일이 많아졌다.

많은 후배들이 생겼지만, 여전히 그는 해녀 중 가장 어리다. 해녀 일을 시작한 이래로 ‘최연소’ 타이틀을 놓치지 않는 그는 훗날 최고령 해녀가 되고 싶다는 귀여운 야망을 전했다. 그런데 최근 한 가지 걱정이 생겼단다.
“요즘 기후위기에 대한 이야기가 많잖아요. 바다 속에서 일을 하다 보니 환경 문제를 정말 피부로 느껴요. 특히 작년 여름 장마기간이 유난히 길었고, 수온도 높았어요. 그러다 보니 어획량이 반으로 줄어들었죠. 해녀로 오래 일하기 위해서는 저만 건강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바다도 함께 건강해야 되더라고요.”
바다를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해녀’라는 업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명감을 안고서도 그의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숟가락 들 힘만 있다면 해녀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라는 그의 뒤로 펼쳐진 너른 바다가 소희 씨의 든든한 동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아래 바다 속 친구들의 응원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