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갈지도

겨울을 파고든
남쪽의 볕
거제

새삼 겨울 볕에 끌리고 말았다.
포근하게 감싸 주던 양지와 어느 때보다 더 굳건하게 다가온 윤슬 때문일까.
거제여서 가능한 일이었다.

📝글.  📷사진. 박재현 소설가

매미성

꾸준함의 힘

바다 앞에 쌓았다는 점과 매미라는 이름보다 놀라운 건 이 성을 혼자서 지었다는 점이다. 매미성은 태풍 매미로 경작지를 잃은 시민 백순삼 씨가 작물을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성이다. 한 사람의 꾸준함이 성을 완성해 이제는 관광객을 오게 하다니. 동화 같은 이야기다. 성의 자태도 동화 속에 등장할 법하다. 하얀 성이 푸른 바다와 어울려 이제는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성 위에서 보는 바다 전망도 근사하다. 저 멀리 보이는 거가대교는 섬에 들어오기 위해 지나온 다리다. 그러니까 이곳에 온 여행자들은 모두 과거를 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미래까지는 볼 수 없지만, 이곳의 단단한 미래는 알 것만 같다.

매미성 앞 해변에는 모래 대신 동그란 자갈이 깔려있다.
매미성에 올라 눈을 감고 파도칠 때마다 차르르 소리내며 굴러가는 몽돌 소리를 감상해보는 것도 좋다.

외도 보타니아

외롭지 않은 섬

식물원이라면 큰 감흥이 없지만 섬 전체가 식물원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섬에 도착해 전체를 둘러보려면 오르막을 올라야 한다. 그리 힘든 코스는 아니다. 곳곳에 큰 나무들이 있어 걸음이 가볍다. 야자수가 많고 선인장도 있어 다른 나라에 온 듯하다. 더불어 잘 다듬어진 나무와 꽃이 우아하게 어우러져 걸음을 자꾸 멈추게 한다. 작은 섬이라 어느 면에서나 바다가 보여 초록과 파랑의 조화가 기분 좋게 다가온다. 조금씩 보이던 바다가 전망대에 이르면 시야를 완전히 채운다. 저 멀리 수평선에서 코앞까지 이르는 우람한 윤슬은 외도가 외롭지 않게 오랫동안 섬을 감싸고 있다.

외도는 배를 타고 방문해야 하는데, 입도할 수 있는 선착장은 총 일곱 군데다. 외도로 들어가는 길에 해금강도 함께 즐기길 권한다.
다부진 자태의 바위섬에 매료될 것이다

도장포마을

고요가 안으로

마을 곳곳에서 도자기 벽화와 조형물이 보인다. 오래전 원나라와 일본을 무역하는 도자기 배의 창고가 있다 하여 도장포라 부르게 되었다고. 집집마다 주소지도 도자기 위에 적혀 있어 미소가 번지게 한다. 마을의 중심으로 가면 동백나무 숲길이 있다. 수백 년 된 동백나무가 우거져 묘한 공기가 흐른다. 걷다 보면 내부가 한 평도 안 되는 듯한 초소형 순례자의 교회와 성경 구절이 적힌 우물터를 마주한다. 세상을 등진 고요가 서서히 우리 안으로 들어오고 만다. 이 순간을 위해 여행을 하는 게 아닐까. 돌아서선 멀리서만 보이는, 노란 슬레이트 지붕에 쓰여 있는 말을 곱씹는다. ‘그냥, 감사해요.’

바람의 언덕과 붙어 있어 함께 여행하기 좋다. 마을 위쪽에서 바라본 바람의 언덕 풍경도 훌륭하다.

바람의 언덕

언덕에서 보는 바다

바람이 좋은 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느낄 수 있어서다. 존재를 촉각으로 인식한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이곳에선 바람을 온 몸으로 감각할 수 있다. 바닷바람이 워낙 세차게 불기 때문이다. 그와 어울리게 언덕 위에선 풍차가 돌아간다. 아래쪽에서 보고 있노라면 어느 인상파 화가의 그림이 떠오른다. 언덕 위에서 바라본 바다는 유독 푸르다. 겨울이 아닌 것처럼, 밤을 모르는 것처럼. 바람 때문인지 푸름 때문인지 눈을 점점 가늘게 뜨게 된다. 이내 감고 마는데, 하나의 다짐을 한다. 여름의 푸름을 확인하러 다시 올 것이라고.

시간적인 여유가 된다면 이곳에서 일출이나 일몰을 즐겨 보자. 묘한 하늘빛과 풍차를 함께 담는 사진은 작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