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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 이라는 착각

부랴부랴 외출 준비를 하다 옷장 앞에만 서면 시간이 멈춘 듯 동작이 느려진다. 그리고 한탄한다.
“입을 옷이 없네.”라고. 멋쟁이들의 고민이 지구에게는 그다지 멋이 없는 행동이라고 한다.
유행의 흐름만큼 의류 폐기물이 쌓여가는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진정한 멋에 대해 고찰해 볼 시간이다.

📝글. 조수빈

빠른 유행에 드리운 그림자

통 큰 바지, 스포티한 티셔츠, 볼캡, 집게 핀, 키링… 이 아이템들이 유행하던 시기를 꼽아보라고 하면 약간 헷갈린다. 분명 2000년대 초반 유행하던 세기말 패션인 것 같은데, 요즘 길거리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스타일이기 때문이다. 최근 패션업계를 주름잡고 있는 키워드인 ‘Y2K’란 2000년대 초반의 스타일을 일컫는 말로, 실제로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인기를 얻었던 아이템들이 재유행의 물살을 타고 있다. 이렇듯 패션의 유행은 빠르게 흘러가고 또 빠르게 돌아온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몇 년 전에 입은 옷을 오늘 다시 입을 순 없다. 미묘한 차이로 ‘멋’과 ‘촌스러움’ 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빠른 유행은 우리에게 신선한 즐거움을 주지만, 지구에게는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다. 옷은 생산하는 그 자체로 심각한 오염을 일으킨다. 그린피스와 세계원예연맹(WFO)에 따르면 의류를 생산할 때 연간 800조L의 물이 소모되고, 1억 7,500만 톤의 이산화탄소가 방출되며, 9,200만 톤의 쓰레기가 발생한다. 의류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면화 재배를 위해 사용되는 살충제 양도 어마어마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적으로 의류 생산·소비량은 연평균 3.4%씩 매년 증가하고 있다. 유행에 따라 옷을 구매하는 주기가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는 ‘패스트패션’으로 인해 더욱 심화되고 있다. 패스트패션이란 유행을 즉각적으로 반영해 옷의 생산부터 판매, 폐기까지 일련의 과정이 매우 빠르게 돌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만 원대 티셔츠를 사서 한 해 입고, 금세 늘어나더라도 가격이 싸니 또 사면 된다는 식이다. 자연스레 의류 폐기물 규모도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새 옷만큼 버려지는 양이 많다는 건 반성해볼 일이다.

흔적 없는 패션

패션 산업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옷을 덜 사고 오래 입는 것이다. 그러나 유행만큼은 포기할 수 없다면 다음 키워드에 집중해 보자. 첫 번째는 ‘슬로우패션’이다. 패스트패션과 정반대되는 개념으로 질 좋은 소재와 탄탄한 내구성,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으로 의류의 수명을 늘리는 것이다. 무조건 유행만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개성을 파악해 그에 맞는 옷을 사거나, 세컨드핸드숍(중고 물품 판매점)을 이용하고, 기부하는 행위 또한 모두 슬로우패션에 속한다.
두 번째는 ‘컨셔스패션’이다. 컨셔스(Conscious)란 ‘의식 있는’이라는 뜻으로 소재 선정부터 제조 공정까지 환경과 윤리를 따르는 의식 있는 패션을 말한다. 패션 산업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만의 의식을 드러낸다. 대표적으로는 오리털이나 모피, 캐시미어, 실크 등 동물성 소재 대신 합성섬유를 사용하는 경우다. 합성섬유가 환경오염을 시킨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동물성 재료를 가공할 때 발생하는 환경오염이 더 크다. 버려진 폐자재를 이용해 의류를 만드는 브랜드도 많다. 가방 천은 버려진 트럭용 방수 천막을, 가방끈은 자동차 안전벨트를, 고무는 폐자전거 튜브에서 얻는 식이다. 모든 제품이 서로 다른 폐기물을 사용해 만들다 보니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디자인을 가질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진정한 ‘패피(패션 피플)’란 무엇일까. 보여지는 멋에 치중하거나, 유행을 서둘러 쫓아가기보다는 뚝심 있게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고, 제대로 된 의식 속에서 나만의 개성을 찾을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패피’가 될 수 있다.